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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해 다룬 '표리부동', 몰입감 떨어졌던 표창원과 이수정

너의길을가라 2021. 7. 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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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참 재밌었다. 들었던 얘기를 또 들어도 귀를 쫑긋하며 집중하게 됐다. 분명 외할머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 '전문가'이자 '권위자'였다. 범죄 사건을 파헤치는 KBS2 <표리부동>은 두 명의 화자를 내세웠다. 표창원과 이수정이다. 범죄 분야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이자 권위자인 두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쫓아가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기억될 2000년 5월의 어느 날, 경기도 과천의 한 공원에서 토막난 사체가 발견됐다. 경찰은 이후 총 11곳에서 훼손된 시신 14점을 찾아냈다. 남성과 여성 두 사람의 시신으로 추정됐다. 과학 수사를 통해 해병대 중령 출신의 남성과 신원불상의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그 여성을 신원에 밝혀진 남성의 부인으로 추정했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사실은 해당 부부에게 자녀가 2명 있었지만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경찰은 당장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 안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웃들은 둘째 아들 박 군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고 진술했기에 더욱 수상했다. 어쩔 수 없이 열쇠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려던 순간, 박 군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밖으로 나왔다.

경찰은 박 군에게 부모님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3일 전에 성당에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빠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했음에도 박 군은 무표정했다. 더구나 엄마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집 안 수색에 나섰고, 결국 화장실과 거실에서 혈흔으로 추정되는 작은 얼룩을 발견했다.


또, 시신이 담겨 있던 비닐봉투에서 둘째 아들의 지문이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부모님을 살해하고 잔혹하게 시신을 토막낸 후 유기한 범인은 다름 아닌 둘째 아들 박 군이었다. 그는 도대체 왜 존속살해를 저질렀던 걸까. 표면적으로 둘째 아들은 나무랄 데 없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명문대 학생이었다. 말 그대로 모범생이었다. 순탄해 보였던 그의 삶의 왜 바뀌었을까.

"친부모님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고 제 인생을 해코지하고 저를 못살게 굴었죠. 인격적으로 계속 목요하고 멸시해서 저의 사회적 의지를 박탈하고 인격을 완전 파멸시켰다고 생각해요."


현장 검증을 하던 중 박 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친부모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신의 못살게 굴었다는 얘기에서 깊은 원망이 느껴졌다. 혹시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은 아닐까. 당연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두 살 터울의 형은 그 말을 전해듣고 착잡해하며 "동생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평범해 보였던 가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고 발생 10일 전으로 돌아가 보자. 형이 집을 얻어서 독립하던 날이었다. 엄마는 형의 이사를 돕고 귀가한 박 군에게 '인테리어는 잘 됐냐'는 등 질문을 했다. 그런데 박 군이 성의없이 대답을 하자 말다툼이 벌어졌다. 박 군은 "왜 형한테만 관심을 가져요. 집까지 구해줬으면 됐지."하며 화를 냈다. 형을 위해 박 군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집을 구해줬던 것이다. 오랫동안 쌓였던 울분이 터졌다.


며칠 뒤 박군은 아빠에게 또 다시 타박을 들어야 했다. 권위적인 아빠는 박 군을 심하게 몰아세웠다. 마음에 상처를 심하게 받은 박 군은 그날부터 6일 동안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박 군은 부모는 물론 세상과의 단절했고, 부모 역시 그런 아들에게 단 한번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6일째 되던 날, 박 군은 잠들어 있던 부모를 살해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날 때리고 구박하는 건 그럴 수 있어요. 때리고 나서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한마디만 해줬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었어요."


수사 결과, 박 군은 지속적 학대로 인해 무기력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모에게 언어폭력뿐 아니라 신체폭력까지 당했던 것이다. 교육을 빌미로 한 학대였다. 형은 유아 시절부터 이어진 학대를 인정했다. 부모는 운동화 끈을 못 묶는다는 이유로 때리고,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던졌고,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등 엄격하고 권위적으로 자녀를 대했다.

또, 박 군을 부를 때 '빠가', '거지', '떨거지', '무지렁이', '싹수 노란 싹퉁머리', '굼벵이' 등 비인격적인 호칭을 사용했고, 명문대에 들어갔음에도 "네가 그것 말고 볼 게 뭐가 있냐"라며 성취감을 떨어뜨리고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박 군의 심리 상태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나마 형은 부모에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했지만,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박 군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았다.

하지만 형이 독립하면서 심리적 방패막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또,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던 6일은 살인의 명분을 쌓아나가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끝내 부모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리라. 음주로 인해 충동 조절에 실패한 상황에서 박 군은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공격성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참혹했던 존속살해 사건의 전말이다.

"결코 부모님 탓이 아닙니다. 저 자신이 소심하고 나약해서 자신감을 잃고 실망하다 보니 제가 이렇게 어리석게도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으로 돌리는 악몽 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박 군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과연 박 군은 자신의 범죄를 후회하고 있을까. 답은 박 군과 22년째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박순 상담학 교수가 갖고 있었다. 박 교수는 박 군에게 온 편지의 한 구절을 통해 박 군이 범죄를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박 군은 사건 발생 보름 후 생을 마감할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과연 보름 동안 무엇을 할 생각이었을까.

충격적인 사실은 박 군의 부모님도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박 군의 엄마는 지나친 기대와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자신의 성장 환경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를 저질렀다. 억압하는 방법밖에 몰랐기 때문에 따뜻하게 대할 수 없었다. 또, 권위적인 남편과의 삶도 쉽지 않았으리라. 박 군의 아빠는 자신의 형과 차별당하며 자랐다고 한다. 또, 그의 아빠처럼 가정에 무심했다.

이수정은 불안과 우울함이 가져온 판단력 상실이 범죄 요인 중 하나였고, 복합적 요인이 엄마와의 싸움으로 폭발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또, 아무리 아동학대의 피해자더라도 범행 동기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표창원은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은 본인이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며 유사한 사건 발생 시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과 예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표리부동>은 끔찍했던 존속살해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아동학대의 되물림'을 조명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박 군이나 박 군의 부모 모두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치유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결국 그들이 삶을 처참하게 파괴하고 말았다. 하지만 표창원과 이수정은 '범죄 동기는 동정한다. 하지만 범죄는 동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표창원, 이수정이라는 범죄수사계의 유명인을 내세운 <표리부동>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범죄를 풀어낸다. 이야기로 전달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이제 시청자에게 상당히 익숙하다. 교차편집은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와 같은 콘셉트이고, 전문가가 출연했던 tvN <알쓸범잡>과도 닮아있다. 오히려 편집이 돋보이는 <꼬꼬무>나 전달력이 뛰어났던 <알쓸범잡>에 비해 평이하다는 느낌이다.

전문성을 갖춘, 가장 유명한 화자들을 내세웠음에도 이야기가 주는 몰입감이 부족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표창원만의 시선, 이수정만의 시선이 녹아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3회까지 방송된 <표리부동>은 표창원과 이수정이 단순히 범죄사실을 열거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래서는 청자의 귀를 사로잡을 수 없다. 정보를 전달하는 시사교양의 한계, 그 몰개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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