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특별사면의 핵심? 부패한 기업(인)에 대한 구제

너의길을가라 2015. 8. 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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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광복 70주년을 맞이해서 경제인 14명을 포함해 6,527명에 대한 특별 사면을 단행(斷行)했다. 그 외에도 가석방(588명), 임시퇴원 조치(62명), 보호관찰 임시해제(3,650명) 등 은전(恩典)조치가 있었고, 운전면허 취소 등 행정제재를 받은 220만 명에 대한 특별감면 조치도 시행됐다. 주인공은 14명일까, 220만 명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둘러싸고 언론들은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다양한 평가를 내놓고 있고, 재계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선, 문제가 되는 포인트를 짚어보자. 첫 번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대표되는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이었고, 두 번째는 4대강 담합 입찰로 적발됐던 건설사들에 대한 행정 제재를 해제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생계 사범 위주, 재벌 최소화.. 국민 공감 의식한 '절제된 사면'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단행한 광복절 특별사면의 핵심은 결국 '민심'이었다. 생계형 사범을 위주로 221만명을 대거 사면하면서도 정치인은 아예 배제했고 기업인은 14명으로 최소화했다. 재계에서 사면 대상으로 오르내린 대기업 총수 3,4명 중에는 가석방 요건을 채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유일하게 사면됐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약속한 '특별사면권 행사의 엄격한 제한'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려 했다는 명분을 지키면서 집권 후반기 4대 구조개혁의 동력을 민심의 지지에서 찾겠다는 뜻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겨레> '비리 기업인 사면' 비판하던 대통령 어디갔나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등 기업인 14명을 포함해 생계형 범죄자, 중소 영세상인 등 6527명을 대상으로 8·15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약속한 바 있으나, 이날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사면으로 또다시 공약 위반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한국일보>는 '절제된 사면'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면 대상으로 오르내렸던 대기업 총수 3, 4명(예를 들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제외되고, 가석방 요건을 채운 최태원 회장만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했던 '특별사면권 행사의 엄격한 제한'을 지켰다는 것이다.


또, 정치인 사면이 '0'이었다는 것과 "청와대로부터 사면 명단이 내려오지 않은 사면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김현웅 법무장관의 말을 빌려 원칙을 지킨, '절제된 사면'이라고 본 것이다. <동아일보>는 사회 지도층에 엄격한 잣대.. '정치권 쪽지'도 사라져 라는 기사를 통해 '기준과 원칙을 충실히 지켜 과거 비정상적으로 이뤄지던 사면권 남용을 ‘정상화’하려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풀이했다.



반면, <한겨레>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말로 박 대통령을 비판하기를 시전(始展)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 ·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약속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사회지도층의 범죄에 대해선 더욱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거듭 말해왔다. 말과 행동이 달라도 참 많이 다르지 않은가?


최태원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은 '경제 살리기'의 일환이었을까? SK그룹 측은 "경영 공백이 해소됨에 따라 국내에서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 등을 통해 국가 경제를 살리는데 그룹의 역량이 집중될 것이고, 밖으로는 글로벌 비즈니스가 본격 가동되면서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럴까?



'부패한 기업인에 대한 사면'과 '경제 살리기' 사이에는 정말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은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재벌 총수들의 사면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로 연결됐다는 근거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혜훈 새누리당 전 최고위원도 "데이터로 보면 재벌 총수가 풀려나서 경제가 살아난 적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 최고위원이 단적으로 든 사례는 MB의 특별사면이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해 경제가 어려우니까 재벌들을 풀어주자는 논리로 우리나라 5대 재벌 중 3대 재벌을 한꺼번에 풀어줬다. 그런데 결과는 2007년 바로 직전 해에 비해 경제성장률은 2.7%(p)나 떨어졌고 그 다음 해에도 2.1%(p)가 더 떨어졌다. 경제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떨어진 데이터들만 많이 있다"는 것이다.


SK그룹 측은 특별사면에 대한 '대가(代價)'로 여러 제스처를 취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건 결국 '사익(私益)'으로 귀결되지 않겠는가? 설령 단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를 '특별 사면'을 통해 계속해서 구제하다보면 이들에게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은 점차 희박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법치를 무색케 해 국민들에게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다.



최태원 회장에 대한 특별 사면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입찰담합 판정을 받고, 입찰참가제한 등의 처분을 받았던 2,200여 개의 건설사가 이번 특별사면의 혜택을 받은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 가운데 4대강 담합과 고속철도 공사 담합을 저질렀던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입찰참가제한이 향후 국책사업의 수행에 큰 애로로 작용할 수 있고 해외건설 경쟁 국가에서 국내 건설사의 입찰담합 제재 처분을 악의적으로 활용해 해외수주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변명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단속은 왜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건설사들에 대한 사면이 있었지만, 입찰 담합 행위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6년 노무현 대통령, 2012년 이명박 대통령도 했던 일이라고 한다면 당장의 면피는 할 수 있겠지만, 그토록 강조했던 '법치'와 '원칙'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이번 특별사면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고,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고민'이 있었던 것만큼은 뚜렷하게 감지된다. 어느 정도 틀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흔적도 엿보인다. 하지만 부패한 기업(인)에 대한 구제라는 큰틀은 여전히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 민주화? 불과 몇 년 전에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들었던, 그 구호는 어느덧 화석(化石)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경제 살리기?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그 폭력적인 구호는 여전히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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