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취업을 볼모 삼은 사상검증, 먹고사니즘의 자발적 굴종이 아프다

너의길을가라 2015. 11. 1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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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


"여기 바로, 내 손에! 205명의 공산당원 명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국무부에서 미국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 2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국무부에 침투했다는 묻지마식 고발로 미국 전역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매카시의 저 선동이 2015년 대한민국에도 똑같이 펼쳐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대한민국 국사학자는 90%가 좌파로 전환됐다"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모두 '좌파'로 규정하는 폭력적인 구분법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이 싸움에 지면 우리나라가 망한다. 국내 좌파와의 싸움에서 점잔을 떤다고 진다면 북한 놈들이 어떻게 보겠느냐"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심지어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은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새누리당의 태도가 매카시즘(McCarthyism)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색깔론'을 덧입혀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정치'꾼'들의 오래된 패턴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제 저런 고리타분한 방식의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다. 노예가 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장된 혼탁함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본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급증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만 보더라도 새누리당발(發) 매카시즘은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무서운 건 '자본'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상검증'이다. 그건 아주 은밀하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 노골적이다. 물론 '국정화에 반대하면 100만 원 줄게'라는 식으로 접근하진 않는다.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식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과연 '취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은 알아서 '신념'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겠는가?


취업준비생 김모씨(27)는 올해 상반기에 치러진 한 저축은행 채용 면접에서 질문 하나 받지 못하고 탈락했다. 세월호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문제였다. 면접관은 "이런 곳에서 활동했으면 회사 와서도 시위만 하는 것 아니냐"며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김씨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 줄 몰랐다"며 "다시는 활동 경력을 이력서에 적지 않겠다"고 토로했다.


"정치성향도 스펙?" 신념 포기하는 '취준생들'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청년들이 장기적인 취업난으로 인해 정치 신념까지 '스펙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는 '업무 능력을 최우선으로 평가한다고 내세우면서도 실제 면접 등에서는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는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단 위의 사례에 나온 저축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일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 쏟아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신입사원 면접에서 민간한 현안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던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회사 측은 "지원자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답변 스킬, 결론 도출의 논리성 등을 평가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를 '사상검증'이라 여기며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달 30~31일 있었던 '2015년도 5급(행정) 국가공무원 공채 면접시험'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또, '공무원으로서 종북세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라는 질문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한강의 기적' 등도 언급됐다고 하니, 어떤 분위기였는지 그리고 어떤 대답이 '강요'되고 있는지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랜드그룹의 계열사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면접 질문을 사전에 배포했는데, 그 질문들의 '꼬락서니'는 이러하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문제와 본인의 입장은 무엇인가", "세월호 법이 늦게 통과된 원인은 무엇이고 지원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천안함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노골적인 질문들 앞에서 과연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신념'을 위해 '취업'을 포기한다? 아니면 눈딱감고 이번만?


경력판사를 임용하는 데 국정원 직원들이 지원자를 접촉해 면접을 진행하기도 하고, MBC 경력기자 면접에서도 "당신은 보수냐 진보냐", "누가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고향이 어디냐"와 같은 사상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군종신부를 선발하는 데도 제주 해군기지, 연평도 포격에 대해 중립적인 의견을 제시한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정치성향도 스펙'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취업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외워' 대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프다. '사상의 자유'라는 거창한 말도 필요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자유도 있다. '취업'을 볼모로 행해지는 위와 같은 '사상검증'은 이 가지 자유를 모두 빼앗고 있다. 


- 에드워드 머로 -


공화당은 여당인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서 매카시에 동조하고,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매카시에 동조하고, 언론은 자신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매카시에 동조할 할 때(김진혁, 『5분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에서 인용), 휘몰아치는 매카시즘의 광기 앞에 두려워 모든 미국인들이 입을 닫고 있을 때, 한 명의 방송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에 떨며 살 순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광기의 시대로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록하고 말하고 동참하길 겁내는 자의 후손이 아니며 억지 주장을 관철하려는 자의 후손도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그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게 아니라 다만 효과적으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카시우스가 옳았습니다. 문제는 우리 운명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 <See It Now>, 1954년 3월 9일 방송 중에서 -


에드워드 머로의 저 선언은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것일까? 차라리 우리의 적이 '공포'라면 차라리 맞서 싸울 수라고 있겠지만, 우리를 짓누르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자발적인 굴종, '먹고사니즘'의 비굴함인 이 시대에 과연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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