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꿈, 성공, 도전.. 제발 <플로렌스>를 자기계발의 언어에 가두지 말자!

너의길을가라 2016. 8. 2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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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이의 특별한 경험과 도전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성공 스토리'로 그려지곤 한다. 예쁘게 잘 다듬어진 이야기가 '것봐, 너도 할 수 있어!'라며 사람들을 자극하는 데 인용되고, 섬세한 공정(工程)을 통해 가다듬어진 마술 같은 스토리는 멋모르는 사람들을 '희망고문'하는 데 활용된다. '너도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 물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은 중요하지만, 무조건 '네 꿈도 이뤄질 거야!'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가 허접한 자기계발서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1%의 재능과 99%의 자신감으로 카네기 홀에 서다!' 영화 <플로렌스>의 포스터에 적힌 저 익숙한 포맷의 문구는 마치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듯 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주인공인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 1868~1944)의 이름을 제목으로 가져왔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음치 소프라노'라는 오명으로 불렸지만, 생을 마감하기 한 달 전인 1944년 10월 카네기 홀을 전석 매진시킨 신화를 쓴 인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7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플로렌스는 백악관에서 실력을 뽐내며 사람들 사이에서 '피아노 신동'으로 불렸다. 음대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로 포기해야만 했다. 정작 피아니스트의 꿈을 완전히 좌절시킨 건 결혼 당시 얻게 됐던 매독이라는 질병이었다. 매독으로 인한 증세도 그러했지만, 후유증으로 왼쪽 손을 원활히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좇아오는 죽음과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충만했던 덕분이다.



영화를 통해 접한 그의 삶은 고독했지만, 또한 아름다웠다. 삶으로 증명해낸 도전과 열정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하다'는 신호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기계발의 언어가 지배하고 있는 성공지향적인 이 사회가 플로렌스를 어떻게 '활용'할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봉을 앞둔 지난 16일 특별 시사회를 맞아 방송인 홍석천과 정신과 정문의 양재진 원장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주제로 각각 특별 강연을 했다고 한다.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를 관람했다. 큰 핸디캡을 가지고 있음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 '나 잘났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도 인생에서 좋은 윤활유가 될 수 있다. 플로렌스가 주변인들에게 카네기 홀에서 노래를 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처럼, 내 의지와 꿈을 정확히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첫 번째 방법이다." (홍석천)


플로렌스는 '음악은 나의 삶'이라 공언할 만큼 음악과 노래에 빠져 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교 클럽인 '베르디 클럽'을 설립해 음악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음치라는 사실이다. 음정과 박자, 호흡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지독한 음치였다. 그걸 모르는 건 플로렌스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카네기 홀에서 노래를 부르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하나의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엄청나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음치'라는 '큰 핸디캡'을 가졌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플로렌스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꿈을 이룬' 전형적인 인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언어는 마뜩지 않다. 그가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쉽다. 또, '내 의지와 꿈을 정확히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첫 번째 방법'이라는 홍석천의 언어는 '자기계발'의 그것과 일치한다. 물론 그것이 이른바 '성공을 이루는 비결'일 수도 있겠지만, 플로렌스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의 디자인은 내가 하는 것이다. 베이필드, 맥문이 플로렌스와 함께 한 것처럼 주변의 좋은 분들과 함께하면 내 인생이 훨씬 더 풍부해질 것이다." (양재진 원장)


홍석천의 진부한 감상평보다는 좀 낫다. 플로렌스와 정신적 교감을 맺고 있는 남편 베이필드(휴 그랜트)는 최고의 '매니저'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얼굴의 주름으로도 연기를 할 줄 아는 위대한 배우가 분명하다그녀가 벌이는 모든 일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수습해낸다. 또, 플로렌스의 노래에 맞춰 반주를 하게 된 코스메 맥문(사이먼 헬버그)은 처음 그녀의 노래를 듣고 '컬쳐쇼크'급 충격을 받지만(그 장면이 무척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려졌다), 이내 그녀의 '꿈'에 동참하고 자신의 재능을 쏟아붓는다. 이처럼 프롤렌스에게 분명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다. 



하지만 베이필드는 플로렌스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망설임 없이 한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여론 조작'도 서슴지 않고, 심지어 '매수'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플로렌스가 음치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공연을 관람할 관객을 엄선하고, 그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일정한 '돈'을 주는 식이다. 평론가들과 기자들도 포섭해 오로지 '극찬'만을 쏟아내도록 만든다. 그 또한 '사랑'이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냉정히 말하면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니까 어떤 이들은 <플로렌스>의 메시지를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딨어?'로 받아들였단 이야기다. 물론 일부 수긍한다. 불굴의 의지 쯤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만큼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경이로웠고, 음치 연기는 환상적이라 할 만큼 완전했다. 매순간 사랑스러웠다.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어차피 '해석'은 수용자의 몫이 아닌가. 그래도 분명히 하자. 세상에는 안 되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 플로렌스는 개인의 꿈을 이뤘지만, 영화를 지켜본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은 부(富)를 가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플로렌스의 말을 다시 아로새기자. 플로렌스가 위대한 까닭은, 그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가 '카네기 홀'에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를 향해 그 누구도 '노래를 안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꿈, 성공, 도전, 조력자.. 부디, 플로렌스를 '자기계발'의 언어에 가두지 말자. 그리고 그 기만적 언어 속에서 우리를 플로렌스와 동화시키기 말자. 우리는 그냥, '노래(가 됐든 뭐가 됐든)'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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