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이 보여준 '다른 엄마'

너의길을가라 2016. 7. 13. 17:55
반응형



우리에게는 두 가지 이미지의 '엄마'가 있다. 먼저 <극비수사>를 떠올려보자. 제법 흥행(누적 관객수 2,860,786명)이 된 터라 이야기하기 수월하리라 믿고 질문을 던지자면, 이 영화에서 '엄마(이정은)'가 기억 나는가? "글쎄.." 갸우뚱하는 반응들이 많을 테고, 좀더 영화에 몰입했다면 "엄마가 유해진한테 점을 보고 오지 않나?"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딸이 유괴되고 난 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사(무당)'를 찾아가는 것뿐이다.


ⓒ쇼박스


물론 몇 가지 더 있긴 하다. 참을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이성을 잃은 채 오열하고 급기야 식음을 전폐한다. 그리고 수사에 있어 필요한(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가령, 인질범과 '통화'를 하는 것 정도다. '1978년'이라는 '옛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1991년 이형호 군의 유괴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그놈 목소리>(누적 관객수 2,972,299명)는 어떨까. 거기에서도 '엄마(김남주)'는 (아들을 찾아 헤매기도 하지만) 전화기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사정한다. 


이처럼 우리에겐 '엄마는 슬퍼해야 하고, 아빠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전형성이 남아 있다. '엄마'에게 수동성을 부여한 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였을 텐데, <공정사회>에서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잡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서는 '엄마(장영남)'에게 남편(배성우)은 "아줌마인 당신이 나서봐야 뭐 도움이 되겠어?"라고 타박한다. 하지만 '엄마'는 '여기서 지치면 엄마도, 아줌마도 아니'라며 '존재'를 증명해보이며 자신만의 '공정사회'를 실현하고야 만다.


ⓒ엣나인필름, CJ엔터테인먼트 


<마더>의 '엄마'는 어떠한가. 가장 '보편적'인 엄마, 그 자체였던 김혜자로부터 광기 어린 '개별적' 이미지를 뽑아냈던 봉준호 감독은 더 이상 엄마를 수동적인 존재로 '모셔'두지 않는다. <공정사회>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마더>의 엄마도 자신의 '자식'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존의 수동적이던 엄마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엄마'와 마주하게 된다. 


'촉망 받는 신예 정치인과 아내'

'선거 D-15, 그들의 딸이 사라졌다' 


<비밀은 없다>의 예고편에 등장하는 저 문구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훅' 떨어뜨렸다. '아내' 앞에 생략된 말은 '그(촉망 받는 신예 정치인)의'가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아내'라는 정체성은 이미 수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가 주(主)가 된 뻔한 정치 스릴러를 예상했지만, 이게 웬걸? 이 영화에서 '그'는 재빨리 옆으로 비껴서고, '아내'이자 '엄마'인 '연홍(손예진)'이 중심에 우뚝선다. <비밀은 없다>는 철저히 연홍의 움직임과 감정선을 쫓아간다. 



CJ엔터테인먼트 


이경미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했던 성취, 그러니까 보편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의 '다른 얼굴'을 끄집어내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일을 해내고야 만다. 이 감독은 상업적으로 소비되어 왔던 "취향을 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손예진이란 배우"에게서 '광기'를 포착했고, 손예진은 그동안 전형성에 갇혀 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 히스테릭한 '연홍'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순간마다 극과 극을 왔다갔다 하는 감정의 진폭을 손예진은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는 데, 여기에선 감탄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을 정도다.


'아내'이자 '엄마'인 연홍은 선거에만 관심이 있는 남편(김주혁)에 실망하고, 재빨리 '엄마' 그것도 능동적인 엄마로 변한다. '아내'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혹자는 너무 빨리 아내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는다고 불평하지만, 오히려 이런 변화 속도가 정상적인 것 아닐까? '100미터 달리기를 2시간 동안 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그 상황에서 느긋하게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다면, 그건 애초에 '엄마'가 아닌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배우는 어쩔 수 없이 자기 복제를 하곤 한다. 그런데 <비밀은 없다>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한 영화다. 내가 봐도 처음 보는 내 모습들이 나온다." 손예진, JTBC <손석희의 뉴스룸>


이처럼 '전형성'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비밀은 없다>는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또, 손예진의 다양한 '얼굴'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이다. 예상 밖의 전개와 뒤통수를 치는 반전(범인은 예상 가능하지만, 그 과정은 신선하다)으로 스릴러 영화로서의 '자격'을 갖췄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워낙 많았던 탓에 '욕심 많았던 쌈'처럼 입 밖으로 넘치는 건 아쉽다.


중반 이후부터는 '독립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편집을 선보이는데, 이 부분이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갔을 것이다. '입소문'을 타지 못하고, 누적 관객수 249,381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다른 엄마'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한 노력엔 박수를 보내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동성애적 코드'까지 담아낸 건 '과잉'으로 보인다.


그 자체가 과잉이라기보다는 딸(신지훈)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도드라지면서 이야기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애초에 불친절한 이 영화의 진행에 이야기의 불균형은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으리라. 어찌됐든 '딸의 비밀'과 '남편의 비밀', 그리고 숨겨졌던 '자신의 광기'까지 몽땅 확인해버린 '연홍'의 변화를 연기한 손예진의 배우로서의 각성은 <비밀은 없다>를 '249,381명'는 숫자로 '실패'라 규정할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