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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당신만의 짝사랑이 아닙니다

너의길을가라 2014. 11. 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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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정상은 아니다. "택근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던 이장석 넥센 구단주가 쏘아올린 FA 거품은 꺼지기는커녕 더욱 부풀어오르기만 했다. 지난 2012년 이택근이 LG 트윈스에서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하면서 터뜨릿 잭팟(4년 50억)은 FA 거품의 '원흉'이자 '기준'이 됐다. 작년에는 한화가 정근우와 이용규를 FA로 영입하면서 각각 70억 원과 67억 원을 투자하는 등 총 523억 5,000만 원이 FA 시장에 쏟아졌다.



올해는 자그마치 555억6000만원이다. SK 최정이 86억 원, 삼성 윤성환과 안지만은 각각 80억과 65억 원에 계약을 마무리했다. 남아 있던 '최대어' 장원준은 29일 두산과 84억 원에 계약을 마쳤다. 놀라운 것은 아직까지 FA 계약은 끝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아직 6명의 선수가 계약서에 사인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적게 잡아도 600억 돌파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적인 FA 시장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동안 고생했던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팔릴 상품(!)'은 다 나간 상황에서 남은 FA들(배영수, 송은범, 이재영, 나주환, 이성열, 차일목)의 처지는 그다지 밝지 못하다. 신생팀 KT는 이미 FA 최대한도인 3명을 영입(김사율, 박경수, 박기혁)했고, KIA와 롯데는 내부 신인을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LG는 아예 FA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다른 팀들도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추워지고 있는 날씨만큼이나 계약을 마무리하지 못한 FA들의 마음은 싸늘히 식어가고 있을 것이다.



"늘 삼성에서 뛰었고, 삼성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협상을 진행하면서 내게 기회가 많지 않은 팀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마운드에 서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고 결국 FA 시장에 나왔다"


(삼성 팬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이번 FA 시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33)다. 2000년에 삼성에 입단해서 무려 15년동안 삼성 마운드를 지켜온 프랜차이즈 스타인 그가 삼성과 계약하지 못하고 FA 시장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계약이 이뤄질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팬들의 관심도 윤성환이나 안지만에 쏠려 있었다. 그만큼 배영수와의 협상 결렬은 삼성 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배영수는 단순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라 삼성 팬들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다. 2004년 삼성과 현대의 한국시리즈는 무려 9차전까지 간 세계신기록 시리즈이자 3차례의 무승부가 펼쳐졌던 그야말로 '혈전'이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배영수가 있었다. 4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배영수는 연장 10회까지 삼진 11개를 뽑으며 '비공인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또, 2006년에는 한화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에 6이닝을 무실점 호투로 승리를 챙겼고, 4차전에서는 연장 12회에 구원 등판해 세이브를 올리는 등 2승 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0.87로 호투했다.


팔꿈치 부상에도 불구하고 부상 투혼을 보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배영수를 찾아온 슬럼프는 참으로 깊고도 지독했다. 2007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후 평균 구속은 10km 이상 떨어졌고, 그는 더 이상 최고구속 155km의 직구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가 아니었다. 길고 긴 슬럼프에 빠져 들었다. 2009년에는 1승 1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고, 2010년과 2011년에도 6승에 그치는 등 부진했다. '배영수는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배영수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다. 과거와 같은 강속구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구종과 노련함으로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2012년에는 12승을 거뒀고, 2013년에는 14승을 챙기면서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올 시즌도 우승팀 삼성의 5선발 자리를 지키며 8승을 올렸다. '만약'이란 없는 것이지만, 유독 배영수의 등판마다 '터졌던' 임창용의 블론세이브가 조금만 적었더라도 시즌 10승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이번 FA 계약의 양상도 조금은 변했을까?


나중에 알려진 뒷이야기지만, 배영수는 삼성과의 계약이 진행되고 있던 17일 한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동안 나만 삼성을 짝사랑했던 건가? 삼성은 내 짝사랑이었고, 야구는 역시 비즈니스였다"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첫사랑'이었던 삼성과 뜨거운 사랑을 보내줬던 삼성팬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헤어지게 됐지만 그래도 삼성은 내 첫사랑이었다. 나쁜 기억보다 삼성에서 있었던 좋은 일, 좋은 기억만 떠올리겠다. 이번엔 솔직히 구단에 서운했지만, 그동안은 고마운 일들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나를 응원해준 삼성팬들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면서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새로운 팀을 찾아 새로운 야구와 인생에 또 도전하고 싶다"


- 12월 1일 대구 지역 신문 스포츠면에 하단 광고로 게재될 예정-


"당신은 언제나 우리의 희망이고 기적이었습니다. 그대의 모든 순간과 함께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영원히 '푸른 피의 에이스'와 함께 전설을 써내려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배영수를 '우리 영수'라고 부를 만큼 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이 상황을 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지난 28일, 삼성 팬들은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팀을 떠날지도 모를 배영수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논의를 한 결과 신문에 광고를 내기로 결정했다. '당신만의 짝사랑이 아닙니다'라는 팬들의 외침이 가슴을 울린다.


FA로서 배영수의 현주소가 그다지 밝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배영수가 다시 삼성과 계약을 위해 테이블에 마주 앉을 확률은 낮아 보인다. 삼성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선 협상에 실패한 상황에서 더 좋은 계약 조건으로 사인을 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배영수로서는 다른 팀에서 제의가 온다면 이를 거절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원히 푸른 피의 에이스로 남을 것 같았던 배영수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형 계약이 끝난 FA 시장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는 바로 그의 계약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배영수의 말처럼 프로는 '비즈니스'이고 그 냉혹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팬들은 내년 시즌에도 '삼성 라이온즈의 배영수'가 공을 뿌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과연 팬들의 바람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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