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알쓸' 시리즈 톺아보기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오은영이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은?

너의길을가라 2021. 6. 12. 07:42
반응형

통계는 여전히 씁쓸하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1만 3,799명에 달한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비율은 24.6명으로 OECD 37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11.3명이 평균인데, 우리는 2배가 넘는다. 10여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1위 타이틀이다. 연령별로 따져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40대와 50대는 암에 이어 2위이다.

자살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6일 tvN <알쓸범잡>에 출연한 오은영 박사는 워낙 이유가 다양하다고 전제하면서 '중요한 것을 상실했을 때'라고 대답했다. 상실이 굉장한 우울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상실의 범주에는 재산, 사람, 건강, 명예 등이 포함된다. 또, 인간은 가까운 사람에게 정서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지지기반이 없거나 너무 외롭고 소외될 경우에도 위험도가 높다.

오은영은 사회적 현상이나 개인의 상황을 가지고 자살의 이유를 찾아 들어가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핵가족화', '주변의 관심 부족' 이런 류의 문제 접근은 해답도 마땅치 않다. 오은영은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살의 제1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은 우울증 유병률이 36.8%로 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통계도 있다.


"'용기를 내봐.', '마음을 굳게 먹어봐.', '취미를 가져봐.' 그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되고.. 그 분이라고 힘내지 않고 싶지 않거든요." (오은영)

우울증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마음이 약해서' 또는 '배가 불러서' 나타나는 증상이 결코 아니다. 또, 단순히 "나 오늘 울적해. 우울한 기분이 들어."라는 것과도 다르다. 최소 2주 이상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고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우울증 상태의 뇌는 충동화 담당 뇌가 활성화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부위와 연결하는 신경망이 좁아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오은영의 장담처럼) 고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약물 치료가 필수적인데, 실제로 약을 먹으면 80% 가량은 증상이 호전된다. 오은영은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 '힘내'라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너는 지금 아프니까 회복기 필요해. 쉬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의지를 통한 극복의 문제라기보다 치료의 문제인 것이다.

한편, 법적으로 자살을 생각해보면, 자살은 굉장히 특이한 행위이다. 법이란 사회 윤리 중에서 꼭 지켜야 하는 것을 뽑아 의무화시켜 놓은 것이다. 정재민 심의관은 자살을 금지하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사회적 윤리임에도 '자살죄'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자살한 사람에게 처벌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공소기각결정으로 마무리된다.

 


또, 근대 사상의 기본은 자유주의이므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자살을 범죄로 다루지 않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다만, 법에는 자살방조죄는 인정하고 있다. 누군가의 자살을 심적(조언/격려 등) 또는 물적(자살도구 제공)으로 도와주는 경우 처벌받는다. 조력 자살을 두고 학계에서 많는 논쟁이 있었으나 한국의 경우 현행법상 처벌을 하고 있다.

정 심의관은 스위스에는 1942년부터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디그니티스라는 비영리 조력 자살 협회가 있는데, 매년 약 200건의 조략 자살을 수행한다. 물론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다. 불치병, 견딜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장애, 통제 불가능한 고통의 경우에 조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의사의 최종 승인을 받은 환자 중 80%는 조력자살을 포기한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존엄사는 권리일 수 있죠. 끔찍한 병에 걸려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데 그저 삶이기 때문에 계속 유지해야 한다면 그것이 잘하는 것인지.." (김상욱 교수)

김상욱 교수는 지옥이 영원한 고통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고통 속에 사는 건 죽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라며 존엄사를 언급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안락사 문제로 넘어갔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일명 '보라매 병원 사건'을 통해 안락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당시 한 남성이 뇌 수술을 받았는데, 아내가 곧바로 퇴원을 요구했다. 뇌가 부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지속적으로 가족을 구태했고, 치료비도 부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극구 퇴원을 원했다. 병원은 각서를 받은 후 퇴원을 시켰다. 의학적 판단에 반하는 퇴원(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였다. 1997년 당시에는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이 없었다. 결국 남편은 사망했고, 아내는 살인죄로 기소됐다. 문제는 담당 의사들까지 살인방조죄로 기소된 것이다.

이후 담당 의사들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았다. 그 판결 이후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아무리 환자를 퇴원을 요구해도 허용할 수 없게 돼버렸다.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은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혼란이 이어지다가 2008년 획기적인 판결이 나오게 된다. 식물인간이 된 채 8개월 동안 연명치료를 받아온 김 할머니의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므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존엄사를 인정하면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 1.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의 판단이 있을 때 2. 환자 본인이 거부 이사를 밝혔을 때 3. 환자의 평소 가치관으로 짐작하여 판단할 수 있을 때의 조건을 제시했다. 2016년에는 연명의료결정법(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법)이 통과돼 2018년부터 시행됐다.

19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을 시작으로 2008년 김 할머니를 거쳐 2018년 마침내 안락사가 법으로 그 권리를 보장받게 됐다. 일련의 과정을 밟으며 우리 사회가 일정한 합의를 이뤄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은영은 "생과 사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전문가 집단에서만 논의될 게 아니라" 모두 다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