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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은 어때?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쏟아지는 뜨거운 공감

너의길을가라 2017. 10. 2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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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구석이 있다. 특히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잠들기 전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와 같은 달콤한 자기 최면은 '다음 달엔..' 그리고 '내년엔..'과 같은 식으로 반복 재생산된다. 그렇게 우리는 오지 않은 시간, 즉 '미래(未來)'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한번 상상해보자. 미래의 나, 그러니까 10년 후의 나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불행'을 떠올린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행복'으로 미래의 나를 화려하게 꾸몄을 게다.



그런데 정말 나아지는 걸까.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미래는 우호적이기만 한 걸까. tvN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남세희(이민기)는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모든 게 포화나 고갈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나아지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기준도 새롭게 새워야겠죠."라고 덤덤히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윤지호(정소민)는 "세상이 나아질 리 없으니 당연히 내 인생도 더 나아질 리가 없다. 더 나은 내일이 아니라 최악의 내일을 피하기 위해 사는 걸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세상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남세희의 생각과 '그러므로 내 인생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윤지호의 생각은 기존에 사람들이 견지해 왔던 긍정적인 태도와는 상반된다. 물론 그러한 관점이 낯설진 않다. 한가롭게 '더 나은 내일'을 바라기보다 '최악의 내일'을 피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지금 우리들이 처한 삶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푹 내쉬지 않고, 어깨를 펴고 턱을 당긴다고 해서 '미래'가 우리를 향해 활짝 웃어줄 거란 낭만적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동아일보>와 KDI가 실시한 여론조사(2016년 12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를 살펴보자. '앞으로 살림 형편이 나아지리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고작 13%만이 '나아질 것'이라 대답했다. '더 못해질 것'이라는 응답은 무려 45.4%나 됐다. 1964년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28%이었고, 더 못해질 것이라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한편, <매일경제>와 LG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 업체 메트리스에 의뢰한 여론조사(2015년 12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에서는 미래 세대의 삶이 질이 더 좋아질 거라는 대답이 38%에 그쳤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장밋빛'에서 처절한 '흙빛'으로 바뀌고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한 두 남녀, 남세희 · 윤지호의 '계약 결혼'을 그리고 있다. 어째서 갑자기 '계약 결혼'으로 전개 되냐고?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혼(혼인)은 '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가령,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청년 취업난이 '결혼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확연히 그 관련성을 느낄 수 있다. (2016년 혼인 건수는 28만 1,600건으로 전년에 비해 2만 1,000건 감소했다.)


현실의 불안정성은 곧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의미하고, 자연스럽게 결혼(뿐만 아니라 연애조차도)은 '사치'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결혼관(비혼, 만혼)이 달라진 점도 있지만, 결혼은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적 요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38세의 웹디자이너이자 '하우스푸어'인 남세희에게 필요한 건 '예쁘고 어린 여자'가 아니라 '똑부러지는 세입자'이고, 30세의 보조 작가이자 '홈리스'인 윤지호가 절실히 바라는 건 '보증금 없는 월셋집'이다. 



"그래도 좀 놀랐습니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결혼관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서. 세입자로서의 결혼을 선택하신 게, 사실은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그냥, 말씀하신 것처럼 애정이나 사랑, 뭐, 이런 게, 적어도 2년 동안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저한테 지금 필요한 건 저 방이니까요. 그리고 사실은 살면서 한번 쯤은 해보고 싶었어요, 결혼."


서로의 성별을 오해하면서 황당한 동거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들이 결혼이라는 걸 결심하게 된 이유가 흥미롭다. '애정'이나 '사랑'이 아니다. '우정'과 '의리'도 아니다. 오로지 '수지타산'이다. 프로포즈를 받고 나서 "혹시 나 좋아해요?"라고 묻는 남세희에게 윤지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요."라고 답한다. 그 대답을 들은 남세희는 오히려 다행스러워 한다.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얽히는 상태는 피곤할 뿐더러 완전한(!) 결혼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물론 남세희와 윤지호의 '계약 결혼'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형태의 결혼일 것이다. 여전히 애정과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관을 가진 부모 세대에겐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세대뿐만 아니라 현 세대에게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두 주인공이 그려가고 있는 '계약 결혼'이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 그건 아마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잃어버린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공감 때문일 것이다. 



당장 오늘조차 약속받지 못한 세대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결혼은 멀고도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쯤되니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금수저들이나 하는 의식"이라는 윤지호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더욱 가슴 깊이 박힌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어쩌면 결혼은 '생존'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빗나간 전통의 강제일 뿐 비효율적이며, 비인권적"이라는 남세희와 "이번 생에 연애는 개뿔, 차라리 방 한 칸이 현실적"이라는 윤지호의 '2년제 입주 결혼 프로세스'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비록 표절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공감을 바탕으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첫회 2.203%였던 시청률은 3.841%(4회)까지 뛰어올랐다. 독특한 개성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이민기와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며 연기력을 탄탄히 다진 정소민, 두 배우의 100점짜리 조합이 드라마의 인기몰이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청년 세대의 연애관, 결혼관을 현실적이고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상승세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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