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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편성의 <돈꽃>, 힘을 뺀 장혁의 연기는 소름이었다

너의길을가라 2017. 11. 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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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임시이사회에서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가결했다. MBC의 프로그램에 대한 글은 가급적 쓰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MBC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는 반가움에 <돈꽃>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자사의 드라마를 밀어주기 위해 1, 2회를 묶어 방송하는 '특별 편성'은 종종 있었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KBS2 <태양은 가득히>(2014), SBS <달의 연인>(2016), SBS <사임당>(2017) 등 그런 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연속 방송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여 기존의 경쟁작들 사이에서 돋보이려는 일종의 승부수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연속 방송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적어도 시청률 면에서) 실패의 확률이 높았다. 



지난 11일 처음 시청자들과 만난 MBC <돈꽃>도 1, 2회 연속 방송을 선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돈꽃>은 1회 10.3%(닐슨코리아 기준), 2회 12.7%로 두 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런데 <돈꽃>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경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 2회 연속 방송이 일시적인 전략이 아니라 계속해서 '토요일에만' 2회씩 방송되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의 전형성을 깨뜨리는 동시에 드라마계 전체에 충격을 주는 매우 파격적인 편성이다.


아무래도 하루에 연속으로 2회를 방영한다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어려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틀에 걸쳐 한 시간씩 시청하는 패턴에 익숙해져 있던 시청자들에게 2시간 연속해서 드라마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돈꽃>의 과감한 편성은 콘텐츠에 자신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도전인 셈이다. 그런데 <돈꽃>은 시청률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챙겼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시선을 압도하는 쫄깃한 이야기 구조와 강필주 역을 맡은 장혁의 활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돈꽃>은 재벌인 '청아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승계권 다툼'이다. 청아그룹의 회장 장국환(이순재)은 맏며느리 정말란(이미숙)과 그의 아들 장부천(장승주)를 박대하고, 둘째 아들 장성만(선우재덕)과 그 아들 장여천(임강성)을 신뢰한다. 철부지와 다름 없는 장부천과 달리 장여천은 언론사를 처가로 둔 덕에 많은 이권들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청아그룹의 승계권은 맏손주인 장부천이 아니라 장여천에게 돌아가는 건 시간 문제다. 


한편, 고아원 출신의 변호사로 청아그룹의 법무팀 상무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 강필주는 자신이 따르는 정말란과 장부천을 위해 '정략 결혼'을 제시한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나기철(박지일)의 딸 나모현(박세영)과 장부천을 결혼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국환 회장의 숙원인 '청아 타워'를 건설시키겠다는 것이 강필주의 계획이다. 문제는 나모현이 '운명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낭만적 인물이라는 점이다. 재벌이라면 치를 떠는 나모현의 마음을 장부천에게 돌리기 위해 강필주는 '운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이 표면적 갈등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르겠지만, <돈꽃>은 쐐기를 박을 무기를 한 가지 더 준비했다. 바로 '강필주의 복수심'이다. 도대체 강필주는 누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청아 그룹에 들어온 걸까. 그 대상은 놀랍게도 장말란이었다. 강필주가 장말란의 심복으로 설정돼 있던 터라 2회 말미의 반전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흥미로웠다. 상심한 장말란을 안아주며 위로하던 강필주의 싸늘한 눈빛은 가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알고보니 강필주의 아빠는 청아 그룹의 부사장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뒤 장말란이 강필주의 엄마와 동생을 죽이려고 했고, 이 원한을 되갚아주기 위해 청아 그룹에 '잠입'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강필주는 장국환 회장의 숨겨진 손자였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었던 셈이다. 재벌, 복수, 출생의 비밀. <돈꽃>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성공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는데, 거기에 강필주와 나모현의 '사랑'까지 추가될 예정이어서 그야말로 '대박'은 기정사실인 듯 싶다. 



이번에는 장혁 이야기를 해보자. '믿고 보는 장혁'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기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게 사실이다. 그건 KBS2 <추노>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혁의 연기는 대길이로 수렴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가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거 사실이지만, 악을 쓰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대길'이 보이는 건 시청자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또, 특유의 감정 과잉도 보기 불편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출연했던 OCN <보이스>에서도 그 '벽'에 부딪쳤다.


결국 해법은 '힘을 빼는 것'이었던 것 같다. <돈꽃>에서 장혁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면서도 넘치지 않는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또, 복수심과 사랑을 숨긴 채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강필주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눈에서 힘을 빼자 오히려 그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눈빛'이 더욱 빛났고, 시청자들의 몰입을 한껏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박세영의 어색한 연기 등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돈꽃>은 파격 편성이라는 승부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 중심에 장혁이 있음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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