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정혜신의 사람 공부』, 거리의 의사가 들려주는 치유의 본질

너의길을가라 2016. 10. 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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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 정혜신을 처음 만난 건, 2001년 출간된 『남자 VS 남자』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대한민국의 소위 '유명한' 남성 21명을 소환해놓고, 각각의 키워드로 2명씩 묶어 링 위에 올리는 방식은 매우 신선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자기 인식(내맘대로 왕자. 니맘대로 독재자)'이라는 키워드로 엮은 대목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가수 조영남을 '열등감(완벽하지 못한 황제. 망가지지 않는 광대)'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본 건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책에는 '심리분석'과 '인물평전'이 적절히 섞여 있는데, 여기에서 그가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소양(素養)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각각의 인물에 대한 끈기 있는 조사(調査)와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인다. 자연스레 독자들은 수긍을 하게 되고, 이를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그의 접근은 전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작가'로서의 소질일까, 아니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일까.  


당시 정혜신에겐 "한국 남성을 이보다 더 잘 이해하는 여자는 없다"는 평가가 뒤따라다녔는데, 그 '목적어'는 2005년 『사람 VS 사람』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사람'으로 대체됐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비는 남성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여성'의 출현이 사회의 억압에 가려져 있던 2005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살짝 고려하기로 하자. 무엇보다 '아버지'라는 키워드로 박근혜 대통령과 문성근 씨를 묶은 대목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그리하여 정혜신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읽혔다.


후속편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 이후로 '정혜신'이라는 이름은 '신문'에서 더 많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서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를 돕기 위해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2011년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났던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안락한 공간을 벗어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강연 '공부의 시대'에 참여한 본인의 강의를 엮은 『정혜신의 사람 공부』는 그가 터득한 '사람 공부'에 대한 결론이 담겨 있는 책이다. (참고로 '공부의 시대' 시리즈엔 강만길, 김영란, 유시민, 진중권도 참여했다.) 과연 정혜신이 깨달은 '사람 공부'가 무엇인지 살짝 들여다보기로 하자.


정혜신은 "내가 의사가 아니고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의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람'이 될수록 탁월한 치유자는 절로 된다"고 고백한다. 무슨 말일까? 그는 진료실은 '철저하게 의사를 위한 공간'일 뿐, '환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라는 절대적 권위가 보장된 곳에서 나는 사람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료실을 벗어나면서부터, 그리하여 사람의 속마음을 만나게 되면서 '더 섬세하고 더 과감한 상담도 가능해졌'고, '훨씬 더 용한 의사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진도 팽목항에 수십 개의 천막이 세워졌다.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유가족을 위해 심리 상담 부스가 차려진 것이다. 기사로도 수 차례 보도됐지만, 그 누구도 이 공간을 찾지 않았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며 심리 상담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심리 상담소는 계속해서 텅 비어 있었다. 이후 안산에서 장례식이 치러졌고, 정부합동분향소를 비롯해 안산 지역 곳곳에 상담 센터가 차려졌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보면 말이다. 혹은 '일반인의 시각'에서도 그러했다. 그들은 왜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심리 상담을 받지 않는 것일까.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텐데 말이다. 공개된 장소를 찾아가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정부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들로 꾸려진 상담 팀을 유가족들을 일일이 방문했지만, 유가족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문가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정혜신은 그것이 '치유의 교과서적인 방식'이라고 꼬집는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정작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혜신은 이렇게 되묻는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과연 2014년 대한민국의 세월호 현장에도 맞는 이야기였을까요?" 바닷속에서 내 아이를 아직 찾지 못한 상황, 부모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 자식의 생사 여부에 온몸의 신경이 빨랫줄처럼 팽팽하게 곤두서 있'고, '아이를 찾을 때까지는 자신에게 최소한의 이완도 허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마음이 편하자고 상담을 받을 수 있었을까?



죄의식과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그들에게 속 편하게 '상담'이나 받으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부끄러워진다. 정혜신은 "세월호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치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공부나 많이 했지 내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혜신은 달랐다. 그는 '정신과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환자'를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상담 내용을 살펴보자.


"선생님, 제가 미친년 아닌가요?"

"미치면 어때요. OO가 갑자기 없어졌는데 OO 엄마가 잘 지내면 그게 엄마예요? OO가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가 있어요. 그러면 OO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그렇죠? 내가 미친 게 아니죠? 제가 엄마라서 그런 거죠?"


정혜신이 '교과서'에 어긋나는 상담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십여 년을 넘게 현장에 머물면서 체득한 치유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자기 통제력'과 '자기 치유력'이 있다는 확신이다. 또, 교과서를 통해 배우게 되는 치유의 이론이나 일반적인 상식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은 모두 똑같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이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어떤 이론이나 학문도 누군가에겐 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와 같은 사례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는 '치유를 공부하는 건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고,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지식이나 버젓한 자격증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공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격증과 학위로 자신만의 높은 탑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개별적인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 당신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정혜신의 당부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전문가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그닥 관계 없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삶이 전문가의 도움 없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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