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 시사교양

달라진 여름 휴가 문화, '어디로'가 아닌 '무엇을'에 초점을 맞춰라

너의길을가라 2021. 8. 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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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졌던 지난 31일, 주말 연휴를 맞아 고속도로가 크게 붐볐다. 이날 고속도로에 나온 차량은 총 530만 대로, 최근 10년 동안의 여름 휴가철 통행량 중 가장 많았다. 동해안 82개 해수욕장에는 올해 가장 많은 인파인 45만 7927명이 몰려들었다. 올해 최다인 19만 9971명(7월 24일)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였다. 본격적인 휴가철다웠다.

여전히 유명 피서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SNS에서 핫한 숙소들은 예약이 한참 후까지 들어차 있다. 어찌보면 이전과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4차 유행이 빠르게 확산되는 최악의 상황에도 말이다. 하지만 분명 '번화'도 눈에 띤다. 지난 31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코로나가 바꾼 '나만의 휴가' 편은 코로나가 가져다준 여름 휴가의 달라진 양상을 집중 조명했다.

<뉴스토리>의 김소원 아나운서는 "코로나 상황이 2년째 계속되면서 휴가 문화가 바뀌고 있"다면서 "더욱 올 여름에는 본격 피서철을 앞두고 코로나 4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휴가 양상이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어쩌면 고속도로를 가득 채웠던 그 수많은 차량들 중 일부는 달라진 휴가 문화를 즐기기 위해 좀더 '특별한 곳'으로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로 갈지가 아니라 뭘 할지 생각을 해보니까 할아버지네 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은평구에 살고 있는 주은 씨는 여행 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휴가 가방치고는 꽤나 단출했다. 왜인가 했더니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일손을 거들 계획이란다. 그동안 여름 휴가 시즌이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해외 여행을 주로 다녔던 주은 씨는 이번에도 제주도로 떠날 계획이었으나,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그마저도 취소하고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기로 결정했다.

주은 씨는 멀리 떨어져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또, 무심코 먹었던 삶은 옥수수와 감자가 한여름 땀의 결실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지금까지 '어디로 가면 재밌을까'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주은 씨는 "앞으로 '어디 가기'보다는 '뭘 해야' 좀 더 삶이 의미 있을까. 이런 걸 생각하면서 휴가를 보낼 것 같"다며 특별한 휴가를 보낸 소감을 얘기했다.

"사람들 북적거리는 곳에 가기보다는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제약회사 마케팅 팀에서 근무하는 다영 씨는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위치한 삼화사를 찾았다. 2박 3일 오롯이 혼자 지내는 자율형 산사 생활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방역 상황이라 단체 프로그램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평소 휴가 때마다 일상이 주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로 해외 여행을 떠났었는데, 코로나로 2년째 발이 묶이면서 휴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에어컨도,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없다. 텅 빈 공간에는 침구와 선풍기만 놓여있다. 그래서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고 조금 더 단출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만끽한다. 또, 사방에 펼쳐진 자연 속을 거닐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다영 씨는 화려한 휴가 대신 선택한 사찰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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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좀 더 안전할까'부터 고민하게 되는 것 같고요. 그러면서 우리 가족이 어쨌든 소소하게라도 뭔가를 같이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의미가 있죠. "


경기도 광주시에 거주하고 있는 상일 씨는 딸 예빈이와 함께 홈캠핑을 준비했다. 1시간 동안 집 베란다에 텐트를 치고 전구도 달아 분위기를 제대로 냈다. 또, 고기를 구워 맛있는 식사도 했다. 물론 홈캠핑을 하려고 장비를 구매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  사람들 없는 곳 위주로 캠핑을 떠났지만, 코로나 4차 유행까지 진행되니 차박지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다.

꼭 어디를 가야 한다는 생각 대신 '뭘 할까'를 고민한 결과였다. 발상의 전환은 만족스러운 휴가로 돌아왔다. 상일 씨는 "그전에는 '어디를 나갈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지 무언가를 만들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제약된 공간 안에서 '무엇을 할까'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딸과 함께 즐거운 홈캠핑을 만끽했다.


과연 코로나19는 여름 휴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빅데이터 결과는 뚜렷했다. 우선, 휴가 또는 여름 휴가에 대한 언급 자체가 코로나 이전보다 30%가량 감소했다. 또, 2019년만 해도 자주 등장했던 일본, 유럽, 동남아 등 해외 여행지 관련 키워드가 올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홈캠핑을 하는 예빈이네처럼 국내 여행조차 자제하는 경향도 이번 여름에는 뚜렷했다.

반면, 홈캉스, 넷플릭스 등 제한적 장소를 의미하는 단어가 2년 전에 비해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굳이 힘들게 피서지로 떠나기보다 집에서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를 이용하며 편하게 휴식을 취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김강석 미디어빅데이터분석연구소 소장은 2019년에 경우 휴식의 개념이 '가다'와 많이 연결됐는데, 2021년에는 '쉬다'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유한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이 짧고 소중한 시간에 주어진 여건에 맞춰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를 어떻게 위로하고 나이 시간을 얼마나 더 소중하게 보낼까 하는 쪽에 집중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


Stay(머무는) + Vacation(휴가)의 합성어인 스테이케이션은 집 또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서 보내는 휴가를 의미한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여름 휴가의 새로운 양상이다. 스테이케이션을 하게 되면 '이번 여름휴가 어디로 가세요?'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게 된다. 대신 '이번 여름 휴가에 뭐하십니까?'라고 묻게 된다. 질문의 초점이 바뀐 셈이다. 휴가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이 많았다. 결국 어딘가로 향하기보다 '집콕'을 선택했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은 후, 새로 구입한 프로젝터로 미드를 감상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특별할 건 없지만 느긋한 휴식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틀에 박힌 여름 휴가를 보내기보다 각자 자신만의 휴가를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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