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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패러디 한 ‘빚투’, 고민과 배려없는 네이밍이 참담하다

너의길을가라 2018. 11.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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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닷(신재호)을 시작으로 래퍼 도끼(Dok2), 비(정지훈), 마마무의 휘인, 배우 차예련까지 연예인들을 겨눈 채무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마치 봇물이 터진 듯 피해자들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의 경우에는 부모의 빚이 문제가 된 케이스다. 한편,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우지원은 (본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지인에게 빌린 5,000만 원을 갚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폭로의 대상이 된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문제에 대처하고 있고, 대중들은 그 갖가지 양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마이크로닷의 경우는 잘못된 대처의 상징처럼 강렬하게 각인됐다. 일과 연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상종가를 치고 있던 마이크로닷은 부모의 사기 사건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사실무근이며 강경 대응하겠다"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태도가 적방하장이었다는 게 밝혀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부모의 피소 사실이 밝혀지고, 사건의 본질이 드라나자 마이크로닷은 공식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출연 중인 방송에서 모두 하차했다. 앞으로 마이크로닷을 TV에서 보긴 힘들어졌다. 마이크로닷이 조금 더 신중하게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견뎌 왔단 피해자들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래퍼 도끼(Dok2)는 어머니가 동창으로부터 과거에 빌린 1천만 원을 아직까지 갚지 않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SNS를 통해 ‘마이크로닷과 자신을 엮지 말라’며 발끈하며, ‘어머니는 사기 친 적 없고 법적 절차를 받은 것이다. 돈은 저에게 오면 갚아드리겠다. 저는 몰랐던 일이다. 잠적한 적 없고 사기 친 적 없다.’고 해명했다. 여기까지였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끼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1천만 원은 한 달 밥값밖에 안 되는 돈"이라며 허세를 떨었다.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불필요한 돈자랑이자 피해자를 농락하는 발언이었다. 그것을 힙합의 스웩이라 여겼던 걸까.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던 대중들은 도끼의 한심스러운 태도에 분노했다. 얼마 후 채무 문제를 원만히 해결했다고 밝혀졌지만, 도끼의 경솔한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비의 경우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채무를 적극 변상하겠다고 밝히고 피해 주장 당사자를 만났다. 그러나 차용증과 약속어음 원본도 없이 1억 원의 합의금을 요청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또, 휘인과 차예련은 문제의 아버지와 사실상 인연이 끊어진 상태로 살아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차예련은 15년 동안 왕래도 없는 아버지의 빚을 계속해서 갚아왔고, 그 금액이 1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제 대중은 채무 폭로의 대상이 된 연예인들의 '대응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연좌제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부모의) 채무 문제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지,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해결하려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당연히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빚은 청산돼야 마땅하다.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그런데 이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바로 언론의 태도다. 

일각에서 연예인들을 겨눈 잇따른 채무 폭로를 '미투'에서 따온 '빚투'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제 다수의 언론들이 이를 기사 제목에 떡하니 내걸었다. 처음 ‘빚투’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나 이를 활용하는 이들 모두 ‘적절한’ 혹은 ‘딱 떨어지는’ 네이밍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채무로 인한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을 모르지 않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그들의 최후의 제보를 존중한다.

그러나 ‘미투’에서 따온 것이 명확한 ‘빚투’라는 말을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사용하는 게 괜찮은지는 의문이다. 미투는 여성들의 처절한 저항 속에서 시작된 운동이자 언어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그 외침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해자들이 대한 단죄는 물론, 사회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 해결도 요원하다. 그런가 하면 피해자를 ‘꽃뱀’이라 부르며,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비난하고 억누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미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참혹하고 끔찍한 현재다. 그런데 아무런 고민 없이 미투를 패러디처럼 활용하며 희화화해도 되는 걸까? 아무런 배려 없이 우스개처럼 입에 담아도 되는 걸까? 그 언어가 담고 있는 무게를 알고 있다면, 그 언어를 말하기까지 지옥을 헤맸을 피해자를 고려한다면 좀더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맹렬히 끓어오르면서도 한없이 무심한 사회의 차가운 온도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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