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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아 퇴치 작전, 괴물쥐 만든 주범인 인간의 반성은 없었다

너의길을가라 2014. 10. 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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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런데 이 놈(뉴트리아)들 때문에 농민들이 피해가 많다면서요?

[기자] 예, 미나리 단지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식성이 엄청납니다.지금 제가 부산에서 가져오면서 양배추를 넣어줬는데 금세 한 통을 먹어치웠습니다.


-JTBC 전진배의 탐사 플러스-



지난 7일, 환경부에 대한 환노위 국정감사장에서 일명 '괴물쥐'라고 불리는 뉴트리아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꿋꿋하게 증인석을 지켰다고 한다. 무려 12시간을 기다렸지만 증인으로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환경부 국감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만 놓고 보면 뉴트리아가 참 딱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뉴트리아와 관련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괴물쥐 뉴트리아와 파랑볼우럭(블루길) 등 5개 외래 동식물이 지속적으로 서식지를 넓히고 있다. 뉴트리아는 서울 상륙까지 133㎞를 남겨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생물들의 서식범위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관리하고 퇴치해야 할 정부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철새를 잡아 먹는 등 습지의 수초대를 망가뜨리고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뉴트리아는 2006년 낙동강 수계를 중심으로 한 경남지역 6개 시 · 군(진주 · 함안 · 창녕 · 의령 · 양산 · 창원)에서 서식하고 있었지만, 갈수록 그 범위를 넓혀서 현재는 경북(경산 ·성주)과 제주를 비롯해 급기야 충북 충주까지 북상했다. 이를 두고 한 언론에서는 뉴트리아의 북상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에 비유하면서 서울이 위협받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지자체가 이런 상황을 두 눈 뜨고 멀뚱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낙동강 연안의 지자체가 뉴트리아 퇴치를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포상금(1마리 당 2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 등을 통해 나름대로 자구책을 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지자체 별로 들쭉날쭉한 예산 편성은 실적의 차이로 나타났고, 지나치게 낮은 포상금과 포획한 사람이 거주하는 지자체로부터 포상금을 받도록 한 규정 등은 원활한 포획을 가로막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뉴트리아의 항문을 봉합한 뒤 풀어주는 방식으로 뉴트리아의 멸종을 유도하자는 제안까지 등장했다. 서울대 면역의학연구소 용환율 책임연구원은 지난 9월 25일 한 지역 신문에 "덫으로 생포한 뉴트리아를 마취해 항문을 봉합한 후 풀어주면 배변이 불가능하게 돼 정신적 공황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굴 구석구석을 다니며 어린 새끼들을 없애 뉴트리아의 멸종을 유도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용 책임연구원은 "(자신이 제안한 방법은) 골프채로 때려잡는 방법보다 덜 잔인하며 항문 봉합을 한 뉴트리아는 최소 1∼2개월은 더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동물단체들은 "카니발리즘(극한 상황에서 동종을 잡아먹는 정신질환)을 유도하는 도살 방법은 명백한 동물 학대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 기준으로도 유해동물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법이나 정책이 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판단이 쉽지 않지만, 항문 봉합이 골프채로 때려잡는 것보다 덜 잔인하다는 생각에 섣불리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동물단체가 주정하는 것처럼 명백한 동물 학대이기 때문이다. 뉴트리아의 생태계 파괴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고, 이를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문 봉합이라는 잔혹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당장' 선택할 답안지는 아닌 것 같다.


"현재의 뉴트리아 포획 시스템은 지자체마다 들쑥날쑥한 예산을 책정해 그 예산만큼만 잡아 결국 예산만 낭비하고 뉴트리아의 확산도 막지 못하는 형국"이라는 김경철 '습지와새들의친구' 사무국장의 지적처럼 현재의 뉴트리아 포획 시스템을 환경부 주도로 재편해서 예산 책정이나 포상금 관련 정책을 정비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본래 남아메리카 아마존에서 주로 서식하는 뉴트리아가 대한민국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85년 7월이었는데, 당시 모피와 식용을 목적으로 프랑스로부터 100마리를 들여왔다. 하지만 첫 번째 사육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1987년 6월 다시 불가리아에서 60마리를 수입해 10년 만에 2,400마리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분양이 됐고, 2001년 10월 농림부는 뉴트리아를 가축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당시 뉴트리아를 수입하면서 국내생태계에 퍼졌을 때 미칠 수 있는 영향 혹은 위해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뉴트리아 관련 문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생태계에 대한 당시 정부의 무지와 그로 인한 무책임한 외래종 수입이 지금의 화를 낳은 것이다.



물리기만 하면 손가락이 절단된다는 등 세간이 펴져 있는 뉴트리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달리 뉴트리아는 다소 둔하고 순한 동물이라고 한다. 한국야생동물협회 관계자는 "(뉴트리아는) 실질적으로 보면 순한 동물이다. 사람을 보면 피하고 그런 동물인데 너무 우리가 괴물쥐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해와는 달리 순한 뉴트리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천적이 없는 생태계에서 최고의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뉴트리아로부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퇴치'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됐다. 지금까지 계속됐던 중구난방식 퇴치가 아니라 환경부 주도의 체계적인 퇴치가 이뤄져서 '항문 봉합'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쓰지 않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사실상 '학살'을 '뻔뻔하게' 요구하는 인간의 민낯이 스스로 생각할 때도 참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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