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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아모개의 시대가 저물고 길동의 시대가 시작된다

너의길을가라 2017. 2. 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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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주인에게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사랑하는 아내 금옥(신은정)까지 잃었던 아모개(김상중)는 강상죄에 강상죄로 맞서며 조참봉의 부인(서이숙)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위기에서 벗어난 아모개는 익화리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고, 큰어르신으로 거듭났다. 길현이와 길동이를 위해서, 그들이 '계급'이라는 낡은 사슬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딸은 양반집 규수처럼 키웠다. 비록 '건달'로서의 삶이었지만, 부족함이 없었고 남부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모개는 알고 있었을까? 결국 자신이 추구한 것은 '가족의 안위'라는 좁은 범위의 '정의(正義)'였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첫걸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리가 뭔 잘못이 있겄소. 온통 노비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허는디. 나리라고 뭔 뾰족한 수가 있었겄어?"라며 자신의 주인을 베어버린 아모개의 생각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고 진보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익화리에서 새로운 사회를 열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이름'은 '건달'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다. 



길동은 자꾸만 아모개에게 '건달'을 그만두고 농사나 짓고 살아가자고 말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다. "형, 우리 엄니가 왜 죽은 줄 알아? 아버지가 죽인거야. 아버지 욕심이 울 엄니를 죽였어. 사람이 분수를 모르면 제 명을 못 채우고 죽어. 이러고 살면 다 죽어." 길동은 반상(班常)의 도리를 저버린 아버지, 공고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질서를 뒤엎어버린 아버지가 불안하기만 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다시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보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아모개가 "농사를 지으면서 먹고사는 것도 좋겠지. 보리도 심고 콩도 심고."라고 말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분수를 지키며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제 명을 채우며 살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다. 아, 이럴수가!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도망친 계집종'을 찾아오라는 충원군(김정태)을 속인 것이 들통난 것이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며 오열하는 계집종을 차마 충원군에게 데려다 줄 수는 없었다. 아모개는 감옥에 갇혔고,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참봉부인까지 나타났다.


12년 전의 일은 족쇄처럼 그의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통째로 삼켰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동료들은 계략에 빠져 뿔뿔히 흩어져 각개격파 당할 위기에 놓였고, 길현과 길동은 죽음의 문턱 앞에 서게 됐다. 아모개는 이제 알게 됐을까? 결국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패하고 낡아빠진 세상, 기득권들이 틀어쥐고 있는 썩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질서'를 뒤집지 않으면, 결국 전복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모개야, 내가 아직도 널 미워하는 줄 아느냐. 아니다. 내가 미워하는 건 따로 있어. 조선은 노비가 주인을 속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노비가 주인을 욕 보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노비가 주인을 죽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야. 헌데, 너는 주인을 속이고 욕 보이고 죽였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관절 나라에서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너 같은 놈들은 조선의 옴이요, 악창이다. 너 같은 놈들이 많아지면 장차 이 조선의 코가 베이고, 손가락이 문들어지고, 창자가 썩어질 것이야. 해서 너를 죽이고, 네 자식들을 죽여 나라를 지킬 것이다. 내가 이 나라 조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충이니라." 


형문을 받고 피범벅이 된 채 감옥에 갇힌 아모개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하는 참봉 부인을 보라. 그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는 시대의 논리를 대변할 뿐이다. 달리 '질서'라 불러도 좋다. 그는 자신이 사사롭지 않다고 말한다. 사적인 감정 때문에 아모개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조선이라는 나라의 질서를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중이라고 단언한다. 자신의 행동은 나라를 위한 '충'이라는 것이다. 확신에 차 있는 참봉 부인의 저 말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인가. 


씁쓸하게도 참봉 부인과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국정 농단의 핵심이자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은 "단 한순간도 사익 추구한 적 없다"며 오로지 나라를 위해 한몸을 바쳤다고 주장(정말 그는 그리 생각하는 듯 하다. 확신범이라 불러도 무방하다.)하고, '탄핵은 잘 기획된 음모'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를 따르는, 부끄러움 모르는 어떤 정당은 국민의 뜻을 거스른 채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문회에 나와서 자신은 죄가 없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 강변하는 저 무리들은 또 어떠한가. 


탄핵은 나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매국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감히 대통령에게!"를 연발하기도 한다. 국민을 '개, 돼지' 쯤 취급하는 누군가들에게 '탄핵 정국'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해프닝일 것이다. 권력은 여전히 강고하고, 기득권은 언제든지 반격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탄핵'을 이뤄냈지만, 제대로 된 '정권 교체' 그리고 '정치 교체'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여동생의 위험 앞에 길동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힘'을 되찾는다. '아기장수'라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각성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도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길동은 알게 됐을까. 아모개의 시대는 어느덧 저물었다. 신분제라는 세상의 질서에 반(反)했던 그들의 유쾌한 도전은 잠시 멈춰서게 됐다. 혁명 1세대의 첫걸음은 분명 위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아모개의 혁명이 '나'와 '내 가족'이 신분제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데 몰두했다면, 이젠 그 너머를 지향해야 한다.


이제 길동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그는 아모개의 뒤를 이어 새로운 혁명을 이끌어 낼 것이다. 과연 길동 만들어 가는 시대는 아모개의 것보다 진일보한 것일까. 역사가 발전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암울한 질곡을 뚫고 기어코 한걸음씩 더 나아간다고 가정한다면, 그 나선형 구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희망'이 아닐까? MBC <역적>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여, 기꺼이 역적이 되자.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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