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가수 방미의 김부선 비난이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4. 9. 1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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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수많은 불의와 부당함을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회를 선택한다. '부러 싸워서 뭐해. 고생만 하지.' 라며 가던 길을 재촉한다. 혹은 '에이, 누군가는 나서지 않겠어? 당장 나 살기도 벅찬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불의가 활개치고, 부당한 일들이 판치는 것은 기실 비겁했던 우리들의 책임인지도 모르겠다.


앞장 서서 싸우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가급적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냥 눈 감고 지나가면 모든 것이 편안하지 않던가. 법정 분쟁에 휘말리면 몇 년이 걸리지 알 수도 없고, 비록 작은 규모의 집단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악마의 속삭임은 달콤하기만 하다. 그래, 다른 누군가가 나서주겠지.



옥수동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밝혀낸 배우 김부선은 비겁했던 우리가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찾았던 '누군가'였다. 그는 우리들이 외면했던 불의와 부당함에 맞서 꿋꿋하게 싸워왔다. 그것도 무려 2년이나 되는 기간동안 말이다. "수 십만원의 관리비가 나와야 정상인 집에서 150원, 300원, 몇 만원 밖에 내지 않는 것이 말이 되냐"는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기나긴 싸움은 급기야 '폭력 사건'으로 번져 세상에 공개됐다.


언론의 보도는 공정하지 못했다. 자극적인 기사를 원했기 때문일까? 김부선이라는 배우가 마뜩지 않았던 탓일까? 초기의 언론 보도는 '김부선, 반상회에서 폭행'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대해 김부선은 "제가 주민들에게 그동안 난방비리, 관리비리 제보하려는 순간 그들이 난입해서 입 막았고 경찰들 부르라고 주민들 협박하고 우리가 나가면서 폭언 폭력까지 하고 내게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방송에 제보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사건의 본질은 '폭행'이 아니라 '부녀회장의 난방비 비리'였다. 게다가 폭행도 김부선이 아닌 부녀회장 측에서 먼저 가한 것이었다. 지난 15일, JTBC는 김부선과 주민 사이의 다툼이 담겨 있는 CCTV 영상을 공개했고, 김부선이 먼저 폭행을 당했음에도 이러한 사실은 묵살하고, 부녀회장이 맞은 부위만 방송에 내보냈다. 편파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 관계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부선이 주장한 '아파트 난방비 비리'는 사실이었을까? 지난 16일, 서울시는 "성동구 옥수동 H아파트의 난방비가 제대로 부과되지 않은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며 경찰 수사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해당 지역구의 시의원이 H아파트에서 난방비 등 관리비 비리가 있는 것 같다고 알려와 현장 실태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는 놀라운 지경인데, 한겨울 난방량이 '0'으로 표기된 사례가 300건, 가구당 난방료가 9만원 이하인 사례가 2천398건이나 적발됐다고 한다. 아파트 부녀회장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세간의 풍문은 사실이었던 셈이다. 물론 모든 아파트가 그렇진 않겠지만, 이쯤되면 다소 어렵더라도 전수 조사를 실시하거나 공권력이 개입해 사법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 <아시아경제>에서 발췌 -


한편, 가수 방미는 뜬금 없이 자신의 블로그에 '김부선 난 이분이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는 글을 게재해 김부선을 비난하고 나섰다.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김부선에 대한 방미의 개인적인 악감정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탓에 객관적이고 공평한 비판은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상대방을 흠집내고 끌어내리고자 하는 저급한 심리만 도드라져 자기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한 꼴이다.


'내가 LA에 있을 때나 서울에 있을 때나 이 분은 연기자로보단 자기 개인적인 일로 더 바쁘고 시끄럽게 사는 이유가???'라는 대목을 비롯해서 '연예인은 외롭고, 허접하고 고달프게 혼자 지내도 그렇게 지내는 것에 익숙하도록 연습해야 한다'와 '나처럼 제한된 사람만 만나던가' 등의 부분에서 방미의 다소 왜곡된 연예인관(觀)을 확인할 수 있다.



'연예인'은 단순한 직업일 뿐이다. 우리는 특정한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물론 연예인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직업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모조리 포기하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연예인으로서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몫이다. 따라서 방미의 섣부른 조언은 상당히 주제넘은 '짓'이다.


김부선이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싸운 것이 어찌 '개인적인 일'일 수 있겠는가. 이는 김부선이 거주하고 있는 성동구 옥수동 H 아파트 주민 전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아파트 부녀회 등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아닌가? 이번 사건을 통해 전국의 아파트 부녀회에 대한 실태파악이 진행될 것이고, 이는 결국 부정한 사회를 바로잡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을 어찌 '개인적인 일'이라 치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대학교도 나오지 않아 아는 것도 많지 않다. 그런 내가 이 아파트 단지의 관리비, 공동체 지원금 등 공금 비리에 대해 파헤치게 된 것은 각박하고 암담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절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부선)


방미는 '우린 최소한 대중들에게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직업인으로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제일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김부선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인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성동구 옥수동 H 아파트의 주민이다. 또, 사랑하는 딸에게 자랑스럽고 싶은 한 명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의 외로운 싸움은 이렇듯 그의 다양한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의에 대해 민감히 반응하고, 부당함에 대해 끝까지 맞서 싸우는 김부선을 향해 대중들은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가수 방미의 뜬금없는 지적질에 사람들은 '방미 난 이분이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수 방미에게 그의 섣부른 조언을 되돌려주고 싶다.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써서 쓸데없는 논란을 일으키기보다 '외롭고, 허전하고, 고달프게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더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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