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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김희애는 자신의 위선과 기만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20. 3. 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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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부부의 세계>는 2회 시청률 9.979%(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했다.

"황폐해진 내면을 위선과 기만으로 감춰야 하는 이 비루함, 여기가 바로 지옥이었구나. 이 지옥 같은 고통을 어떻게 해야 돌려줄까. 남김없이, 공평히, 완벽하게."

남편의 차 트렁크 안에 숨겨져 있던 휴대전화, 거기엔 다른 여자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저장돼 있었다. 자신의 환자이자 지역유지인 엄효정(김선경)의 딸 여다경(한소희)이었다. 충격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JTBC <부부의 세계>의 선우(김희애)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남편의 불륜을 묵인하고 심지어 방조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경악스러웠다. '진실'을 알게 된 선우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분노한 선우는 구급 약품 박수 안에서 가위를 꺼내 손에 쥐었다. 한가롭게 생일파티를 즐기고 있는 태오(박해준)의 심장을 찔러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등 뒤에 숨긴 가위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고, 끝내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저 그 통쾌한 순간을 상상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가증스럽게도 태오는 선우에게 "내 불안한 영혼을 품어주는 여자"라며 사랑을 고백했다. 구역질이 났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선우는 침착하게 태오에게 다가가 키스를 건넸다. 다경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씁쓸해 했다. 선우는 그런 다경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파티는 계속됐다. 태오는 다경에게 다가가 몰래 손을 잡는 대담한 짓을 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비루함을 느낀 선우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지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연 선우는 태오의 분륜을 응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응징은 쉽지 않다. 선우는 태오를 망가뜨리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름부터 답답한) 가정사랑병원 부원장이라는 사회적 지위, 안락하고 건실하(다고 믿었)던 가정, 사랑하는 아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걸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런 것들로 구성된 자신의 자존감이 무너질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선우는 멈춰선다. 누구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그가 아닌가.

결국 선우는 내버리려고 했던 웨딩 사진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남편의 짐들도 원상복구 시킨다. 그리고 태오가 아들 준영(전진서)과 함께 야구 캠프에 다녀도록 한다.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을까. 그조차도 기만이었다는 걸 선우는 알고 있었을까. 설명숙(채국희)의 말처럼, 시간이 필요했던 건 오히려 선우였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온 다경이 태오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선우는 태오를 버리지 못한다.

"너, 여자 있지?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좋겠어. 결혼할 때 우리 그런 얘기 했었잖아. 살다보면 다른 상대가 눈에 들어올 수 있지 않겠냐고. 그땐 서로 솔직해지자고. 기억나? 이제라도 태오 씨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깨끗이 정리하면 나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잠깐 육체적으로 끌렸던 것뿐이잖아, 그치? 잠깐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견디기 너무 힘들지만, 살다보면 담담해지는 날이 올 거야. 인생 기니까. 근데, 거짓말은 용서 못 해. 그건 진짜 배신인 거야.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당신, 여자 있지?"

야구 캠프에서 돌아온 태오에게 선우는 묻는다. 모든 걸 용서할 테니 솔직하게 대답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사실상 빌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러나 불륜 사실이 들통난 걸 아직 모르고 있는 태오는 오히려 "우리 사이에 신뢰가 이것밖에 안 돼?"라며 역정을 내며 "나한테 여자는 지선우 하나밖에 없어"라며 역겨운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선우로선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은 진짜 배신이므로 용서 못 한다고 선언했으나 선우는 선뜻 남편을 버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선우는 남편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바로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저지른 불륜을 참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는 순간 버렸어야 했다. 그러나 선우는 저 멍청한 남자를 놓아 버리지 못했다.

선우는 (불필요한) 싸움을 선택했다. "이태오가 선택하는 걸 보고 싶어, 나 지선우를."이라고 말하는 그의 언어는 여전히 기만적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실추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일까. 그런데 태오가 선우를 선택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상처뿐인 승리? 그래서 그 싸움은 무의미에 가깝다. 선우는 모르는 걸까. 가장 큰 복수는 거짓말을 한 순간 태오를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남자친구에게 상습적인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있는 현선(심은우)에게 정신 차리라고, 하루빨리 그 관계를 끝내라고 조언하면서도 정작 선우는 본인을 가두고 있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것이 정녕 '부부의 세계'란 말인가. 1회에서 현서가 선우에게 던진 "실망이네요, 선생님같이 성공한 여자도 나 같은 여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게."라는 말은 뼈아프게 들린다. 두 사람의 삶이 엇대어지자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된다.

현서는 자신을 때리는 남자를 동정한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돈이 떨어질 때면 저러는 거라며 두둔한다.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 남자를 구원하겠다는 헛된 환상에 갇혀 있다. 선우는 어떠한가. 불륜을 저지르고 거짓말까지 하는 남편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선택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주변부로 밀려난 여자는 능력이 없어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못하고, 능력있는 성공한 여자는 지킬 게 많아 벗어나지 못한다.

아직 섣부르지만, 이 드라마의 최악의 결말은 저 가증스러운 부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식적인 웃음을 띠고 와인잔을 부딪치며 저 위선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것일 게다. 마치 '이게 부부의 세계야'라고 말하듯 말이다. 부디 선우가 각성하길 바란다. 상대적으로 좋은 타이밍에서 손절하는 건 불가능해졌지만, 밑천을 다 잃지 않는 선에서 저 기만의 난파선을 벗어나길 기대해 본다. 그러나 성공한 여자마저도 옭아매는 결혼이라는 관계가 그리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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