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끝없는 의심의 확장<곡성>, 미끼를 물 준비가 됐는가?

너의길을가라 2016. 5. 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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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국가 : 한국 

감독 : 나홍진

제작/배급 : 사이드미러, 이십세기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이십세기폭스코리아

런닝타임 : 156분 

등급 : 15세이상관람가 


줄거리 :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파오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종구’. 외지인을 찾아 난동을 부리고,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이는데...




"요렇게 소문이 파다하면 무슨 이유가 있는 거야"


사람들은 '난해(難解)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보다 더 사람들을 쫓기게 만드는 건 '불확실함'이다. 분명하고 명쾌한 답을 요구하지만, 의외로 우리를 안식케 하는 건 거대한 '모호(模糊)함'이다.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풀이'되는 모호함. 이들을 납득시키고, 저들을 이해시키는 모호함 속에서 우리는 깊은 숨을 내쉰다. <곡성>은 그 모호함 속에서 비롯됐고, 그 모호함으로 자신을 둘러쌌고, 그 영화를 본 우리는 모호함에서 안정한다. 


"장례식장 갈 일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그러다가 전작에서 다뤘던 사건의 피해자를 생각하게 됐죠. 그분들께서는 왜 그런 피해를 당해야 했을까. 그런데 그 이유가 없는 것 같은 거에요. 그런데 이유를 못 찾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소멸하는데 이유가 없다는 게 되게 무섭게 느껴져서요. 그런 상황에서 저도 역시 신이 떠올랐죠. ‘왜 그랬느냐, 당신은 선하냐 악하냐, 실제 존재하기는 하느냐’라는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된 거에요."


<곡성>은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가 피해자가 된 원인을 찾아 들어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포인트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 였던 모양이다. 도대체 왜 죽어야 했는가. 그 질문은 곧 '인간'이라는 종(種)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됐고, 끝내 '신(神)'에까지 다다렀던 것이다. '신은 선한가, 악한가?' 아니, '신은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 <곡성>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보고 있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고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살과 뼈가 있느니라." 누가복음 24장 37~39절 


'피해자'에서 출발한 <곡성>은 '신'에 다다르고, 그 고민의 이야기를 '의심'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한다. 낯선 외지인인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마을에 나타난 후 의문의 죽음이 연달아 발생한다. '야생 버섯'이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외지인이 벌인 짓이라는 의혹과 함께 그 일본인을 둘러싼 온갖 나쁜 소문들이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기 시작한다. 의심은 확신이 되고, 어느덧 진실이 된다. 


포스터에 새겨져 있는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신신당부에도 관객들은 '미혹(迷惑)'되고 만다. 나홍진 감독은 '미끼'를 던지고 156분에 걸쳐 '낚시'를 한다. 관객들은 그 집요함에 결국 '미끼'를 물고 만다. 영화는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곡성>을 두고 '코미디 영화'라고 했다가 빈축을 사긴 했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기저(基底)에는 '비틈'에서 발생하는 '웃음'이 존재한다. 그 웃음은 긴장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스릴을 증폭하고 강화시킨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교차 편집은 절묘하기까지 해서 관객들은 '덫'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 못한 채 극의 흐름에 '잠식'된다. 어느 순간 관객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나홍진의 절묘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특히 미끼를 문 종구가 무명(천우희)과 무당 일광(황정민) 사이에서 의심하고 고민하는 대목에선 긴장감이 극도로 치닫는다.


"왜 하필 우리 딸이냐"는 종구의 질문에 일광은 낚시와 미끼에 빗대 '이유 없음'을 설명한다. "무엇이 낚일지 알고 미끼를 던지냐는 일광의 말은 피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데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무명은 종구의 의심 때문이라 단언한다. 이유를 제시한다. 이 장면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를 가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된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나홍진 감독의 모든 고민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물론 그 답은 '모호함' 속에 갇혀 있다. '신'의 영역이 그 질문에 '사람'인 우리들은 접근할 수 없다. 나홍진 감독이 각종 인터뷰에서 '스포일러'를 날린 탓에 외지인인 일본인이 '악마(귀신)'이고, 무명이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가 그토록 쉽게 그 컨셉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영화에 있어 그것이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성경 구절과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베드로의 부인'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 때문에 기독교적인 해석도 제시되는 등 <곡성>을 두고 수많은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장면들은 나홍진 감독의 '계산된' 트릭, 즉 '미끼'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혼돈 속으로 빠드리는 한편,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을 더욱 큰 혼돈 속으로 가둬놓기 위해서 말이다.



<곡성>은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다. '징그럽고 잔인하다'는 앓는 소리도 나오지만,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들은 그런 장면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또, 한편에선 영화에 대한 혹평도 쏟아지고 있지만, 이 영화가 (현재까지) 2016년 최고의 영화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여기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가씨>가 개봉하기 전까지) 2016년 최고의 '문제작'이라는 데까지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알량한 글 하나만으로 '곡성(哭聲)'을 다룬다는 건 어림없는 일이다. 실제하는 지명(전라남도 곡성의 한자는 '谷城'이다)을 비튼 제목(곡성군 측의 요구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지만)을 보라. 이 영화엔 수많은 '미끼'들이 잠복해있다. 외지인에 대한 설정이라든지, 공권력(경찰인 종구는 스스로의 무능을 끊임없이 드러낸다)과 종교(도움을 청하러 간 종구에게 신부님은 '병원에 가보라'고 답한다) 의 무력함, 악마로 분한 외지인과 마주한 부제(副祭) 이삼(김도윤)의 이야기 등 다뤄야 할 부분들이 숱하게 많다.




또, 배우들의 열연을 칭찬하기에도 글 하나가 부족할 지경이다. 초반부를 거의 혼자 이끌어가는 곽도원은 평범한 아빠이자 무능력한 시골 경찰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나홍진 감독이 말한 '코미디 영화'라는 말은 곽도원의 어수룩함에서 비롯된 '웃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천우희와 황정민은 시소의 양 끝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며 영화의 긴장감을 더한다.


분량 면에서 '손해(외지인과의 격투신이 편집됐다)'를 본 천우희지만, 그의 단단한 연기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실제 굿을 하는 것처럼 '오인'케 만들 만큼 완벽하게 '무당' 역할을 소화한 황정민은 또 어떠한가. 쉬지 않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그이지만, 소비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면서 캐릭터의 확장을 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귀엽고 능청스러운 딸(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하게 하는 장면은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인 효진 역을 맡은 김환희는 '귀신 들린 연기'까지 더할나위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나홍진 감독은 "천재적인 배우를 만나 영광이었을 정도였다"며 김환희에 대한 찬사를 잊지 않았다. 외지인 역할을 맡은 일본의 국민배우 쿠니무라 준은 "이렇게 힘든 현장은 처음이었다"고 말했지만 그 현장을 가장 '즐겁게' 받아들였던 연기자였다. 


<곡성>은 '스포일러'가 난무하지만, '스포일러'가 의미가 없는 영화다. 또, 영화관 안에서도 대단한 영화지만, 영화관 밖을 나선 후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그 온전한 깊이는 감독의 고민의 양과 질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곡성>, 한번 보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의심'의 또 다른 이름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결국 당신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자, 미끼를 물 준비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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