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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흥미로운 '시지프스', '미투' 협박 대사는 아쉽다

너의길을가라 2021. 2. 2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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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창사 1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선보인 수목 드라마의 제목은 신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영원한 형벌을 받았던 한 인간의 이름과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국가였던 코린토스(Korinthos)를 창건한 시지프스(sisyphus). 그는 저승에서 죽음의 신 하데스를 속인 죄로 벌을 받게 됐다. 바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이었다.

온힘을 다해 가까스로 옮긴 바위는 얄밉게도 정상 근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이럴수가, 맥이 빠지고 허탈한 일이었다. 문제는 번번이 똑같은 결과가 반복됐다는 것이다. 시지프스는 결코 바위를 정상까지 옮길 수 없었다. 이젠 절망스러웠다. 그럼에도 시지프스는 같은 일을 계속 되풀이해야만 했다. 완수될 수 없기에 영원하고, 끝이 없기에 더욱 끔찍한 형벌이었다.

<시지프스 : the myth>(극본 이제인 전찬호, 연출 진혁)는 제목을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한다. '퀀텀앤타임'의 공동 창업자인 천재 공학자 한태술(조승우)은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매우 흡사한 캐릭터이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재벌이고, 여성편력도 심하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위트있)게 비행기를 수리해 낼 정도로 천재적이다.


한태술은 비행기 사고를 계기로 형 한태산(허준석)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형은 정말 죽었을까. 그는 형의 흔적들을 추적하던 중 발견한 의문투성이 '슈트 케이스'를 열게 되고, 그 때문에 정체불명의 '단속국' 사람들에게 감시당하는 신세가 된다. 형이 살아있음을 확신하게 된 한태산은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의 비밀을 밝혀내는 일에 온힘을 쏟게 된다.

2035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강서해(박신혜)는 오로지 한태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과거로 넘어왔다. 이를테면 미래에서 온 구원자라고 할까. 건물 옥상을 이리저리 넘나들 정도로 거침없고, 거구의 남자들을 맨손으로 제압할 정도로 무술에 능하다. 특전사 출신 경찰인 아빠 강동기(김종태)로부터 각종 생존술을 배운 덕분이다.

2회까지 방영된 <시지프스>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두 개의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문이다. 그 외에도 많은 궁금증이 남았다. 미래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던 한태산은 살아있는 걸까. 단속국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한태술과 강서해는 한태산이 남긴 사진에서처럼 결혼을 하게 되는 걸까.


무엇보다 <시지프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직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여러가지 질문들이 혼재되면서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는 걸 느끼는 와중에 어찌됐든 확실한 건 이 드라마가 흥미롭다는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할지 말지를 결정하기에 1회는 (충분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섣부르다. 답은 대충 나오지만 그래도 신중을 기하라면 2회까지는 봐야 한다.

독특한 소재와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준 <시지프스>는 흡인력을 증명했다. 시청률도 1회 5.608%(닐슨코리아 기준)의 높은 수치를 기록한데 이어 2회에서 6.677%로 상승 곡선을 보여줬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JTBC의 드라마 잔혹사를 깨줄 구원자가 된 셈이다. 이제 시지프스의 운명을 짊어진 조승우와 박신혜가 어떻게 힘을 합쳐 그들을 짓누를 무게와 맞서싸울지 지켜보면 될 것 같다.


"여성 편력이 꽤 있으십니다. 요즘 같이 세상이 하수상할 때는 그저 몸 조심하는 게 최곤데, 안 그렇습니까? 내일 미투 기사 나갈 겁니다. 회사 주식 한 10% 빠지겠네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시지프스> 속 '불필요한 대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장면은 단속국에 쫓기다 잡힌 한태술이 심문을 받는 대목이었다. 단속국인 출입국 외국인청 7과장 황현승(최정우 분)은 사회지도층인 한태술을 압박하기 위해 그의 여성 편력을 언급하며 미투 기사가 나갈 거라고 협박했다. 반드시 필요한 대사였을까? 충분히 달리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고발하는 운동인 '미투'를 협박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의 용기가 현실에서 손쉽게 왜곡되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또, 미투 기사가 언제든 조작될 수 있고, 정치적 의를 띨 수 있다는 뉘앙스를 암시함으로써 '미투'의 순수성을 욕보인 격이다. 비록 악역의 대사였다고 해도 좀더 세심했어야 했다.

지금도 성폭력 피해의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시지프스>가 끝없이 반복되는 현실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줬다는 건 반드시 짚고 남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런 비판을 제기하는 까닭은 좋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좋은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니 <시지프스>가 그 점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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