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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의 악당 정유미, 자본주의는 '윰블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8. 2. 6. 07:26


'덕분에 불면증이 나았다'는 감사(?)의 댓글에서부터 '<리얼>은 피했는데 <염력>은 못 피했다'는 자조의 댓글까지..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평가들이 난무한다.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개봉 전만 해도 기대가 훨씬 컸다. <염력>의 감독이 무려 천만 영화(1156만 6,862명)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였기 때문이다. 또, 주연 배우 류승룡과 심은경의 조합도 제법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 '초능력(염력)'이라는 소재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제작비와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도 '좀비'라는 소재를 한국적으로 소화했던 연상호 감독이었기에 '초능력'이라는 낯선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그라면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염력>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전체적인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앞서 소개했던 댓글이 그 적나라한 예다. 



"적당한 경멸과 적당한 존중을 받으며 생명력 있게 살아남으면 좋겠습니다." (연상호 감독)


그런가 하면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의 의견은 갈리는 편이다. <염력>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춰 영화를 읽은 사람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철거민 이야기'가 2009년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의한 국가 권력, 부조리한 자본주의 앞에 '초능력'이라는 판타지가 아니면 기댈 데가 없는 씁쓸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반면, 영화의 만듦새 그러니까 연출, 캐릭터, CG 등은 보는 이를 속상하게 만드는 수준이라 아쉬움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10년 전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을 떠났던 아빠 석헌(류승룡)이 갑자기 초능력이 생기자 철거민 처지가 된 딸 루미(심은경)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결코 산뜻하지 않다. 무기력한 가장의 부활이 곧 가정의 회복과 등치되는 이 구조는 썩 달갑지도 않다. 한국형 히어로의 구현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진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들이라고요. 에네르기파? 그거 아니에요. 대한민국! 국가 그 자체가 능력인 사람들이라고요."


이처럼 <염력>에 대해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은 '정유미의 재발견'이다. 왜냐하면 정유미가 맡은 홍 상무는 '악역'이기 때문이다. 정유미가 악역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tvN <윤식당>을 통해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며 '윰블리'로 불리는 그가 아닌가. 굳이 <윤식당>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배우로서 정유미가 맡아왔던 배역들을 떠올려봐도 악역은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도가니>(2011)에선 사회 정의를 외치던 인권 변호사 서유진이었고, <히말라야>(2015)에서는 조난 당한 박무택(정우)의 여자친구 수영으로 분해 눈물 연기로 관객들을 울렸다. <부산행>(2016)에서는 만삭의 임신부 성경 역을 맡아 당차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 tvN <로맨스가 필요해>(2012), KBS2 <연애의 발견>(2014)에선 '로코퀸'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만큼 사랑스러운 로맨스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유미의 악역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동그란 눈과 선한 얼굴과 악(惡)이라는 말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적지근한 전개 속에서 정유미의 등장은 유일한 활력소였자 흥미 요소였다. 생애 첫 악역을 맡은 정유미는 자신만의 개성을 녹여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악당은 필수 요소다. 홍 상무는 설정만 놓고 보면 흔하디 흔한 악당이다. 자신과 회사의 이익을 위해 그 어떤 악랄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전혀 악당같지 않은 순진무구한 모습의 정유미가 그 역할을 맡자 굉장히 생동감 있는 악당이 됐다. 게다가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심지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정유미의 변신이 놀랍기만 하다.


전혀 언밸런스할 것 같았던 정유미와 악역의 만남이 영화에서 매우 역동적인 힘을 발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정유미의 선한 얼굴에서 악을 읽어낸 연상호 감독의 안목과 정유미의 연기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왜 정유미였던 걸까. 정유미는 기존의 자신의 이미지, 다시 말해 '윰블리'를 굳이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예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더욱 강조한다. 



그건 마치 '자본주의'의 특성과 판박이로 닮아 있다. 흔히 '자본주의'를 '괴물'과 등치시키곤 하지만, 실제로 자본주의는 그 잔혹한 특성과 달리 굉장히 해맑은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던가. 그 표면은 매우 아름답고 달콤하다. 연상호 감독은 정유미야말로 자본주의의 민낯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배우로 낙점했고, 정유미는 해맑은 얼굴로 자본주의의 잔인하고 가혹함을 더욱 극명히 드러내 주었다. 


분명 <염력>은 평가의 여지가 많은 영화가 분명하다. 그러나 읽을거리가 풍성한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악역으로 변신한 정유미의 번뜩이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염력>은 또렷하게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윰블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고. 이렇게 되니 <윤식당>의 정유미를 마주하기가 살짝 겁이 난다. 그 사랑스럽고 구김살 없는 얼굴에서 어느 순간 홍 상무가 스쳐지나갈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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