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1등도 꼴찌도 없는 감동 운동회, 모든 운동회가 그럴 수 있다면

너의길을가라 2014. 10. 1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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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1등도 꼴찌도 없는' 감동 운동회를 만들었던 용인제일초등학교 6학년 2반 심윤섭 · 양세찬 · 오승찬 · 이재홍 · 김기국 군과 담임선생님이 용인시장으로부터 '선행시민' 표창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들이 만든 '감동 운동회'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연골무형성증(비정상적으로 저신장을 일으키는 상염색체 우성유전을 하는 유전적 장애)을 앓고 있는 김기국 군은 신장이 114, 5에 불과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체격이 작을 수밖에 없다. 김 군에게 운동회는 유독 스트레스였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꼴찌를 면할 수 없었다. 아버지 김대열 씨는 김 군이 "5학년 때는 그러더라고요. 아빠 나 달리기 안 하면 안 되느냐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전했다.


사정을 말하면 얼마든지 달리기에서 빠질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일까? 김대열 씨는 "아이가 지금부터 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걸 배우면, 나중에 성장이 돼서 사춘기도 겪고 할 텐데 그런 것들을 이겨나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열심히 달려서 지는 게 낫다"고 김 군을 설득했다고 한다.


난 9월 22일 가을 운동회가 열렸고, 어김없이 달리기 경주 시간이 다가왔다. 출발 신호가 떨어졌고, 김기국 군은 다시 꼴찌로 뒤쳐졌다. 30m 정도 뒤쳐졌을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지막 장애물을 통과한 친구들이 멈춰서서 김 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1등이 되기를 포기하고, 김 군을 기다린 친구들은 김 군의 손을 잡고 함께 골인지점으로 향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 1등이 되었다.



자신을 기다려준 친구들이 고마웠던 김 군은 감동의 눈물을 쏟아냈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 군의 가족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대열 씨는 "아들이 막 울더라고요, 이 녀석이. 그래서 물어봤죠. 너 왜 울었냐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많이 났다고 하더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버지 김대열 씨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 김대열> 친구들 4명이 기국이가 그런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기국이가 꼴찌를 해서 창피 당하고 그러니까 그런 걸 없게 해 주자. 아마 이렇게 사전에 모의를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선생님이든 누가 나서서 어른들이 지시를 한 게 아니라, 13살짜리 아이들이 모여서 모의를 한 거예요? (웃음) 작전을 짠 거예요?


◆ 김대열> 네, 선생님한테 우리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해도 되느냐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 김현정> 허락은 받고.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당연히 흔쾌히 칭찬하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겠죠.



13살짜리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깜찍한 모의(?)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답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열렸던 가을 운동회에서도 김 군은 꼴찌로 달리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반 바퀴 정도의 차이가 나버렸다. 지치고 외로웠던 김 군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을 하면서 김 군의 옆에서 함께 뛰어주었다. 


5학년 때 김 군의 옆에서 함께 달려주었던 그 담임선생님이 바로 지금의 담임선생님이다. 전 국민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물한 아이들의 '깜찍한 모의'는 좋은 선생님 아래 좋은 제자가 나온다는 말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김 군은 "우리 선생님은요, 저희랑 평소에도 친구처럼 지내요. 제가 정말 좋아해요. 이번 일도 선생님이 그렇게 우리를 대해주시니까 생긴 것 같아요"라며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 평소에도 엄청 친하거든요? 근데 이 사건 이후로 2배로 더 친해졌어요." (김기군 군)


용인제일초등학교 6학년 2반의 친구들이 만든 '1등도 꼴찌도 없는 감동운동회'를 보면서 이미 과도한 경쟁 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운동회만큼이라도 경쟁 없이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운동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다.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경기 종목을 바꾸고, 아이들 모두의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운동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46년 영국 웨트스민스터 학교에서 크리켓 경기대회가 열린 것이 그 효시(嚆矢)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896년 5월 2일 동소평 밖 삼성평 영어학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운동회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신체의 규격화를 통해 근대 민족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을 만들어내는 축제의 장이자 교육의 도구'로 변질됐다.


청과 백으로 팀을 나눠 승부를 겨루는 운동회의 포맷은 이제는 걷어내야 할 일제의 잔재(殘滓)인 셈이다. 굳이 청백전으로 치러지지 않더라도 무의식 중에 경쟁을 각인시키고, 아이들에게 승패 혹은 순위를 체화시키는 지금의 운동회 방식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운동회, 단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이 1등과 꼴찌로 줄세워지지 않을 순 없을까? 모두가 1등인 운동회를 만드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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