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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른의 의미를 묻는 <김과장>, 우리는 어떤 어른인가?

너의길을가라 2017. 3. 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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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義人)이 복수의 화신이 됐다. 아니, 결국 다시 의인이다. '악(惡)'에 합당한 응징을 가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는 그의 행보를 어찌 '의인의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보폭은 더 넓어졌다. 그 발걸음도 경쾌하기 짝이 없다. KBS2 <김과장>은 지난 번 택배 기사의 애환을 다루더니 이번엔 편의점 알바의 열악한 환경을 조명했다. 그 중심에 김성룡(남궁민)이 있었고, 그는 두팔 걷어붇이고 앞장섰다. <김과장>은 통쾌한 '사이다'는 물론이고,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 진지한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버틸 때와 버티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가려야 모두가 고생을 덜 하죠."

"이렇게 쫓겨나가면 갈 곳도 없어요."

"저흰 을 중의 을입니다. 근데, 그 을이라는 말 저희 위치가 아니라 저희 자체입니다."

"갑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을에서 이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금 체불' 문제로 본사와 대립했던 TQ편의점 점장들은 결국 갑(甲)의 횡포에 무릎을 꿇었다. TQ리테일 대표 취임을 목전에 둔 서율(이준호)은 '힘'으로 간단히 편의점 점장들을 진압해버렸다. 자신의 지시를 불이행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지점 취소 및 점장 자격을 박탈하고 가맹점화 할 것이라 위협했고, 여기에 을의 입장에 놓여 있던 점장들은 기가 잔뜩 눌려버렸다. 이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김성룡은 점장들에게 '조금만 버텨보지 그랬냐'고 말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삶의 무게'로 어깨가 무거운 사람들. 가정을 비롯해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 그래서 두려운 것도 많은 사람들. 횡포에 순응하고 머리 숙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두둔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야박하게 몰아치기도 어렵다. 김성룡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한편,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김성룡은 새로운 우군을 만나게 된다.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TQ편의점에 들른 김성룡은 점장과 알바생 민지(하승리)의 말다툼을 듣게 된 것이다.



"회사는 점장들의 서명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

"점장들은 합의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알바들은 그런 합의 원하지 않는다. 밀린거 다 받고 사과도 받아야죠."

"본사가 우리에게 1억원 빌렸다고, 고스란히 1억원 다 돌려줄거 같아? 차라리 벌금 100만 원내고 땡이야.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야."

"쉽고 어려운걸 떠나서 당연한 우리의 권리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 아직 어려서 모른다"


TQ편의점이 알바생들을 상대로 임금체불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성룡은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김성룡은 민지에게 "싸움에는 쪽수가 가장 중요하거든. 쪽수가 많아야 개김에 위엄이 생"긴다며 TQ편의점 알바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고, 이에 민지는 SNS를 통해 '연대'를 이끌어 낸다. 또, 박명석(동하)의 조언에 따라 회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도록 했고, 대표이사 장유선(이일화)에게 도움을 요청해 로펌 고앤구 변호사들을 투입시킨다.


이러한 김성룡의 움직임을 포착한 서율은 재무 관리 본부장인 고만근(정석용)을 보내 알바생 민지에게 돈을 건네는 방법으로 집단 소송을 와해시키려고 하지만, 민지는 "진짜 구리다. 제발 좀 쪽팔리는 줄 아세요."라며 단호히 거절한다. '(기존의) 어른'에 대한 회의(懷疑)와 함께 '진짜 어른'에 대한 갈구(渴求)가 있었던 민지에게 기존의 '어른의 방식'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서율은 직접 나서서 "다 같이 덤비면 다 같이 다쳐. 그러니까 네 자신만 챙겨라"라고 충고하지만, 민지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어딜 가든 가관이에요. 당신네 어른들요. 하는 짓이라곤 애들 돈이나 떼어 먹고, 희롱하고 때리고, 맨날 어설픈 충고질이나 하고. 자기네들도 그렇게 못 살았으면서. 결론은요, 이 세상엔 진짜 어른보다 나이만 쳐먹은 사람들이 더 많구나, 나는 그렇게 나이들면 안되겠구나. 그거예요. 딱 보니까 아저씨도 예외는 아니에요. 더 하면 더 했지!" 


돈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편의점 알바생들의 단결과 TQ메틱 자료를 통해 흑자 상태에서도 임금을 체불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김성룡의 활약으로 결국 TQ 그룹의 박현도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물론 박 회장은 "내가 그깟 것들한테 머리를 숙여"라며 그 어떤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김성룡도 이 정도로 세상이 바뀌지 않느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다고 변할까요?"라고 윤하경(남상미) 대리가 묻자 "변하긴 뭘 변해. 좀 있으면 똑같아 지지. 그래서 한번에 끝내면 안돼요. 여러 번 연속으로 해줘야지."라고 답했다.


혹시 이 모든 게 '드라마' 속의 가상적 내용이라 생각하는가? 과장한 거라고 생각하는가. '알바노조 편의점 모임'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61%가 주휴 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고, 43.9%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67.9%가 손님들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는데, 이처럼 그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을 향해 우리는 과연 뭐라고 말해 왔을까. 설마 이렇게 말해오진 않았을까?



"누가 우리 얘길 들어줘요. 정당하게 불만 얘기해도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하는 거다. 옛날엔 더 했다. 그래도 일 할 수 있는 젊음이 좋은 거다. 다들 개소리만 하고."

"그렇지, 그건 개소리지."

"돈 못 받는 게 제일 화나긴 한데, 그보다 더 화나는 건 우리한텐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쟤넨 어리니까, 알바니까, 만만하니까 그래도 돼, 하는 거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속이 시원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드라마 속의 대사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 민낯은 곧 우리, 나 자신의 민낯이기도 했다. 더 이상 저런 '개소리'가 통용되는 사회가 되지 않길 바란다. 민지는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끝내 통쾌한 승리를 이끌어낸 김성룡을 향해 "저한테는 진짜 어른이다. 진짜 어른"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과연 진짜 어른이란 무엇일까. <김과장>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그 진짜 어른이란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해, 이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나가는 '싸움'을 해내가는 어른이 아닐까. 3월 10일, 비로소 박근혜가 탄핵됐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헌정을 파괴했던,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던 '어른'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결국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며, 그 가치가 살아있음을 증명해보였다. 이제 우리는 '진짜 어른'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부끄러운 어른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김성룡처럼, 우리도 '당신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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