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노무현 · 유병언 유착 의혹 제기했던 조원진 의원에게 면책특권 적용?

너의길을가라 2015. 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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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새누리당의 조원진 의원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에서 SNS에 유포되어 화제가 됐던 한 장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서 "전직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때 유병언하고 밥 먹은 사진이 나왔다. 확인해 봤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물론 그 사진의 주인공은 조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니라 참여정부 당시 경제보좌관을 지냈던 조윤제 서강대 교수였다.


ⓒ 서울신문


어떤 의도로 그 사진을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에 들고 나왔을지는 뻔한 것이었다. 지저분한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조 의원은 그러한 속내를 숨긴 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와 유 전 회장 사이에 여러가지 의혹들이 나오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것도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실수를 했는데, '사진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알고 있었다"고 답한 것이다. 이로써 명백히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경우이기 때문에 '면책특권'의 적용이 배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 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조 의원과 그 사진을 유포했던 네티즌을 고소했다.



헌법 제45조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이쯤에서 잠시 면책특권에 대해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특권'을 '면책특권'이라고 한다. 성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서는 책임을 면해주는 이유는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적 탄압의 영향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회의원이라고 할지라도 잡아들이는 독재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헌법에 방어막을 쳐둔 것이다.


현 상황을 두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군부 독재가 횡행하던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졌다는 것만큼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면책특권'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책임을 면해주는 지금의 '면책특권'은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



여기에 대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주 훌륭한 말을 남겼다. 그는 2010년 11월 2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회의원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 영부인이었던 김윤옥 여사에 대한 민주당(당시) 강기정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해 '명백한 허위를 알면서도 적시하면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치적 탄압으로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국회에서 발언을 해야 했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 무책임한 발언을 하면 국민들에게 큰 피해만 줄 뿐"이라는 차분한 설명도 곁들였다. 국무총리였던 김황식 전 총리도 "독일도 면책특권이 있지만 비방적, 모욕적 행동은 인정되지 않고 대법원 판례도 민사판결이지만 명백히 허위이거나 고의에 의한 것일 때에는 책임을 묻게 하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김 전 총리가 언급한 '대법원 판례'는 2007년 1월 이호철 당시 국정상황실장이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을 말하는데, 당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발언 내용이 직무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거나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까지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민사 재판이긴 하지만, 대법원이 국회의원이 가진 면책특권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다시 조원진 의원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그는 국회에서 면책특권을 활용해 "전직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때 유병언하고 밥 먹은 사진이 나왔다. 확인해 봤습니까?"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2007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조 의원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지난 9일 조 의원을 단 한 차례 서면 조사했던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김유철 부장검사)는 헌법 제 45조의 면책특권을 적용해서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조 의원은 질의 당시 허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질의 직후 다른 의원의 지적으로 허위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해 대법원 판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하!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알았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면책특권'은 '무적(無適)상태'가 되어버린다. 물론 조 의원이 당시에는 정말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몰랐다'거나 '나는 몰랐어야만 한다'고 자신을 세뇌했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 하에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헌법 제45조에 명시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허술한 논리에 의해 절대적인 보호를 받게 됐다.


이쯤되면 '면책특권'에 대해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절대적 보호 속에 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제한하는 논의를 달가워할 리도 없고, 자신들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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