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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감청 허용? 개혁 대상인 국정원과 검찰에 무기를 줘도 될까?

너의길을가라 2014. 7. 1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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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의 액션 신을 찍기 위해 배우들은 이른바 '합'을 맞춘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워낙 화려한 고난도의 액션이 요구되기 때문에 단순히 '내가 먼저 오른손으로 치고 너는 피하면서 발로···'의 수준이 아니라 팔을 내휘두르는 각도와 속도까지 조절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만큼 멋진 액션을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고, 그래야만 부상의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 :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도 유 전 회장을 검거하지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 : 사실은 우리가 감청 방법을 제대로 원활하게 사용하기 어려운 수사 방법상의 문제가 있다.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 : 조력자들의 휴대폰 감청이 가능했다면 벌써 (검거가)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그렇고 국회도 그렇고, (범인) 검거와 범죄 예방의 책임이 비단 검·경에만 있지 않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 통비법상 감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감청 장비를 설치하고 있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흉악범과 중범죄자 검거와 처벌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지난 9일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 출석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새누리당의 권선동 의원 간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마치 액션 장면을 찍기 위해 합을 맞추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 같지 않은가? 그만큼 두 사람의 궁합이 팔이 휘두르는 각도와 속도까지 계산한 듯 잘 맞아 떨어진다. 최근 들어서 이동통신에 대한 감청을 가능하게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통과에 대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 7일 인사 청문회 자리였다.



-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


"정치사찰이 아니라 범죄를 잡고 대공수사를 하기 위해 휴대전화 감청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는 면이 있지만 형평성을 보면 이동통신에서도 감청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지 않나 싶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이 휴대전화 감청에 대한 견해를 묻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에 법안이 계류 중이라고 해 다행이다"면서 "유병언 사건을 보면서 (휴대전화 감청은) 필요한 것인데 왜 없느냐고 하지만 이것은 국정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언급한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지난 1월 서상기 전 국회 정보위원장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뜻하는데, 바로 이동통신사들이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다. 



-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 - 


현행법상 유선을 비롯해서 휴대폰 등 모든 통신수단에 대한 감청은 합법화되어 있다. 문제는 범죄수사에 있어 기술적으로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수사기관과 이동통신사 등이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자체 감청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상기 전 위원장이 발의한 법안은 휴대전화 감청을 위해 이동통신사들에게 감청 설비를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인 셈이다.


한편,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도 서상기 의원이 "장관이 되면 휴대전화 감청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말하자 "이동통신에서 감청이 유선전화에 비해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다. 입법과정에서 의견을 주면 논의하겠다"며 긍정적입 입장을 드러냈다. 서상기 의원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 휴대전화 감청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이에 국정원과 법무부, 미래창조과학부가 화답하고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움직임 자체가 상당히 노골적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휴대전화 감청을 밀어붙이는 논리는 간단하다. 범죄 수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을 농락하며 요리조리 피해다니고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체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휴대전화 감청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현 의원이 잘 지적했듯이 유 전 회장을 체포하지 못한 것은 휴대전화 감청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검찰의 늑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 장관은 그러한 점은 인정하지 않고, "흉악범과 중범죄자 검거와 처벌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라며 휴대전화 감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어린이 유괴 등 급한 사건이나 흉악 범죄 등을 수사하기 위해서 휴대전화 감청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휴대전화 감청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해야만 한다. 이미 국정원과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휴대전화 감청'이라는 통제되지 않는 무기를 쥐어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수사기관에 의한 감청이 남용됨으로써 감청의 일상화와 상시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 - 


지난 1월, 서상기 전 위원장의 주도의 '휴대전화 감청' 개정안이 발의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송호창 의원(당시 무소속)은 감청 남용 방지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서 전 위원장의 법안이 국가 안보에 방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송 의원의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법에는 피내사자에게도 감청이 가능하게 되어 있지만, 이를 '피의자'로 축소하는 등 감청의 허가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당시에 국가정보원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았던 문병호 의원(당시 민주당)이 "국정원이 과거에 불법 도·감청을 한 선례가 있으므로 국민들이 불법 도·감청에 대해선 대단히 민감하고 공포스러워한다. 불법 도·감청 대한 방지와 차단 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한 합법 감청 허용은 더 이상 논의할 수 없다"고 밝힌 것처럼 야당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송호창 의원은 "정부기관이 여러 수사를 통해 감청 영장이 없어도 감청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국민들의 의혹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이 민간사찰로 크게 문제가 됐고 정치개입 문제도 있다. 미래부가 통신비밀을 더 엄격히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휴대전화 감청을 옹호하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을 비판했다.



흉악 범죄를 원활하게 수사하기 위해 '휴대전화 감청'이 필요하다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해보인다. 이동통신업체에 감청 설비를 확보하고, 법원의 영장이 발부됐을 경우에만 감청을 하겠다는 법안의 내용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안'이 아니라 그 법안을 활용한 주체인 국정원과 검찰이 아닌가? 또,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새누리당 정권에서 불법적인 대선 개입을 비롯해서 민간인 사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법이 자행되어 왔던가? 


있는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국정원과 검찰에게 '휴대전화 감청'이라는 힘을 실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설령 어린이 유괴나 흉악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휴대전화 감청'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 범위와 사유를 매우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불안 요소는 상존한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신뢰할 수 없는 기관에게 무턱대고 '무기'를 쥐어주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한 번 제약을 풀어버리면 다시 되돌리기가 정말이지 어렵다. '무기'를 건네주기 전에 우리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상대가 그 무기로 우리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무기'를 줘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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