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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현과 LG 트윈스, 이승엽과의 정면 승부를 피해야만 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5. 5. 3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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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줄 아니겠느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붙을 것이다. 이승엽과 승부를 하는 투수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제구가 흔들려서 볼넷을 내줬다고 일부러 이승엽을 피했다고 야유를 한다거나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 또 승부처에서 1루가 비어있으면 고의4구로 거를 수도 있다"


30일 삼성과의 경기를 앞두고 LG의 양상문 감독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붙을 것'이라며 이승엽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예고했다. 물론 특정한 상황, 다시 말해서 제구가 흔들린다거나 승부처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9회 2사 2루에서 LG 투수 신승현의 플레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포수 유강남은 바깥 쪽으로 한참 떨어져 자리를 잡았고, 공은 배트를 휘두를 수 없을 만큼 멀찌감치 날아갔다.



양상문 감독의 사전 쉴드처럼 제구가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앞서 박한이(4연속 볼)와 박석민(3연속 볼)을 상대할 때는 제구력에 문제가 있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이승엽을 상대할 때는 오히려 '정확히 제구가 된' 볼이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다고 승부처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이순철 해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승부를 안 하는데요? 승부를 안 합니다. 지금 승부를 안 해요. 이건 글쎄요. 제가 봐서 이건 승부를 만약 LG가 안 하려고 한다면 이건 좋게 보긴 어렵습니다. 승부를 안 해요. 지금 9:3, 여섯 점 차입니다. 그리고 1루가 비어 있고, 투 아웃인데, 이승엽과 승부를 하지 않는다. 아, 이건, 이 상황을 LG팬들도 이해를 할까요? 글쎄요. 이 장면은 찬성하기 어렵고요. 이건 좀 실망스러운 장면입니다."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400호 홈런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이승엽과 그의 홈런 소식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팬들로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400호 홈런까지 얻어맞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홈에서 스윕을 당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LG는 이승엽을 위한 잔칫상까지 마련해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기록의 희생양(이라는 표현이 합당할까?)이 되고 싶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구단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면 승부'를 피하는 모습은 프로답지 못했다. 특정 구단, 특정 선수의 팬의 입장을 떠나서,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할 장면임에 분명했다.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9회 2사 2루에서 이승엽은 홈런을 노렸겠지만, 마흔 살의 이승엽은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홈런을 때려냈던 그 때의 이승엽이 아니질 않은가?



LG 신승현 선수의 도망가는 피칭을 보면서, 이승엽 선수가 56호 홈런에 도전하던 2003년 10월 2일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던 롯데의 이정민 선수가 떠올랐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슬금슬금 승부하기를 피하던 투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정민은 달랐다. 그는 이승엽과의 승부를 피하지 않았고, 비록 3구 째 홈런을 맞았지만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에게는 '이승엽에게 56호 홈런을 허용한 투수'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이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로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불명예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정민'이라는 이름은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또, 야구 팬들에게 배짱이 두둑했던 선수, 도망가지 않고 정면승부했던 선수를 기억됐다.



6월 2일부터 삼성과의 3연전을 앞두고 있는 롯데의 이종운 감독은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홈런 기록을 달성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맞는 사람 역시 평생 이름이 따라다니게 된다. 불명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록에 일조했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과연 롯데는 이승엽과의 승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포항구장에서 열린 20경기에서 72타수 28안타(9홈런)로 타율 0.389를 기록할 정도로 고감도의 타격감을 뽐냈던 이승엽이 롯데를 상대로 400호 홈런을 쏘아올릴 수 있을까? 홈런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부디 '정면 승부'를 통해 결과를 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팬들이 진정 바라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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