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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의 의도된 숨고르기, 빈틈은 현빈으로 가득 채웠다

너의길을가라 2018. 12. 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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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숨고르기일까, 단순히 힘이 빠진 걸까. 


"이게 뭐지?" 드라마가 끝난 뒤 발화되는 말은 늘 똑같지만, 그 뉘앙스는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순수한 '충격'과 '놀람'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무수한 떡밥 사이에서 방황하는 '의문'으로 수렴된다. 얼마 전까진 그 의문이 드라마 내부의 이야기로 향했다면, 7회를 기점으로 외부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송재정 작가의 고질병인 '초반의 임팩트 있는 전개 이후에 이어지는 느슨함'이 이번에도 재발한 것 아니냐는 '의문' 말이다. 


지난 22일 방송된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 7회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워낙 충격적인 소재와 숨가쁜 전개, 세련된 연출에 길들여 있었던 걸까. 낯선 그라나다에서 익숙한 서울로 배경을 옮긴 <알함브라>는 일종의 소강기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뭔가 '특별함'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섣불리 판단을 하긴 이른 감이 있다.



유진우(현빈)가 부재한 사이 IT 투자회사 제이원은 차병준(김의성) 이사장 - 박선호(이승준) 이사 체제로 재편됐다. 1년은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편, 박세주(찬열)가 개발하고 유진우가 투자한 AR(증강현실)게임은 출시되기 직전이다. 게임에 접속한 사람들은 음식점의 화장실에 숨겨진 가상의 칼을 찾아 헤매고, 광화문 광장의 새종대왕 동상 앞에서 게임 속 적들과 결투를 벌인다. 


죽은 차형석(박훈)의 추도식을 맞아 유진우가 돌아왔다. 여전히 그의 앞에는 NPC(Non Player Character)가 된 차형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환각을 보냐는 차병준의 질문에 유진우는 "계속 보이면 사람이 살 수가 없죠."라며 둘러댄다. 마치 차병준을 경계하는 듯하다. 추도식에서도 어김없이 차형석이 나타났지만, 유진우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뒷춤에서 여유롭게 권총을 꺼내들고 차형석을 간단히 제압했다. 


"내가 1년 동안 뭘 깨달았는지 알아? 미친 사람한테도 논리가 있고, 미친 세상에도 법칙이 있어. 이상하지? 난 미쳤고, 형석인 망상일 뿐인데, 망상과 싸우는데도 게임 룰에 따라서 레벨 업이 돼 있더라고."




사실 유진우는 3개월 전에 몰래 서울로 돌아와 있었다. '법칙'을 깨달은 그는 게임에 빠져 지내며 레벨업에 매진했다. 레벨 50을 넘기자 비로소 현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권총을 손에 넣자 드디어 차형석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다. 칼을 들고 덤벼드는 차형석이 접근하기 전에 처리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얻자 유진우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2막이 시작된 셈이다.


분명 7회는 전체적으로 느슨했다. 추도식 장면은 과하다 싶을 만큼 늘어졌다. 모든 상황이 긴박하게 진행됐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추도식은 등장 인물들 간의 달라진 관계와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무엇보다 유진우를 바라보는 전처의 의미심장한 표정과 그 모습을 지켜 본 차병준의 눈빛은 섬뜩했다. 이렇듯 표정 변화를 세심히 잡아내면서 숨겨진 복선들을 살며시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특히 현빈은 깊어진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낸 눈빛과 표정은 감탄을 자아냈다. 자신의 감정 속에 시청자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이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배우의 품격이 느껴졌다. 물론 내레이션 몇 마디면 정리됐을 정희주(박신혜)의 상황을 지나치게 긴 호흡으로 담아낸 건 아쉬웠다. 물론 박신혜의 분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해야 할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7회는 평균 시청률 7.442%, 최고 8.6%를 기록했다. 


유진우와 정희주의 로맨스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지지부진한 두 사람의 관계가 마뜩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형성된 두 사람의 감정이 '호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속도와 흐름은 그리 나쁜 게 아니다. 그들에겐 '정세주(찬열)'라는 숙제가 있고, 그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진우는 여전히 유부남이지 않은가. 게다가 전처와의 관계도 명쾌히 정리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시청자들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의문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가령, '유진우가 렌즈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게임에 접속됐는지에 대한 답이 제시되지 않았다. 또, 세주의 실종도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다. 차형석의 존재가 비서 서중훈(민진웅)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 등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물음표의 색은 더욱 짙어졌다. 차병준과 박선호에 대한 의심도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고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송재정 작가는 8회에서 꽁꽁 숨겨뒀던 '비밀'들을 쏟아내 시청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알함브라>가 추진력을 잃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송 작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단계는 아니다. 오히려 AR게임이 상용화 됐을 때의 상황들을 짚어낸 부분들은 흥미로웠다. 부담스러웠을 전환점을 넘긴 <알함브라>의 마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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