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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의 과부하와 불펜 혹사 논란, 야신 앞에 또 다른 시험대가 놓였다

너의길을가라 2015. 5. 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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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압도적인 꼴찌에 머물렀던 한화는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을 '모시면서'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 했다. 선수들은 지옥의 펑고와 집중 과외 등 혹독한 훈련을 통해 기본기를 '다시' 닦았고, 한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그 중심에는 역시 야신(野神)이 있었다. 17승 15패, 5강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화의 현주소는 그동안 강제로 '보살(菩薩)'이 되어야 했던 한화 팬들에겐 너무도 행복한 성적표일 것이다.



"연봉 1,000만원 선수들로 1억원 선수들을 이기려면 물량공세라도 할 수밖에 없다. 또 그냥 사라질 수 있는 선수를 연습을 통해 발굴해내 기용했다. 할 말이 많지만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


이른바 '김성근 리더십'은 선수들에게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강력한 추진력을 불러일으킨다. 프로농구 KGC의 전창진 감독도 "프로야구 한화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 김성근 감독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고 할 만큼 '김성근 리더십'은 같은 계열인 스포츠 감독들뿐만 아니라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감탄하고 배우려 할 만큼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드리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에 의문점을 제기하는 흐름은 여전히 존재한다.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구인으로서 그의 열정과 업적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왜 그런 리더십을 호출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적인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김성근 리더십'을 다룰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김성근 감독과 관련한 글이나 댓글에는 어김없이 '찬양'이나 '혹평'이라고 하는 극단의 의견으로 그득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편(便)과 적(適)이 이토록 분명히 갈라지는 건, 아무래도 그의 캐릭터가 그만큼 독특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첨예한 논란의 대상인 만큼 그가 상당히 많은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해와 편견을 최대한 걸러내고, 최근 야구 팬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인 (김성근 감독의) '불펜 혹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난 9일 한화는 두산에게 3-4로 역전패를 당했다. 필승조 박정진, 송창식, 권혁을 차례로 등판시키고도 당한 패배였기 때문에 충격은 두 배였다. 박정진, 송창식은 버텼지만, 마무리 권혁이 붕괴됐다. 김경언의 실책이 겹쳐지긴 했지만, 그 이전에 권혁의 블론세이브가 있었다.


이번 패배는 무엇보다 최근 계투진에 대한 '혹사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미 심상치 않은 조짐은 5월 7일 KT전에서부터 보였다. 당시 박정진은 1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를 내주며 2실점을 했고, 권혁은 2이닝 동안 3피안타 1사사구 1실점하며 팀이 역전패를 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패배의 책임을 최선을 다한 투수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됐다', '제대로 과부하가 걸렸다', '이대로는 한화의 여름 야구가 위험하다'


경기를 두고, 섣불리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지만 상황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다시 말해 데이터가 축적되면) 결과론적인 책임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상황적인 부분이나 경기 내용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쳤던 언론은 제대로 된 '꼬투리'를 잡아챘고 이와 관련해 엄청난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 혹은 한화에 대한 비판이 불편한 팬들에겐 마냥 '꼬투리'로 보이겠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화의 상승세를 견인했던 필승조가 4월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저히. 권혁의 경우 최근 3경기에서 2패를 당했다. 단순히 패배를 당했다고 해서 페이스가 하락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이 야구다. 하지만 급등한 피안타율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피안타율

 

 4월

 5월

 박정진

0.188

0.333

 권혁

0.242

0.310


지난 4월과 비교해 박정진은 1할 8푼 8리에서 3할 3푼 3리로, 권혁은 2할 4푼 2리에서 3할 1푼으로 껑충 뛰었다. 원인은 잦은 등판과 연투에 의한 구위의 하락이다. 권혁은 지금까지 21경기에 등판(박정진도 마찬가지)했는데, 이는 10개 구단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 수다. 32이닝을 던져 불펜 투수 중에서 유일하게 규정 이닝을 채우는 투혼을 발휘했다.


한화의 수호신이 되어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한 권혁이지만, 그 투혼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5월에만 6경기나 등판했고, 9일 경기는 사흘 연속 등판이었다. 투구 수도 35개, 25개로 많은 편이었다. 휴식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했지만, '믿을맨'이 부족한 한화의 선택은 권혁일 수밖에 없었다. "공 20개까지는 3연투가 가능하고, 30개부터는 연투는 이후 하루 휴식이 필요하다"는 SK 감독 시절의 지론은 한화에 와서 다소 유연해진 듯하다.



삼성에서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릴리프(One Point Relief)로 활약하다 FA 자격을 얻고 한화로 이적한 권혁에게 이번 시즌은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할 중요한 한 해다. 게다가 자신을 믿어주는 리더의 존재는 선수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없더 투혼마저 생기게 한다. 마운드에 올라 권혁의 뺨을 토닥이는 등 격한 애정 표현을 표현하는 감독에게 최고의 활약으로 보답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지난 8일 권혁은 "정진이 형과 마찬가지로 힘들기는 하지만 팀이 이기는 상황이라 책임감과 정신력을 갖고 등판한다. (김성근) 감독님도 조절해주시고 나도 힘들면 쉬기 때문에 무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권혁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즌에 임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인터뷰가 아닐까 싶다. 이런 선수에게 감독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뻔한 것이다.



최대한 승수를 많이 챙겨 놓아야 하는 한화의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거듭된 연투와 관리되지 않는 잦은 등판은 결국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독(毒)이 된다. '국민 노예로 활약했던 LG의 정현욱 선수의 예를 들지 않아도, 어깨는 소모품이라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 아닌가? '업(up)'된 상황에서 '본인도 느끼지 못하는 피로는 경기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이제 김성근 감독도 (다소 늦었지만)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외부의 눈으로 볼 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과부하가 걸린 한화 불펜의 현실은 김 감독이 중요시하는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부상으로 빠졌던 윤규진이 복귀하고, 이적생 임준섭이 필승조에 합류한다면 꽉 막혀 있던 숨통이 다소 트이게 되겠지만, 그 이전에 '불펜 혹사'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 경기가 총력전"이라는 한화의 경기는 강렬하고 매력 넘치지만, 그만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약팀을 단숨에 끈적끈적한 얕볼 수 없는 팀으로 만들어 낸 김성근 감독의 역량은 타의추종을 불허하지만, 그 '아드레날린'을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찍힌다. 또 다른 시험대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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