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AIIB와 사드를 넘어, 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한민국을 어찌할 것인가?

너의길을가라 2015. 3. 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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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내용, 심지어 바다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 … (동북아 역내에서) 민족감정이 이용되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지난 2월 27일, 3 · 1절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은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한 편향적 발언이 몰고온 충격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퍼져갔다. 미국을 혈맹(血盟)의 나라이자 영원한 우방으로 믿고 있던 사람들은 그 믿음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한국 정부의 미국에 대한 저(低)자세 외교를 지적하고 나섰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미 국무부도 당혹스럽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특정인이나 특정 국가를 의도한 말이 아닙니다. 어떤 지도자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 데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라며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철저히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역사 문제에 대한 대한민국의 강경한 대응(제대로 강경했던 적이 있었던가?)이 한 · 일 동맹 관계를 악화시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구상을 흩트러뜨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국익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미국 워싱턴에는 팽배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아베 총리를 위시한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이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보통국가 일본'은 헌법 9조에 대한 해석을 변경함으로써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북아의 영토분쟁, 일본 제국주의 과거사 등의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도발적 행동들은 상황을 더욱 부정적인 국면으로 몰고 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지난해 열렸던 미 · 일 안보협의회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논의를 환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이는 과거와는 달라진 미국의 위상(位相)에서 기인한다. 시소의 올라간 반대편에는 역시 중국의 급격한 부상(浮上)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보통국가'로 탈바꿈함으로써, 동북아에서 한 축을 '제대로' 담당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일본의 보통국가 프로젝트는 미 · 일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찰떡 궁합'의 산물이다. 외교적 전략이 부재(不在)한 대한민국으로서는 넋놓고 이를 지켜볼 수밖에.



굳이 광해군의 실리(중립)외교를 거론할 것도 없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축을 상대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영리한 판단을 통해 국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혈맹', '영워한 우방'이라는 순진한 생각만으로 국제 외교의 장에 나선다면 어떤 성과를 얻어낼 수 있겠는가? 그러자면 우리는 '중국'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열린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상품 무역 규모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중국은 이미 대한민국에게도 가장 중요한 거래처다. 경제적인 부분만 따로 떼어내고 본다면, 미국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시장이 중국이다. 또, 지난해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용한 카드 금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요우커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대한민국을 찾을 요우커가 7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한국경제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중국의 위상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도 남을 만큼 격상됐다. 중국은 '베이징 컨센서스'라고 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을 제시해 워싱턴 컨센서스를 견제하는 등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자신감 있게 표출하고 있다. 중국의 주도로 올해 말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경쟁 체제가 될 AIIB에 가입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 · 경제적 입지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과 남북관계 개선, 통일 이후에 필요한 막대한 인프라 건설자금을 조달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가 있다. 문제는 미국의 부정적 태도인데, 만약 AIIB에 가입하고자 한다면 미국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영국이 가입을 결정하면서,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대한민국도 설득의 폭이 넓어졌다. '영국과 함께 중국의 독주를 견제할게!'



여기에 더 큰 난제(難題)는 바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설치다. 지난 16일,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중국 쪽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 달라"고 어필했고, 바로 다음 날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아직 배치되지 않은 안보체계에 대해 제3국(중국)이 강하게 언급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되받아쳤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영리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입장인 대한민국으로서는 AIIB와 사드를 놓고도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사드 설치가 과연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부분이다. 당장 사드 설치 비용에 관한 논란이 붉어지고 있지 않은가? 지난 20일에는 "한미간에 사드 배치와 관련한 최대 걸림돌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 분담 문제"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1개 포대 비용만 1조 원이 넘고, "우리 전 국토를 방어하려면 네 개 포대 정도는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최저 6조원 정도는 필요(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한 상황에서 미국이 그 엄청난 비용을 고스란히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충당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이 한미동맹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고, 동아시아 지역 질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국이 한미동맹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처럼 성격과 역할이 변화되어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중국안보연합에 참여하는 것이다. … 한미동맹의 범위는 한반도가 중심이라는 점, 즉 한미동맹은 대북억제가 목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은 중국 봉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의 군사적 역할 활대는 평시와 전시 모두에서 한반도와 관련된 군사 행위에서만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 특히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 한국은 이를 기초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


-조영남, 『용과 춤을 추자』-


우리는 흔히 중국을 '오해'하고 있다. 몰라서 오해하기도 하고, 아예 덮어놓고 기존의 '선입견'에 의해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루가 달리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 아니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 하지 않는다면, 뒤쳐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무엇이든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것이다'라는 섣부른 예단은 위험하다. 한 쪽으로 편향된 정보만을 '섭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문화일보


'선악'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히 객관적인, 제3자적 입장에서 중국과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중국이 정말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미동맹' 그 자체인가? 조영남(쎄시봉의 그 분이 아니다)은 『용과 춤을 추자』에서 중국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관점과 전략을 가지고 중국에 접근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AIIB 가입과 사드 설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바깥의 시선도 심상치않다. 지정학적 위치 상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똑같은 운명을 겪어야 할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중요한 기점을 마주했다. 휘몰아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영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어리숙한 바보로 놀림감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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