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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이었던 김기태 시프트, 조롱하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너의길을가라 2015. 5. 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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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조롱을, 기자들은 쉴드를. 3루수를 포수 뒤로 보내는, 이른바 '김기태 시프트'를 향한 전혀 다른 시각이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기아와 KT의 9회초로 돌아가보자. 스코어는 5-5. KT는 박기혁의 안타와 이대형의 볼넷, 그리고 대타 신명철의 희생버트로 1사 2,3루 찬스를 이어갔다. 외야 플라이 하나면 앞서 나갈 수 있었지만, 하준호는 유격수 앞 땅볼을 치고 말았다. 3루에 있던 박기혁은 런다운에 걸려 아웃.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김상현이었다. 자, 이제부터 '김기태 시프트'가 실행된다!


김기태 감독으로부터 뭔가 지시를 받은 기아 3루수 이범호가 갑자기 포수 이홍구의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광회 구심은 '유례가 없는 시프트'에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3루심을 보고 있던 문승훈 심판은 기아 더그아웃에 '야수들은 페어 안에서 수비를 해야 한다'는 설명을 하고 이범호를 원위치 시켰다. 중계를 하고 있던 캐스터와 해설자(이순철)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이렇게 야구는 하지 않을 텐데요"며 헛웃음을 지었다.



야규 규칙 4.03

'경기 중 인플레이 상황에서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


김기태 감독은 심동섭이 고의사구를 던지자 폭투를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범호를 포수 뒤로 보내 이에 대비하려 했던 것이다. 16이닝을 던지는 동안 사사구를 14개나 던진 심동섭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경기 중 인플레이 상황에서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야 한다'는 야구 규칙 4.03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위의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상황은 '경기 중'이었고, '인플레이 상황'이었으며, 페어 지역이 아닌 (포수 뒤) 파울 지역으로 자리를 옮긴 이범호는 '포수가 아니라' 3루수였다. 이와 같은 웃지 못할(그래도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해프닝은 김 감독이 고의4구를 인플레이 상황이 아니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간스포츠


이후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내가 착각했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실수를 했다. 고의4구는 인플레이가 맞다. 하지만 고의4구에서 폭투가 나오면 인플레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수비를 뒤에 놓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순간 착각을 했다. 심판진에게 내가 착각을 했다고 설명을 했다. 심판진도 이해를 하더라. 공부가 부족했다. 팬들께 죄송하다"며 쿨하게 실수를 인정했다.


지난 4월 15일 LG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를 시도한 문선재가 쓰리피트 오버라며 항의하며 2루에 직접 눕기까지하다 퇴장을 당했던 김 김독은 이번에도 '신선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셈이 됐다. 심지어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도 '김기태 시프트'를 다루면서 "화요일 KBO리그에서 혁신적인 수비 시프트를 봤다"고 소개했다.



We've seen crazy infield shifts before. Remember the Great Wall of Dodgers?

But in Tuesday's KBO game between the Kia Tigers and the KT Wiz, we saw something truly revolutionary

Yes, that's the third basemen just hanging out behind the catcher. While it may seem unlikely that whatever benefit this could provide is greater than the consequence of leaving such a big gap in the infield, it's possible we don't understand the Tigers' strategy.Maybe they meant for their third baseman to slowly creep up behind the batter and breathe down his neck during every pitch, making it impossible for him to focus. Maybe they planned to move each of their infielders to a different place in foul territory, confusing the hitter into thinking he was actually playing cricket.Unfortunately, we'll never know the Tigers' endgame, because the umpires wouldn't allow the unconventional shift:


기사는 "우리도 이전에 놀라운 내야 시프트를 본 적이 있다. LA 다저스의 훌륭한 벽이 있었"다면서 작년 9월 LA 다저스가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선보였던 수비 시프트(1-2루 사이에 내야수 4명을 배치하는 수비) 영상을 첨부했다. 이 장면도 놀라웠지만, 더욱 '혁신적(!)'이었던 것은 '김기태 시프트'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KBO리그에서 더 혁신적인 수비 시프트를 봤다"고 평가한 걸 보면 말이다.



MLB.com은 "3루수가 포수 뒤에 위치하면서 내야에 거대한 틈을 만드는 것이 팀에 어떤 도움을 줄지 의문"이라며 "KIA의 전략을 이해하기 어렵다. 수비수를 파울 지역에 두면서 상대 타자가 크리켓을 하고 있다는 착각하게 빠지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며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약간의 조롱도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김기태 감독은 '김뒤태(거센소리 앞에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기 때문에 '뒷태'라고 쓸 수 없음)'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는 등 웃음거리로 전락했지만, 수많은 야구 팬들이 '경기 중 인플레이 상황에서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는 야구 규칙을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포수를 3루수 뒤로 보내는 수비는 그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발상이 아닌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여겼을 뿐, 그것이 규칙에 위배된다고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도 처음에는 '시프트에 변화가 있다'고 얘기하는 데 그쳤다. 심판의 제스처가 있자 그제서야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덧붙였을 뿐이다.


4차원적인 생각이긴 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려 했던 것은 칭찬할 만한 일 아닌가? 감독으로서 '공부가 부족했'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승리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의 격렬한 항의라든지 승리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하는 점 등을 미뤄보면 말이다. 이런 모습까지 폄훼하고, 마냥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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