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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로 가득한 KBL, 라틀리프의 한숨과 전태풍의 분노

너의길을가라 2015. 3. 7. 10:05


지난해(2014년) 10월 11일 개막했던 KBL 2014-2015 정규시즌이 지난 3월 5일 마무리됐다. 이번 시즌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김영기 총재가 다시 부임하면서 국제농구연맹(FIBA) 룰을 도입하는 등 많은 기대를 모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본 KBL 2014-2015 정규시즌은 아쉬움을 넘어 실망 그 자체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매우 과(過)한 성적표를 매겼지만, 실제 팬들이 체감하는 성적은 낙제(落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FIBA룰이 도입하면서 팀 속공 수가 162.4번에서 185.9번으로 늘었고, 2점슛 성공률도 약간 높아졌다. 그런 만큼 팀 득점도 73.4점에서 74.6점으로 1.2점 높아졌다. "바뀐 규정이 득점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던 이재민 KBL 사무총장의 말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U1파울과 U2파울의 명확성이 떨어지고, 심판들의 판정이 오락가락하면서 '파울콜'에 대한 논란은 시즌 내내 계속됐다.


무엇보다 가장 명확한 지표는 관중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평균 관중은 3886명 수준으로 지난 시즌의 4372명 보다 11.2% 감소했다. 횟수는 말할 것도 없고, 일관성조차 없는 TV 중계 탓에 시청률도 떨어졌다. 프로농구 평균 시청률(0.272%)은 남자 프로배구(0.896%)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부실한 경기력과 심판 판정 논란, 게다가 KBL의 무능까지 겹쳐져 한국 프로농구는 점차 나락(奈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 글의 초점은 KBL의 무능보다는 차별 쪽에 두고자 한다.



지난 1월 11일 열린 올스타전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당시 라틀리프는 29득점 2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MVP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경기를 지켜 봤던 농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MVP는 16점 6도움 1리바운드를 기록한 SK의 김선형에게 돌아갔다. 기자단 투표로 선정되는 MVP였던 만큼 기자들은 '올스타전 백미는 김선형의 더블클러치'였다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쏟아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변명에 불과했다.


'외국인 선수 농사가 시즌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외국인 선수의 능력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각종 기록에 있어서도 외국인 선수들이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언급되곤 하는 MVP 수상에서도 외국인 선수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끝내 선택을 받지 못한다. MVP의 'V(valuable)'에 기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기자들의 변명이 공허하게 반복되지만, 팬들은 분명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KBL은 지난 6일 이사간담회를 열고 갑작스럽게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외국 선수상, 기량발전상, 수비5걸상을 재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외국 선수상'이다. 지난 2010-11 시즌 이후 폐지됐던 '외국 선수상'이 4시즌 만에 '굳이'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 속내는 뻔하다. MVP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에게 MVP를 줄 수 없다는 KBL의 차별적 사고방식이 낳은 우스꽝스러운 행정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 선수상은 2010-11 시즌 폐지됐다. 그 이유는 국내외 선수를 구분하지 않고, MVP를 선정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최근 3시즌 동안 MVP는 국내 선수들(윤호영, 김선형, 문태종)이 독식했다. 헤인즈와 제퍼슨 등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은 배제됐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다. 라틀리프는 이번 시즌 평균 28분 57초를 뛰며 20.1점(3위), 10리바운드(1위), 1.7블록슛(2위), 야투성공률65.6%(1위)을 기록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라틀리프의 기록, 아니 기자들이 좋아하는 표현처럼 라틀리프의 '가치'를 뛰어넘는 선수는 없었다. 굳이 언급한다면 같은 팀의 양동근(11.8득점, 4.9 어시스트) 정도일 것이다. 물론 양동근이 갖는 팀 내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갓틀리프'라 불렸던 라틀리프의 그것도 그에 못지 않다.


MVP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자, KBL은 결국 '외국 선수상'을 부활시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이로써 원년부터 이어진 '국내 선수 = MVP' 공식은 계속 이어지게 됐다. 이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일까? 아니면 비겁한 조치일까? KBL의 '차별적 사고방식'은 단순히 외국인 선수에게 MVP를 줄 수 없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혼혈 선수'를 대하는 규정에서도 KBL의 차별은 여실히 드러난다.



"언제까지 날 혼혈로 묶을 것인가. 장난은 그만 쳤으면 한다."


부산 KT의 전태풍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번 시즌 이후 자유계약으로 풀린다. 그가 '혼혈 선수'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KT를 포함한 10개 구단이 입찰(!)에 나설 수 있고, 그 중 가장 높은 연봉을 쓴 팀과 계약을 해야만 한다. 지난 시즌 오리온스에서 KT로 이적하면서 "2~3년 정도 더 뛸 것이다. 선수 생활 마지막은 이곳 KT에서 하고 싶다"던 전태풍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전태풍은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에 와서 뛴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혼혈 선수로 규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지난 2009년 KBL은 프로농구 흥행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귀화혼혈선수제도'를 도입했다. 문태종, 문태영, 이승준, 전태풍 등은 국내 선수보다 한 두 단계 높은 실력을 뽐내며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경기력 향상과 흥행에 모두 기여했다.


ⓒ KBL


하지만 이들은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평등 계약을 맺어야만 했다. 선택의 기회는 박탈당했다. 한 구단에서 3년만 뛸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10개 구단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는 KBL의 근시안적 사고가 낳은 촌극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KBL은 이들을 '혼혈 선수'로 받아들였고,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대우하고 있다.


"다시 맞추고 감독에 맞추고…. 힘들 것 같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제발. 장난 치는 것 같다. 그만 쳤으면 한다"는 전태풍의 한숨이 멈추는 날이 올까? 이 분노와 한숨이 전태풍에서 끝이 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피해자에게로 옮겨붙게 될까? KBL의 반성과 개선의 의지가 필요하다. 무능도 나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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