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톺아보기

1주년 맞이한 <이나리>, '이상한 나라'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너의길을가라 2019. 4. 1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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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이가 어떨 때는 딱하다. 홀로서기를 지금부터 얘가 하는 것 같아."


시어머니의 방문을 앞두고 며느리 박지윤은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정신 없이 일하고, 돌아오자마자 시어머니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해." 박지윤의 타들어 가는 속도 모르고 남편 정현호는 느긋하기만 하다. "당신 엄마라서 마음이 편한가 보다." 박지윤은 홀로 분주하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할 순 없다. 일전에 시어머니가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시어머니는 집 안을 둘러보며 '검사'에 나섰다. 방 청소 여부를 체크하고 거실의 나무 상태를 살폈다. 며느리는 긴장될 수밖에 없다. 만족스러웠던 걸까. 시어머니는 별다른 지적 없이 순주와 함께 거실 매트 위에 앉았다. 그런데 이번엔 난데없이 손주가 딱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집에서 얌전히 살림을 하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가 못마땅한 것이다. 자신의 딸이었더라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고미호의 시어머니도 아들와 며느리의 집을 방문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박지윤의 시어머니가 그랬듯이) 시어머니는 '손님'이 아니라 '검사관'이 된 듯하다. 예리한 눈빛으로 청소가 잘 되어 있는지 이곳저곳 열어보고 구석구석 들여다 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번에는 사전에 공지를 하고 방문해 고미호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청소 검사 겸 안부인가가 마무리 되자 가족들은 평소처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시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며느리가 준비한 밥을 먹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바깥에서 먹는 건 늘상 있는 일이므로 이럴 때라도 집밥을 먹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그 요구는 압박이 돼 오롯이 며느리 고미호에게 향했다. 고미호는 "다 같이 먹을 때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안 되지 않냐"며 반문했다. 시어머니도 그 말에 동의했지만, 얼굴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있는 시어머니들이 많다.



"며느리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프로가 사실 유일하잖아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이하 <이나리>)가 1주년을 맞았다. <이나리>는 상징적이면서도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가족 내에 깊이 뿌리내린 불합리한 가부장제 문화를 고발하고, 집안 내 왜곡된 형태의 충돌인 고부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동안 쉬쉬했지만, 물밑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됐던 문제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나리>는 제 몫을 다한 셈이다. 


2018년 4월 12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이래 지난 1년 동안 김형균-민지영 부부, 김재욱-박세미 부부를 시작으로 마리-제이블랙 부부, 소이-최현준 부부, 고창환-시즈카 부부, 윤현상-이현승 부부 등 수많은 가족들이 등장했다. 현재 출연 중인 백아영-오정태 부부, 박지윤-정현호, 고미호-이경택 부부까지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이야기 됐다. 그 중에는 복장(腹臟) 터지는 일도 있었고, 눈물을 자아내는 사건도 있었다. 


출연했던 남편들은 '이상한 나라'를 목격했고, 고생하는 며느리인 아내들의 모습을 보며 '반성'하며 개선의 의지를 보였다. 남편이 '남(의)편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제이블랙은 좋은 교과서였다. 고창환과 윤현상, 오정태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남편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줬다. VCR을 지켜보며 안일한 훈수를 두던 MC들(이현우, 권오중)의 변화도 뚜렷했다. 적어도 1년 동안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건 분명하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출연자들을 보며 뜨겁게 공감했다. 또, 쏟아지는 리뷰 기사를 보며 때로는 분노했고, 때로는 위로를 받았다. 반면, 일부 시청자들은 <이나리>를 두고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 아니냐?', '고부 갈등을 조장한다.'며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가끔 지나치다 싶은 상황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혹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을 다룬 <이나리>로선 억울한 오해였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1주년이 됐음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불합리한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고부갈등은 여전히 첨예하다. 아직까지 '집안일'은 여성의 몫으로 돌려지고 있고, 그에 따라 가사 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갈등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여성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시선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히 흘러 예전같지 않다고 하나, 그 변화의 속도는 (현재 세대가 느끼기엔)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나는 34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셨어. 넌 그거에 비해면 편한 거야.'라는 말이 어찌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그도 고통받았기에 후대에 그 어려움을 되물림하지 않아야 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사 노동에서 자유로운 남성들은 여성에게 싸움을 전가한 채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고 지냈던 세월을 반성해야 마땅하다.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한 채 결혼의 달콤함만 부각시키는 게 올바른 일일까? 그건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잘못된 지점을 드러내는 일을 주저해선 안 된다. 여성이라서,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되는 억압에 대해 더욱 신랄하게 꼬집어야 한다.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고, 논의해야 한다. 또, 반성하고 바꿔나가야만 한다.  


<이나리>는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공론의 장이다. 교양으로 구분되지만, 예능적 요소도 있어 편안하고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다. 비록 중간에 '악마의 편집' 논란으로 시끌벅적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나리>의 역할과 의의는 유효하다. 궁극적으로 <이나리>는 사라져야겠지만, 아직까지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다. '이상한 나라'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결코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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