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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 시청자들은 왜 이수임이 아닌 한서진의 편에 섰나

너의길을가라 2018. 12. 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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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SKY 캐슬(스카이캐슬)> 열풍이 불고 있다. 입시 교육의 부조리한 현실을 까발리고 있는 이 살벌한 풍자극에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어딜가나 드라마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학종', '입시 코디네이터' 등이 대화의 단골 소재로 오른다. 첫 회만 해도 시청률 1.7%의 조촐한 출발이었으나, 어느새 11.3%(10회)까지 치솟았다. 이런 추세라면 <품위있는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JTBC 드라마 최고 시청률 12.065%도 머지 않아 보인다. 


이 뜨거운 반응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입시'라는 친숙한 소재가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이 아닌가. 또, 우리들의 삶을 (1차적으로)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다들 할 말이 많나보다. 발언권이 많다보니 뜨거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학교나 입시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SKY 캐슬>만큼의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만듦새다.  <SKY 캐슬>의 경우 충분한 취재가 뒷받침 됐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에 따른 현실감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 이야기의 쫄깃함이 시청자들을 몰입시켰고, 미스터리한 요소까지 들어있어 긴장감이 고조됐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등장시켜 각각의 욕망들을 구체화 했고, 흥미로운 상황들을 설정해 재미적인 요소도 극대화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상류층 0.1%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점이 주효했다. 그들이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사교육에 올인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신묘한(?) 존재에 자녀를 통째로 맡기고 있다는 건 <SKY 캐슬>을 통해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주제 의식도 명료하고, 소재도 흥미로울 뿐더러 이야기의 짜임새도 남다르다. 이 모든 건 유현미 작가의 탄탄한 필력 덕분이다.  


<SKY 캐슬>을 보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우주 엄마' 이수임(이태란)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이다. 뒤늦게 출현한 이수임은 SKY 캐슬 내의 룰에 딴지를 거는 한편, 한서진(염정아)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나섰다. 게다가 서진의 과거, 곽미향을 모두 알고 있는 천적이기까지 하다. 시청자들은 그런 수임에게 '오지라퍼'라는 별명을 붙이고, 그의 선의에 찬 언행들을 오지랖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이수임은 이상적인 인물이다. 욕망에 휩쓸리기보다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며 살아간다. 물론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균형을 잡아 나간다. 반듯한 의사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아들과도 원만한 관게를 유지하고 있다. 입시에 목숨 걸고 사교육에 올인하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아들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한다. 정의감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라 SKY 캐슬 내에서 벌어진 비극에 (동화) 작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영재네가 겪은 참담한 사건을 사회에 고발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통받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열어주고 싶은 어른의 심정이랄까. 심지어 자신의 이런 생각에 대해 자기 검염을 할 만큼 성찰적인 인물이다. 독야청청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이렇듯 반듯한 캐릭터가 주는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욕망의 악다구니 속에서 혼자 깨끗한 듯한 그에게 시청자들은 반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네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뭔데? 없는 사람들 편인양 날 공격한 진짜 이유가 뭐니?"

"네 자식 대학 보낼 코디라 숨기고 싶은 네 심정 알겠는데, 주민들 부추겨 날 압박하는 네 이기적 모성도 알겠는데, 그걸 없는 사람 위하는 척 포장까지 해? 등록금 없어 힘들어 하던 시절 잊었니? 선지 팔던..!" 


지난 10회 방송에서 수임이 SKT 캐슬 내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것을 반대하는 내용의 주민 회의가 열렸다. 집단 린치를 당하던 수임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흥분 상태에서 서진의 과거를 폭로하고 만다. 분명 홧길에 저지른 실수였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워딩'이 너무 치졸했다. 아마 이 순간은 수임에 대한 비호감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결정적인 장면이었으리라. 이로 인해 서진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만다. 


물론 수임을 옹호하는 시청자도 상당수다. 수임의 행동을 오지랖이라 여기는 반응을 두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욕망과 탐욕에 길들여졌는지 잘 보여준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또, 수임의 폭로에 대해서도 착한 사람은 매번 당하고만 있어야 하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서진이 수임에 대해 인신공격을 한 부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수임의 잘못만 부각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논리다.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개탄할 필요까진 없다. 아무래도 '드라마'라는 특수성 안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놀랍게도 <SKY 캐슬>은 선악의 구도로 몰고가지 않고, 욕망의 구도로 몰아갔다. 각각의 인물들에 개연성을 부여했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여줬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상황에 부합하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됐고, 그것이 옳건 그르건 응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한서진이 있다. 드라마는 서진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공들여 설명했다. (반면, 수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공감을 자아낼 설정이 미약하다.) 서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끔찍했던 과거를 끊어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시어머니로부터 인정받으려 얼마나 악착같이 살았는지 말이다. 그가 부정하고 왜곡된 사고방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일정 부분 두둔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해 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연기'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공허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역시 염정아의 연기력에 대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발음과 발성, 맛깔스러운 대사와 순간순간 변하는 표정, 강약 조절과 최적화된 동작들, 게다가 다른 캐릭터들까지 살려주는 조화로움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염정아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이 서진의 편에 서게 만들었다. 


이수임에 대한 반감과 한서진에 대한 동정론, 이 기괴하게 느껴지는 흐름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잃어버린 탓이라기보다는 인생 드라마를 만난 염정아의 힘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거기에 한서진에게 자신을 투사한 개개인의 욕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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