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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빛나는 '눈이 부시게', 남주혁의 성장도 돋보였다

너의길을가라 2019. 3. 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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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의 연기가 주는 울림이 통했다. JTBC <눈이 부시게>가 월화 드라마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3.188%(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어느덧 6.567%까지 올라갔다. 빠른 시간 내에 몸집을 두 배로 불렸다. 미리 자리를 선점하고 있던 tvN <왕이 된 남자>(9.472%)에 이어 2위를 꿰찼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던 KBS2 <해치>(6.4%)도 제쳤다. 경쟁작들에 비해 약세라 여겨졌던 평가를 뒤집은 놀라운 성과다. 


시청자들의 호평도 쏟아지고 있다. 연출과 극본,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찬사는 기본이다. 김혜자, 한지민, 이정은, 안내상, 손호준, 남주혁, 김가은, 송상은, 김희원 등의 '알맞고' '적절한' 연기는 감탄의 대상이다. 또, '행복 미용실'을 찾는 할머니 3인방의 연기는 어찌나 실감나던지! 그리고 드라마의 화두인 청춘이란 무엇이고, 늙는다는 건 어떤 건지 생각해 보게 됐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눈이 부시게>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아빠, 내가 낯설지? 옛날처럼 나한테 말도 안 걸고. 묻지도 않고. 내가 나도 낯설어. 아침에 거울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빠한테 더 잘할 걸. 근데, 받아들이기로 했어. 나한테 소중한 걸 되찾기 위해서는 겪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3회)


<눈이 부시게>는 분명 혜자(김혜자/한지민)의 이야기다. 25살 청춘이던 혜자는 아빠를 살리기 위해 시계를 '엄청나게' 되돌렸고, 그 대가로 나이를 먹어 70대 노년의 혜자가 됐다. 갑자기 할머니가 돼버린 혜자는 자신의 상황이 절망스럽기만 하다. 죽는 것도, 바다로 떠나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이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소중한 걸 되찾기 위해서는 겪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늙음'은 그 자체로 낯설기만 하다. 팽팽하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바스라지기 직전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버겁고, 마음껏 달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먹어야 하는 약은 어찌나 많은지,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삶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집에만 있기 눈치가 보이자 눈을 질끈 감고 '노치원'이라 불리는 홍보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게>는 혜자의 '노년 적응기'라고 볼 수 있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자기가 읽을 기사 작성해 본 적은 있어요? 현장의 온도 느껴본 적 있어요? 문서로 말고 피부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물론 나한테 대답할 의무는 당연히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한테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은 해야 될 것 같은데.." (1회)


이렇듯 혜자의 이야기가 분명한 <눈이 부시게>에 또 다른 청춘이 등장한다. 바로 이준하(남주혁)이다. 자칫 준하는 혜자의 로맨스 대상쯤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가 안고 있는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준하는 현장을 누비는 기자를 꿈꾸던 유망한 청년이었다. 눈빛이 살아있었고, 생각이 깨어 있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했고, 손만 뻗으면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움켜쥘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일직선으로 쭉 나아갈 것만 같았던 그의 삶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와 준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보험금을 내놓으라며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기 일쑤다. 그리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혜자마저 사라져 버렸다. 삶은 무의미해졌고, 준하는 무기력해졌다.



"제발 좀 내 인생이 최악이라는 걸 알려주지 말라고요. 안 그래도 죽지 못해 겨우겨우 사는데, 자꾸만 옆에서 '넌 지금 최악이다. 더 나아져야 한다.' 무책임하게 말하지 마시라고요. 이게 살아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이세요? 이게 사는 거냐고요." (6회)


누구보다 총명했던 청년이 삶의 무게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기자가 되겠다던 준하 노인들이 모여 있는 홍보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무슨 비리라도 캐내기 위해 잠입취재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었다. 준하는 선량한 얼굴로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보조식품 등의 약을 팔고, 보험을 판매하는 등 '사기'를 치고 있었다. 꿈도 목표도 잃어버린 준하는 자신의 청춘을 탕진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할머니가 나타났고, 자꾸만 자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급기야 자신의 삶에 참견을 하고 나서는 게 아닌가. 안타깝다는 눈빛을 하고서 '인생을 왜 그 따위로 사는 거야?'라며 꾸짖는 할머니에게 준하는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른다.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이게 살아 있는 사람의 눈이냐고요!"라고 절규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준하의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 연기에 대한 대중의 우려는 내가 못했기 때문에 못한다고 하니까 반박할 수 없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되지만 어느 정도의 부담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천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할수 없다. 물론 부족한 모습이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새로운 작품으로 찾아뵐 때마다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엑's 인터뷰①] '안시성' 남주혁 "연기력 우려? 안 억울해..만족한 적 없다"


그동안 남주혁의 연기는 아쉬웠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에 휩싸여 왔다.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MBC <역도 요정 김복주>, tvN <하백의 신부> 등에 연달아 출연했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연기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영화 <안시성>에서 반전을 꿰하더니, <눈이 부시게>에서는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우려를 말끔히 지워냈다. 


남주혁은 이준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 대사 전달력, 감정, 상대 배우와의 호흡 등 흠잡을 곳이 전혀 없다. 한지민과는 설레는 로맨스를 보여주고, 김혜자와는 흥미롭고 묘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다. 이렇듯 <눈이 부시게>는 혜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준하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준하가 다시 자신의 꿈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시 그의 눈빛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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