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담뱃값 인상, 흡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민의 문제다

너의길을가라 2014. 9. 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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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뱃값 2,000원 인상 (2,500원 → 4,500원)

담배 사재기에 최고 5,000만 원 벌금 (하루 1인 당 2 보루 구입 가능)

전자담배 등에 붙는 건강증진부담금도 인상


이쯤되면 '흡연자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흡연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담뱃값을 인상하는 겁니다"라며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렇다면 "대기 오염이 심해져 시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가격을 인상합니다"라는 주장은 어떨까? 물론 다소 과격한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은 정부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금연을 유도한다면서 전자담배 가격도 올리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비흡연자의 입장에서 흡연율이 줄어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담배 연기 없는 쾌적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 모든 비흡연자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만 흡연율을 낮추는 방법이 '가격 (대폭) 인상'이라는 다소 폭력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담뱃값을 올린다고 해서 흡연율이 반드시 낮아진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결국 그것이 직접세가 아닌 간접세를 더 거둬들이겠다는 정부의 '꼼수'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


"세금을 왕창 거두려고 담뱃값을 올리는 것 같은데 왜 하필 타깃이 흡연자냐. 갑작스럽게 2,000원씩이나 올리는지 모르겠다. 당황스럽다" (이정문·21)"


한 갑에 2,100원에서 2,500원 하던 게 두 배가 뛰니까…지금 추세가 금연자 위주로 돌아가잖아요. 흡연자들은 불만이 많죠" (진민규·41)


담뱃값 인상, 국민건강? 우회적인 증세? <노컷뉴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의 진짜 목적이 '건강'이 아니라 '세수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뜻한 정부를 가장한 삥 뜯는 정부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나라의 곳간이 텅텅 비었다는 이야기는 한참 전에 나왔고, 세수 부족분을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로 충당하려고 한 정황도 속속 포착됐다. 최근에는 경찰청이 교통과태료를 5~7만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단속을 강화해서 교통 범칙금과 과태료를 많이 거둬들이는 것과 담뱃값 인상을 인상하는 것은 결국 우회적인 증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 담배 한 갑 당 1,550원의 세금 부담이 내년부터는 3,318원으로 두 배 이상 훌쩍 뛰게 됐다. 어느 항목에 얼마나 되는 세금이 더 붙게 되는 것일까?


담배소비세 - 기존 + 366원

지방교육세 - 기존 + 122원

부가가치세 - 기존 + 182원

개별소비세 - 추가 594원


기획재정부가 밝힌 담뱃값 인상에 따른 연간 세수증감은 자그마치 2조 8,000원에 달한다. 흡연율이 줄어들어 담배 소비가 줄어든다고 해도 돈은 더 많이 걷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셈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문이 남는 최고의 장사판을 벌였다고나 할까?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단단히 '호구 잡힌' 셈이다. 이를 두고 과연 '증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드디어 자기 고백이 시작됐다. 기획재정부 문창용 세제실장은 담뱃값과 주민세 인상을 두고, "증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공무원 특유의 말버릇이 나오긴 했지만, 결국 증세라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문 실장은 "금연 정책의 하나로 담배 가격을 올리려다 보니 담배 가격을 구성하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여전히 증세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담뱃값 인상과 흡연율 감소는 분명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담뱃값이 인상되면 흡연율이 감소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의 경우 2009년에 담뱃값을 22% 가량 올려서 판매량을 11% 떨어뜨렸고, 영국도 물가연동제를 통해 담뱃값을 200% 가량 올린 결과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외국의 사례는 그렇다치고,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담뱃값이 500원 인상(2,000원 → 2,500원) 된 후,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57.8%에서 44.1%로 13.7% 감소했다. 정부는 국내외의 사례들을 토대로 담뱃값 인상이야말로 매우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경우에는 2010년에 담배 가격을 인상(우리 돈으로 약 1,500원)했지만 흡연율은 오히려 36%에서 38%로 증가했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장기적으로 담뱃값을 7000원 이상 올리고 담배구매 실명제 등 흡연자 국가 관리가 시행돼야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지금의 2,000원 인상으로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납세자연맹은 "담뱃값의 변화가 없었던 2009∼2012년 지속적으로 흡연율이 떨어졌"다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담배를 끊은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요인(6.2%)이 아닌 본인과 가족의 건강(69.9%)"이었다고 밝혔다. 분명 담뱃값 인상이 사람들의 금연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다만 이를 지나치게 과대 포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금연 정책'이라면 오히려 본인과 가족의 건강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췄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소위 '비가격정책'이라고 하는 흡연율 인하 정책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경고 사진을 부착하거나 담배광고 규제를 하거나 이런 정책이 있는데 이 정책 수준이 OECD국가 중에서 꼴찌"라고 한다.


비가격정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갑작스럽게 담뱃값 인상 카드를 들고 나온 정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것도 한꺼번에 2,000원 씩 올리는 급진적인 인상폭이라니! 이러한 의혹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지난 11일, 정부는 '범정부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12일에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전자담배, 파이프 담배에 붙는 건강증진부담금이 오르고, 흡연 폐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사진 등을 담뱃갑에 의무적으로 삽입하도록 하는 규정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 2005년 9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회담 -


박근혜 대표: 세금을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연금 문제도 크다. 또 소주와 담배 등은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 : 한 가지만 얘기하겠다. 7조원의 감세안을 한나라당 대표께서 말씀하셨다. 금년도의 세수 부족만 해도 4조원이다. 내년에도 세수부족이 예상되고 7조를 다시 감세한다면 10조의 예산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이처럼 깎을 10조 예산의 조목을 좀 정해 줬으면 좋겠다. 법인세 2%가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인하됐다. 그에 따라 세금이 2조3000억원 감소했다. 그 이익이 어떤 곳에 어떤 기업에 귀속됐는지 봐야 하고, 노동자들의 월급으로 환원됐다 하더라도 대부분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귀속된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논쟁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은 분석해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도록 하겠다.


박근혜 대표 : 국민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를 가든 국민들은 자녀 교육을 시키면 직장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이런 나라가 돼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청년 실업, 고용의 질의 악화, 이런 것들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피부에 닿아야 되지 않는가.


"(정부가) 또다시 담배값의 500원 추가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 … 흡연율 감소와 국민건강증진보다는 애초부터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 현재도 담뱃값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 역진성을 심화시키며 밀수와 사재기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며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나라당 보건복지위원회의 논평, 2006년 9월 11일


문득 궁금한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담뱃값을 고작(?) 500원 인상하는 것에 대해 서민 경제를 운운하며 격렬히 '반대'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무려 2,000원이나 되는 인상에 대해 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것일까? 동등한 비교를 위해 인상액이 아니라 인상폭을 따져보더라고 500원 인상은 25%에 불과했고, 2,000원 인상은 80%에 달한다. 


흡연자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단지 담뱃값을 인상한다는 사실 자체에만 있지 않다. 물론 지나치게 무지막지한 인상이라는 인상(印象)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흡연자들을 자극한 것은 흡연자에 대한 정부의 무(無)배려와 돈을 더 뜯어내고자 하는 뻔한 속셈을 숨기고 '흡연자들의 건강 때문'이라고 강조하는 가증스러운 거짓말이다.



'담뱃값 인상'에 대해 비흡연자는 뒷짐을 지고 있고, 흡연자만 불만을 표출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흡연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접세를 올리는 것은 결국 서민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담뱃값 인상을 시작으로 각종 지방세가 인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안전행정부는 이미 지방세 개편안을 입법예고 했는데, 전국 평균 4,520원인 주민세는 최소 1만 원 이상으로 두 배 가량 오른다. 자동차세의 경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50% → 75% → 100%로 연차적으로 인상된다. 결국 서민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맥락에 놓여 있다.


박근혜 정부는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담뱃값 인상은 복지를 위한 증세인가? 각종 지방세의 인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증세는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MB정부의 기업 감세 ·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불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 소득에 대한 세수 확보부터 당장 시행하기 바란다. 또, 국민에게 증세는 없다는 약속을 계속해왔던 만큼 증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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