사회를 듣는 귀

대형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 전통시장의 문제는 없었나?

너의길을가라 2014. 12.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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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 홈플러스 · 롯데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


지난 12일 서울고법 행정8부(장석조 부장판사)는 대형마트 6개사가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낸 영업시간제한 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을 내렸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월 2회 휴업하도록 한 처분이 위법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판결을 구성하고 있는 법리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에 앞서 먼저 판결에 대한 반응부터 살펴보자. 당연히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그동안 외면받아왔던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중시한 결정"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영업규제를 하면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지금은 주변에 전통시장이 있는지, 있으면 언제 쉬는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둘째 · 넷째주 일요일을 쉬도록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대형마트들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1~11월)만 놓고 보더라도 이마트는 -0.2%, 홈플러스 -1.5%, 롯데마트 -2.8%의 매출액 감소율을 기록하고 있다. 대형마트 측에서는 일요 의무휴헙, 영업시간 규제, 신규 출점 제한 등의 규제들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 내수 시장의 침체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번에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당사자인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중소기업중앙회는 "앞으로 이어질 대법원 판결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의 본래 목적인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라는 취지를 감안해 판결해 주기를 기대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비자주권도 중요하지만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라면서 "오늘 판결은 상생정신보다는 법리적인 부분만 다루어진 것 같아 너무나 아쉽다"고 덧붙였다.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3. "대규모점포"란 다음 각 목의 요건을 모두 갖춘 매장을 보유한 점포의 집단으로서 별표에 규정된 것을 말한다.

가. 하나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둘 이상의 연접되어 있는 건물 안에 하나 또는 여러 개로 나누어 설치되는 매장일 것

나. 상시 운영되는 매장일 것

다. 매장면적의 합계가 3천제곱미터 이상일 것


[별표]

대규모점포의 종류

1. 대형마트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역의 제공장소를 제외한 매장면적의 3천제곱미터 이상인 점포의 집단으로서 식품 · 가전 및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


그 법리적인 부분이란 무엇일까? 재판부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형마트'의 정의를 문제 삼았다.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에서 '대규모점포'를 규정하면서 이를 '별표'에서 더욱 분명히 하고 있는데, '별표'에 따르면 '대형마트'란 '매장면적의 3천제곱미터 이상인 점포의 집단으로서 식품 · 가전 및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을 의미한다.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이라는 부분이다. 다들 '경험'해본 것처럼, 대형마트에 가면 '점원의 도움을 받게' 되어 있다. 재판부는 소위 대형마트들이 행정절차에 따라 '대형마트'로 등록되어 있고, 또 그렇게 불리고 있지만 법령상으로는 대형마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참으로 집요한 법리 분석(?)의 승리라고 할 법하다.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해당 점포들은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일수 부과 처분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재판부의 판단대로라면 대한민국에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는 대형마트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통산업발전법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린 순간이다.


물론 재판부가 고려한 근거들이 몇 가지 더 있긴 하다.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 맞벌이 부부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 영업제한처분이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GATS)에도 어긋난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수 부과 정책에도 명암(明暗)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드러난 사실이다.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우선,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실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한 전통시장 방문 증가 횟수는 0.92회에 불과했다. 물론 대형마트를 규제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단순히 전통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골목상권을 비롯한 지역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상징적으로 전통시장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눈을 가리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럼에도 한번 더 '전통시장'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저렴하다는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의 불친절과 불편함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카드 결제의 어려움, 주차장 시설의 미비, 교환 및 환불이 어려움, 품질 및 위생 상태 불량 등이다. 게다가 친절도(親切度)의 차이도 현격하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동시에 전통시장의 현대화도 함께 이뤄졌어야 했지만, 변화가 지나치게 더디게 진행됨에 따라 한 축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어부지리로 이득을 챙긴 건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G마켓 · 11번가 · 옥션 등 온라인 쇼핑몰의 거래액은 급격히 증가했는데, 특히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시작된 2012년을 기점으로 증가 폭은 훨씬 커졌다.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된 지 2년 정도가 지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여러가지 분석들도 쏟아졌다. 효과를 놓고 공방도 벌어졌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시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이 시작되길 바란다. '상생(相生)'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또,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일요일에 쉴 수 있는) 휴일을 보장하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다만, 그로 인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통시장의 문제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윤리적 소비'라는 명분만으로 소비자들에게 낙후된 전통시장, 불친절한 전통시장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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