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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로 간 <무한도전>, 박명수가 만든 웃음과 씁쓸함

너의길을가라 2017. 7. 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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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의 무기는 '김수현'이 아니었다. '명수세끼(찾아라 맛있는 밥차)'는 에피타이저쯤 됐을까. 끈질기게 뒤따라붙는 '위기론'을 떨쳐낼 MBC <무한도전>의 필살기는 '무한도전-진짜 사나이'였다. 2015년 '무도드림' 특집에서 박명수를 섭외하려는 <진짜사나이> PD들의 구애로 인해 '박명수의 입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상상을 해봤지만, 무한도전 멤버 전체가 동반 입대를 하는 장면은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무한도전-진짜 사나이' 편은 신선했고,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1일 방송분은 11.7%(닐슨코리아 기준)으로 지난 주에 비해 1.6% 상승했다. KBS2 <불후의 명곡>에 빼앗겼던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다시 찾았다. 단순히 시청률이 오른 것뿐만 아니라 호평이 쏟아졌다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극심한 가뭄을 해갈하는 장마가 시작된 것처럼, 한동안 지속됐던 <무한도전>의 '웃음 가뭄'을 말끔히 해소할 '레전드의 편' 탄생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타짜'들이 그토록 노리고 탐냈던 전대미문의 캐릭터 박명수가 있었다.


김태호 PD는 2박 3일의 휴가를 제시하며, <무한도전> 멤버들을 '빅 픽처' 속으로 끌어들였다. <무한도전>을 돕기 위해 합류한 '예능 초보' 배정남은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에 들뜬 모습을 보였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반신반의하며 제작진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니, 하루 이틀 속나? TV를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반응도 여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멤버들을 기막히게 할 반전이 준비돼 있을 거란 예측은 다들 했지만, 그들이 향한 목적지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30사단 신병교육대'일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다음 주 예비군 받으면 끝인데..." (양세형)

"행님 민방위 3년차야!" (배정남)

"난 민방위도 끝났어!" (유재석) 


자신들이 탑승한 차량이 위병소를 통과하자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들은 괴성을 지르며 몸서리를 쳤다. 이럴수가, 군대라니! 맙소사, 입대라니! 눈 앞에 교관과 조교들이 눈에 띠자 멤버들은 광분 상태가 됐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며 문을 잠그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현실 부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량으로 다가온 교관은 "신속하게 차량에서 하차해서 교관 앞에 2열로 정렬합니다!"라고 지시했고, 멤버들은 우왕좌왕하며 그 명령에 따랐다. 아무리 구시렁거려도 교관의 철벽을 넘어설 순 없었다.


이후 키와 몸무게 등을 측정하는 신체 검사와 멤버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각종 검사들이 진행됐고, 중대장과의 면담, 입소 신고를 하는 장면까지 공개됐다. 단연 하이라이트는 분대장이 된 238번 훈련병 박명수의 활약(?)이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진 박명수는 뒤돌아서기 스텝을 몰라 중심을 잡는 다리로 도는 등 실수를 연발했고, '훈련병 박명수 등 6명은'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동료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계속된 교정 덕분에 잘 마무리하는가 싶다가 '입소하게 됐습니다'를 '입주하게 됐습니다'로 말해 끝내 웃음 폭탄을 터뜨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진짜사나이> 제작진들은 종영 전에 박명수를 섭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 것이다. '포맷' 자체는 <진짜사나이>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불과 20분에 불과한 짧은 분량이었지만, 박명수의 활약은 돋보였고 자연스레 지분은 커졌다.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하는 다음주에는 얼마나 많은 '빅 재미'를 안겨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번 '무한도전-진짜 사나이' 편을 통해 <무한도전> 제작진이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다만, '제대로' 갈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물론 '웃음'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낼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그만한 수확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본래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을 자처했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들은 결코 '평균 이하'가 아니다. 최상위 1%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무한도전>의 본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시청자들의 질타가 이어졌고, <무한도전>은 안팎으로 부침을 겪으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고민에 빠졌을 제작진들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찾아낸 비장의 카드는 <진짜사나이>를 카피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멤버들을 '강제로' 평범 이하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시력 문제로 '제2국민역'으로 면제돼 군에 대한 경험이 없는 박명수가 바들바들 떨면서 실수를 연발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사회 속에서 제 아무리 멀쩡하던 사람도 군대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돼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군대는 갓난아기와 같은 존재들을 '남자'로 재탄생시키고, 더 나아가 '사람답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조직'한다. 하지만 그 '남자다움'이 왜곡된 남성상을 야기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조직'과 '상명하복'을 기본으로 한 군대 문화에 조련된 '남자'들이 사회로 복귀해 그 군사 문화를 학교와 직장 등으로 이식하고 있지 않던가. '병영 국가'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나를 비롯해) 우리는 군대화되지 않은 박명수, 이를테면 '다나까' 말투에 익숙지 않아 사회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요'를 사용한다든지, 관등성명과 제식이 어설픈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것이 희극적 성격을 담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박명수를 '구멍 병사'라 부르며 깔깔대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혹시 다음 주에 군대에 적응한 그를 두고 '남자다워졌다'느니, 그제야 '사람 구실을 하게 됐다'고 말하게 되진 않을까. <진짜사나이>를 향해 쏟아졌던 비판을 <무한도전>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답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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