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박람기

니키 드 생팔의 외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닿았다

너의길을가라 2018. 7. 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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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강렬한 체험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갑자기 해방되고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 같은 만남이었다." - 요코 마즈다 -


니키 드 생팔(1930. 10. 29. ~ 2002. 5. 21.).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슴(Nouveau Realisme) 조각가. 낯선 이름에서 무한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예술적 영감이 잔뜩 묻어 있는 아우라라고 할까. 한번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건 설렘이면서 기대였다. 


지난 주 수요일 '니키 드 생팔 전 - 마즈다 컬렉션'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의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다.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워낙 지독한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터라 가는 길이 곧 고난의 길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러나 더위는 짧고 예술은 길었다. 전시관에 들어선 순간, 에어컨 바람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래서 피서를 미술관으로 가나(?) 싶었다. 시원함 못지 않게 놀랐던 건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진 생동감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마주했던 작품(<스웨덴 TV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부터 강한 인상을 풍겼다.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니키 드 생팔이라는 이름을 현대미술계에 데뷔시켰던 '사격회화(shooting painting)'들이었다. 


사격회화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총을 쏘는 걸까? 그렇다. 물감이 담긴 오브제를 석고로 감싼 후, 실제로 총을 쏴 무작위적인 추상화를 연출하는 퍼포머스다. 총을 쏘는 행위를 통해 공격자를 연기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공격성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꽤나 과격하면서도 통쾌한 예술 방식이다. 니키 드 생팔이 선택한 오브제는 다양했는데, 셔츠, 넥타이, 낡은 장난감, 폐품 등을 비롯해 그리스도 수난상도 포함돼 있다. 그가 선택한 오브제는 곧 그가 고발하고자 하는 대상이었고, 그를 억압하는 대상이었다. 


그는 왜 사격을 예술에 접목시켰을까? 니키 드 생팔이 어린 시절 겪었던 참담한 사건을 통해 그가 ‘사격회화’를 고안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니키 드 생팔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지옥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으로부터 가부장적 여성성을 강요받는 등 순탄치 않은 생활 끝에 파국을 맞았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니키 드 생팔은 우울증을 겪는 등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는 개인적 상처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억압을 미술치료를 통해 극복해 나간다. 


그리하여 탄생한 사격회화는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여성들이 겪는 정신적 폭력을 고발하는 성격을 띤다. 아무래도 작품 속에 '분노'가 담겨 있다. 다만, 그건 적개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라기보다 위로와 같은 치유적 성격에 가깝다. 


샘의 나나 (백색의 춤추는 나나) 


거꾸로 서 있는 나나




사격회화 이후 니키 드 생팔의 작품 세계는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괴기함이 사라지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양태의 조각들이 등장한다. 특히 임신한 친구 클라리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나나> 시리즈는 니키 드 생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다. 


'나나'는 '보통의 여자아이'를 일컫는 프랑스어인데, 니키 드 생팔이 묘사한 나나는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하다. 기존의 여성에게 강요됐던 이미지, 이를테면 조신함이라든지 단정함로부터 벗어난 활기로움이 넘쳐 흐른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청량감을 지녔다. 


그건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나나가 지니고 있는 '전복의 통쾌함'이 내뿜는 힘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남성중심의 사회가 결정한 (여성의) 미의 기준을 탈피한 자유로운 나나의 모습들은 여성의 존재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 포스터 

나나 (작은 그웬돌린 I)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과거 여성들은 힘을 갖기 위해 문화나 제도를 바꾸기보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대로 맞춰 살아가는 데 집중했고 소비시장에서도 여성들에게 '섹시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탈락한다', '예쁘지 않으면 지는 거다' 식의 인식을 주입해 왔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나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탈코르셋란 문자 그대로 코르셋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코르셋은 중세시대부터 여성들이 잘록한 허리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착용했던 속옷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확장해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규정된 '예쁜 모습'을 뜻한다. 


날씬한 몸매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표준이 되면서 여성들은 자신을 학대에 가깝게 몰아세워야 했다.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이 돼 버렸고,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강박적으로 살빼기에 매진했다. 그것이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머리에 TV를 얹은 커플


거대한 얼굴


부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의 작품인 '나나'를 통해 이 땅의 수많은 나나들을 위로한다. 아마 수많은 여성들이 니키 드 생팔 전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지 않았을까. 또, '탈코르셋 운동' 등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움직임에 참여할 작은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전시회에는 우연한 계기로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본 후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한 요코 마즈다의 이야기도 상세히 담겨 있다. 그림편지로 확인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단단한 우정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니키 드 생팔의 외침이 지구 반대편의 요코 마즈다에게 가 닿았듯,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러하길 바란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파리의 '퐁피두 센터' 옆의 조각분수공원(스트라빈스키 분수)를 만든 작가가 바로 니키 드 생팔이었다. 물론 여행을 하던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유롭고 창의적인 형태의 조각과 형형색색의 빛깔이 아름다워 신기해 했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찾아보다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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