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우리 이혼했어요' 톺아보기

진정성으로 물오른 '우리 이혼', 꼭 장편 드라마일 필요는 없다

너의길을가라 2021. 1. 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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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만난다. 그것도 방송을 통해 그 재회가 낱낱이 공개된다. 이토록 아찔하고 과감한 설정은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방송이었던가. 도발에 기꺼이 넘어간 시청자들은 TV조선에 첫회 시청률 8.995%(닐슨코리아 기준)의 대박을 안겼다. 그리고 2회에서는 9.288%라는 숫자로 잔뜩 기를 세워주었다. 그래, 당신들의 기획이 제대로 먹혔어!

최대치의 관음을 자극하며 출발했던 <우리 이혼했어요>는 야기했던 논란에 비해 굉장히 조신한 편이었다. 물론 선우은숙이 이영하에게 과거의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자신을 괴롭혔던 배우를 언급해 그의 실명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최고기와 장모 간에 패물을 둘러싼 대립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부분 등 과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보나마나 막장일 것이라는 애초의 선입견은 상당히 빗나갔다.

적어도 <우리 이혼했어요>는 '이혼(한 사람들)은 실패(자)가 아니다'라는 주제의식을 설파하는 데 성공했다. 선우은숙-이영하는 이혼 후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박재훈과 박혜영은 부부 관계는 끝났어도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이하늘과 박유선은 이혼 후에 오히려 더 애틋한 사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뿌리내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이혼했어요>가 안심할 단계는 결코 아니다. 아직까지 고작 7회가 방송됐을 뿐이다. 여전히 불안 요소가 많고, 경계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우선, 편성을 바꾼 선택은 상당히 모험적이었다. 금요일 저녁이라는 안정적인 시간대를 버리고 뛰어든 '월요일 밤 10시'는 포화 상태라고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KBS1 <가요무대>(7.4%)를 필두로 JTBC <싱어게인>(6.241%), SBS <동상이몽 2>(6%), KBS2 <개는 훌륭하다>(5.2%)까지 탄탄한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우리 이혼했어요>가 6.442%를 기록하며 경쟁 프로그램들을 앞서 나가긴 했지만, 8%대를 기록하고 있던 기존의 시청률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편성보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방향성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현실 속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 놓으며 '드라마'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별다른 저항 장벽 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또,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이혼 부부를 등장시켜 폭넓은 시청층을 흡수한 점은 영리했다. 공감의 영역이 굉장히 넓고 깊은 편이다.


시청자들은 각각의 이혼 부부가 꺼내놓은 사연에 감정이입했다. 결혼 생활에서 겪었던 갈등,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이혼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 이혼 후에도 남겨진 문제 등은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가령, 딸 솔잎이에게 "절대 너를 떠난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하는 유깻잎의 안타까움이 현실이라는 걸 알기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찰 예능이 겪는 '과유불급'이라는 고질병이 <우리 이혼했어요>에서도 재현될 조짐이 보이는 건 우려스럽다. 이를테면 방송 분량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에피소드를 짜내는 것 말이다. 예민한 시청자들은 그 연출을 눈치채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미 들려줄 이야기를 충분히 한 출연자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프로그램의 기존 취지나 진정성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찰 예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SBS <미운 우리 새끼>나 MBC <나 혼자 산다>는 초심을 잃고 '그들만의 세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연출된 일상과 이벤트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알량한 시청률이 제작진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씁쓸한 일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도 마찬가지이다. 선우은숙-이영하의 경우 초반에 엇갈린 반응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하지만 이후 서로 진솔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이혼 후의 가족'이라는 생각거리를 제시했다. 노년의 동반자로 늙어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충분히 곱씹어볼 만했다. 하지만 다음 회 예고편은 또 다시 과거의 일이 언급되면서 갈등을 불거질 것을 알렸다.


서운하다는 선우은숙과 몰랐다는 이영하의 입장 차이는 이미 봤던 구도인데, 다음 회에서 똑같이 재현되는 셈이다. 선우은숙은 고소까지 당했다며 분개했는데,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또 한번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최고기는 제작진을 따로 만나 술을 마시며 재결합에 대한 의사를 전달했는데, 유깻잎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작진은 상황을 마련하기 위해 애쓸 것으로 보인다.

적당한 시기에 하차하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출연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론 당사자들에게 그런 판단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새 판을 짜는 것보다 기존의 익숙한 그림을 끌고 가는 게 수월하다. 검증된 출연자들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곧 고갈되기 마련이고, 그 후에 남는 건 억지뿐이다. 순환은 불가피하다.

<우리 이혼했어요>가 억지스러운 극본과 무리한 연출로 피로도 높은 장편 드라마를 찍기보다 내실 있는 미니 시리즈를 기획하는 쪽을 선택하길 바란다. 힘만 있다면 단막극도 괜찮으리라. 시청자가 바라는 건 공감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이지 질질 끄는 막장극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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