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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안 보는 시대, 가족과 친구를 묶어줬던 '일밤'을 떠올리다

너의길을가라 2022. 1. 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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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앞에 앉아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방송을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바야흐로 'OTT 시대'를 맞아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를 정기 결제하고 있는데, 컴퓨터나 휴대전화, 태블릿PC를 통해 시청하거나 거실에 설치해 놓은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게 됐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됐다. 한마디로 편리해졌다.

돌이켜 생각하면 옛날, 그러니까 OTT나 유튜브는 물론 방송사가 VOD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TV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SBS <모래시계>(최고 시청률 64.5%), KBS <첫사랑>(65.8%), MBC <허준>(63.7%), 2000년대 마지막 50%대 드라마 <대장금>(57.8%) 등이 방송되는 날에는 사람들이 일찍 귀가해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TV 앞에 앉으려면 준비가 필요했다. 방송 시간에 맞춰 집안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 소변을 참지 못해서 중요한 장면을 놓치는 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리고 한 명은 마치 보초를 서듯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가족들에게 "한다! 지금 시작해!"라고 다급히 외쳐야 했다. (그때는 60초 후 시작과 같은 표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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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본방송을 놓치면 재빨리 신문의 'TV 편성표'를 뒤져 재방송 시간을 체크해야 했다. 설, 추석 명절에는 편성표를 정리하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형광펜이나 빨간펜을 들고 나름의 스케줄을 짜느라 바빴다. 시간대마다 볼 프로그램을 정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둘이나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머리를 쮜어뜯으며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물론 요즘에는 그럴 일이 없다. 애초에 '본방송'에 집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편성표'를 뒤적일 일도 없다. OTT에 곧바로 영상이 업로드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미리 다녀올 필요도 없다. 잠시 멈춰두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대사를 놓치거나 예능의 웃음 포인트를 놓칠까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 간단한 조작으로 '5초 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시청률 50%를 넘는 드라마가 꽤 있었다. 못해도 30%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요즘에는 한자릿수 시청률이 흔하고, 심지어 0%대 시청률도 제법 보인다. 물론 시청률이 낮다고 해서 마냥 무시할 일은 아니다. OTT에서 얼마나 화제가 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접근방식이 다양해졌다.


"요즘 누가 TV 보내고요?!"라는 말이 가당치 않던 시절, 예능을 주름잡았던 프로그램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다. 1988년 첫방송 돼 1990년대 초반 시청률 30%대, 중반에는 20% 내외를 기록했을 만큼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코너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러브하우스', '게릴라 콘서트' 등이 있다. (게릴라 콘서트는 2000년~2003년 방영됐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가족들과 함께 TV 앞에 모여 앉아 <일밤>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특히 우리 가족들이 좋아했던 코너는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였다. 출연자를 속이는 기상천외한 상황들과 그에 따른 반응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몰래 카메라'는 '불법 촬영'을 연상케 하므로 지양해야 할 표현이고, 웃음을 위해 과도하게 사생활 침해를 하는 등 비판의 여지가 많다.)

각자의 일이 바빠 좀처럼 모이기 힘든 가족들에게 일요일 저녁은 일종의 약속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일밤>은 좋은 매개였다. 한번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보면서 가족들이 오이팩을 얼굴에 붙였는데, 그것이 엄청난 실수였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경규가 설계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고,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는 늘 (정지선을) 지켜요."

이후 <일밤>은 경쟁 프로그램인 KBS2 <슈퍼 썬데이>의 '금촌댁네 사람들'에 밀려 고전하던 중 웃음 속에 '공익'을 담기 시작했다. '양심냉장고(1996년)'가 바로 그것이다. 지켜보는 사람 없는 새벽, 정지선과 신호 등 교통 법규를 지키는 '양심적인' 차량이 있는지 지켜보는 코너였다. 흥미롭고 신선한 시도였으나, 캄캄하기만 한 화면을 시청자들이 볼 것인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첫 방송의 강렬함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안타깝게도 신호와 정지선을 지키는 차량이 없었다. 제작진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그런데 새벽 4시 13분, 드디어 경차 한 대가 신호에 멈춰섰고, 잠시 후 초록불에 출발하는 게 아닌가. 제작진은 화들짝 놀라 달려나갔다. 양심냉장고 첫 주인공인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차량 앞유리에는 장애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차량에는 장애인 이종일-김유화 부부가 탑승해 있었다. 소감을 말해달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이종일 씨는 "저는 늘 지켜요."라고 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양심냉장고'는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와 법규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는 계기가 됐다. 당장 나만 해도 아빠가 신호와 정지선을 준수하는지 감시에 나섰으니 말이다.


"안대를 풀어주세요!"

그런가 하면 '감동'을 전면에 내세운 시절도 있었다. 출연자뿐만 아니라 팬,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뺐던 '게릴라 콘서트' 말이다. 목표 인원 수를 정해서 1시간 동안 길거리 홍보를 한 후, 목표 수를 넘겨야 공연이 허락되는 잔인한(!) 콘셉트였다. 안대를 벗는 순간의 쫄깃함이 키포인트였다. 조성모, 핑클, H.O.T., S.E.S, 김현정, 박진영, 룰라, 장나라 등 당대를 대표했던 가수들이 모두 거쳐갔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S.E.S. 편이다. 4집 앨범을 내고 컴백했던 S.E.S는 일본 활동에 주력하느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 3집 활동 때도 방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였다. 홍보에 나선 바다는 길거리 홍보를 하다가 감정이 복받쳤고,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팬들은 그런 바다를 위로하며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사전 홍보 시간도 10시간으로 줄어든 상황이라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MC 김진수가 "안대를 풀어주세요!"라고 외쳤고, S.E.S. 세 명의 멤버가 안대를 벗자 엄청난 환성이 터져나왔다. 유진과 슈, 바다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게다가 1만 1,745명의 관객이 가득 들어차 god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시청률도 23.2%(TNS 기준)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짜릿하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전성기가 지난 <일밤>은 시대적 흐름에 뒤쳐지더니 결국 여러 차례 명칭을 바꾸는 등 부침을 겪었다. 그러다 2017년 4월 폐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일요일 저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가족간의 유대를 증진시키는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 또, 친구들과 '게릴라 콘서트'에 대한 시청 소감을 공유하며 함께 웃고 울게 해줬던 추억의 프로그램이었다.

TV와 멀어지면서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친구들과 같은 방송을 보며 수다떠는 시간도 없어졌다. 이젠 각자 성향과 취향에 맞는 기기와 플랫폼을 통해 방송을 시청한다. 문득 <일밤>과 함께 시공간을 공유했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일까, 어른이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코로나19 탓에 정이 더 그리운 탓일까. '브라운관'이라 불렸던 작고 네모난 옛친구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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