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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의 여왕>은 '여왕의 추리'로 끝날 수 있을까?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7. 4. 1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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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몸이 움츠러들어 있잖아요? 다른 땐 안 그래요. 이 학생만 나타나면 긴장해요. 손도 약간 떨고요. … 물건이 없어진 건 훔쳐간 게 아니라 아드님이 그냥 준 거예요. CCTV에 찍히는 걸 아니까 도서관 카드로 긁는 시늉만 한 거죠. 아드님이 계산대를 맡을 때만 이 학생이 나타난 이유는.." 


유설옥(최강희). 이름에서부터 저 유명한 '셜록'을 연상케 하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추리의 여왕'이다. CCTV 화면을 통해서 동네 슈퍼에서 물건들이 계속해서 사라지는 이유뿐만 아니라 슈퍼 주인의 아들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밝혀냈다. 어디 그뿐인가. 시장에 비치된 보관함이 부서진 것을 꼼꼼히 살피더니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 마약 사건임을 포착해냈다. 그리고 끈질긴 추리와 탐문 끝에 마약사범인 장도장(양익준)을 잡아내고 만다. 


뛰어난 눈썰미와 남다른 추리력. 설옥은 현장의 사소한 흔적들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이렇게 획득한 작은 단서들은 그의 섬세한 추리에 의해 거대한 사건으로 재탄생된다. 이 유쾌한 퍼즐 맞추기는 긴장감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동시에 선사한다. '몸풀기'가 끝났으니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질 차례. 단순 빈집털이라고 생각됐던 사건 현장에서도 설옥의 활약은 이어지는데, 사건 현장을 차근차근 살피던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이 '절도를 위장한 살인 사건'임을 캐치해낸다. 



한편, 설옥은 장도장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그를 쫓고 있던 열혈 형사 하완승(권상우)과 인연을 맺게 된다. 물론 처음에만 해도 그들의 관계는 '악연'이었다. 완승은 정체불명의 설옥이 '추리'를 통해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는 게 마뜩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범인을 잡으려면 몸으로 뛰고, 직감을 통해 잡아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옥을 향해 "앞으로 파출소 근처에도 오지 마. 어슬렁거리다 걸리면 바로 체포할 거야!"며 으름장을 놓고, "아줌마!"라며 큰소리를 친다. 무시하고 면박을 주는 건 예삿일이다. 


물론 공무집행을 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시민의 개입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완승이 보여주는 행동과 어법은 매우 무례하고 상식 밖의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코믹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이 불쾌감보다는 웃음으로 승화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다. 어찌됐든 완승은 설옥이 자신의 추리를 거듭해서 증명해내자 완승은 점차 설옥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이렇듯 사뭇 독특한 '결'을 지닌 KBS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설옥과 완승이 '공조'를 통해 범인들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김과장>의 후속으로 편성된 <추리의 여왕>은 11.2%의 준수한 시청률로 스타트를 끊었다. 2회(9.5%)에서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3회(10.1%)와 4회(11.6%)를 거치면서 조금씩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톰과 제리'처럼 앙숙 관계로 시작했더 설옥과 완승이 묘한 '케미'를 이루면서 콤비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담긴 4회는 드라마의 중요한 변곡점이기도 했다. 또, 애초에 '생활밀착형 추리물'로 차별화를 선언했던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추리물(혹은 형사물)이 긴장감의 '증폭'에 초점을 맞춰 스릴의 극대화를 추구했다면, <추리의 여왕>은 오히려 '유쾌함'을 무기로 시청자들을 공략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의 오피스물과 차별화됐던 <김과장>과도 궤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역시 설옥이라는 캐릭터와 이를 맛깔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는 최강희의 내공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의 분석처럼, 아줌마 · 소년 · 여자 등 다양한 캐릭터가 공존하고 있는 설옥, 이 복합적이고 복잡한 역할을 최강희는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 영리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한편, 설옥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주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추리들로 사건 현장을 누빈다. '세련된 집안 물건들에 비해 촌스러운 이불'이라는 포인트를 짚어낸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젠더 바이어스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선 이 드라마가 설옥을 통해 그와 같은 연상 작용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에피소드 격으로 삽입된 내용이긴 하지만, 마트에서 계란 세일하는 코너를 추리해 내는 과정은 설옥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면서 '주부'라는 그의 위치다. 무려 검사의 '아내'로 시어머니 박경숙(박준금)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며느리'인 설옥은 '시댁'이라는 제약에 꽁꽁 묶여 살아간다. 남편이 검사가 되는 데 설옥의 희생이 큰몫을 차지했지만, 그에게 남은 건 결혼 8년 차 주부에 고졸이라는 씁쓸한 '스펙'뿐이다. 최강희가 특유의 4차원적인 매력으로 연기한 덕분에 이와 같은 '압박감'이 다소 희석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설옥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라 하기에 지나치게 순응적이고 의존적이다. 


'밥이나 하라'는 시어머니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끌려다닐 뿐 아니라 바람을 의심하는 그 불쾌한 시선에도 당당히 한마디 하지 못한다. '경찰'이 되는 것이 설옥의 오랜 꿈이었지만, 그가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그저 때마다 교재를 주문하는 것이 유일한 위로다. 이런 갑갑한 현실을 탈피해서 오롯이 '설옥'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순간이 바로 사건 현장에 있을 때다. 물론 '시어머니의 전화'로 상징되는 현실의 개입은 매번 설옥을 강제 소환하곤 한다.



'왜 굳이 '설옥'이 '주부'여야 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만큼 '주부'라고 하는 포지션이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제약'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추리의 여왕>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생활밀착형 추리를 펼치는 설옥의 활약상과 티격태격하면서도 힘을 합쳐 범죄를 해결해나가는 설옥과 완승의 호흡일 것이다. 오히려 핵심은 추리 그 자체(의 완전성)가 아니라 캐릭터가 주는 통쾌함 혹은 캐릭터들 간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깨알 같은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김과장>에 매료됐던 시청자들이 엄청난 개연성에 빠져든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숨겨진 또 다른 관점 포인트는 바로 설옥의 성장일 것이다. 과연 설옥은 지금처럼 검사 남편의 아내, 괴팍스러운 시어머니의 며느리라는 포지션을 유지한 채 '몰래' 탐정 놀이를 계속하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사건 현장을 누비는 과정에서 '자각'을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는 제약을 깨뜨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인가. 10년이나 경찰 준비를 해왔으면서도 시험 한번 치지 못한 그가 꿈을 향해 한걸음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부디 이 드라마의 귀결이 전자의 후진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만약 (짐작해 보자면)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설옥이 또 다시 시어머니 '몰래' 두부를 사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서 부랴부랴 사건 현장에 도착해 권상우와 눈을 마주치며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살인사건이에요'라고 한다면 꽤나 실망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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