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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던 신년 간담회와 이용당한 언론, 김사부의 일갈과 손석희의 존재감

너의길을가라 2017. 1. 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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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면 그걸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고?"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을 배운다' 어린 나를 성장시켰(다고 믿)던 한마디. 어떤 대상이든 간에, 배울 점이 있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설령 '배울 것 없음'으로부터도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모든 것에 '드라마'가 포함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실제로 '현실'을 반영하게 마련인 드라마는 '배우기에' 매우 훌륭한 '텍스트'다. 물론 대놓고 '가르치는' 드라마는 달갑지 않다. '계몽'을 부르짖는 드라마는 반(反)시대적일 뿐 아니라, 그 노골적인 목소리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좀 다르다. 마치 '우화(寓話)'처럼 보이는 구성과 설정이 도드라지고, 오그라드는 내레이션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그다지 부대끼지 않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김사부와 그 주변 인물들이 강퍅(剛愎)하고 강고(强固)한 현실과 벌이는 '싸움'을 응원하고, 그들이 주는 메시지에 공감한다. 지난 2일 방송에선 각자도생을 꾸짖고, '팀'이라는 가치를 말하는 김사부의  메시지가 또 한번 시청자들을 감복시켰다. 


그 부분도 인상 깊었지만, 좀더 눈길이 갔던 포인트는 '예고편'에서 김사부의 대사였다. 자신의 뒤를 캐려 하는 기자가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자, 김사부는 그에게 "진실을 알면 그걸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고?"라고 되묻는다. 누구나 '진실'을 요구한다. 상대방에게 '진실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그리고 그걸 세상에 전할 용기가 있는 걸까? 김사부의 일갈(一喝)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지난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은 '갑자기'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겠다고 통보했다. 탄핵소추로 인해 '직무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개최가 '헌법 위반'이라는 법적인 해석은 차치하고 이야기를 진행해보도록 하자.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들에 대해 구구절절 해명을 늘어놓았고, 자신의 탄핵 사유에 대해 반박했다. 뇌물 혐의와 관련해서는 "(특검이 날)완전히 엮었다"고 발언하는 등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모든 증거들은 그의 혐의를 더욱 확실케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박 대통령은 '기자 간담회'가 아니라 '특검'에 나갔어야 했다. 문제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박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쇼에 '이용' 당하는 언론의 '바보스러움'이었다. 언론들은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장들을 고스란히 싣는 한심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여기 이용당하는 분들은 또 뭐냐. 범죄에 이용되는 데도 뉴스 가치가 있으니 써준다는 것에 대해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비판했다. 그나마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박 보도를 했던 JTBC만이 체면치레를 했다.




지난 2일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어제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는 여러가지로 논란거리인데, 기습적으로 열면서 일방적으로 전달한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며 포문을 열더니,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던 윤설현 기자를 데스크에 불러놓고 질문 공세를 쏟아붇기 시작했다.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행간을 들여다보면 분명 '혼내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입을 맞춘 뻔한 질문과 대답이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 정말 '궁금한 것'을 묻고야 마는 손석희 앵커의 '태도'는 바로 앞에 앉은 기자를 당황시키고야 말았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 "어제 간담회는 전혀 예고된 게 아니었다면서요?"

▲ "어제는 청와대 기자단의 간사가 이런 식으로 하겠다, 그러니까 노트북도 안 가지고 가고, 녹음도 안 하는 걸로, 그렇게 하는 걸로 통보하는 상황이었다면서요?"

▲ "그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는 없었습니까?"

▲ "근데, 녹음도 하지 말자는 걸 그냥 수용했다는 건 이해가 안 가는데요?"

▲ (기자의 대답이 본질을 피해가자) "근데 녹음도 하지 말자는 건 왜 다 받아들였습니까?"

▲ "질문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죠? 그렇지 않았다면 '연설문 유출', '최 씨의 이권 개입' 이런 질문들은 왜 안 나왔을까요?


불과 15분 전에 기자 간담회를 열겠다고 한 것부터 이상하지만, 노트북도 안 되고 녹음도 안 된다며 '제한'을 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선 전원책 변호사조차도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카메라,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얼굴 주사 바늘 등 때문에 카메라에 과민해 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소통에서 제한을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백악관 회의나 간담회에서 이런 제한을 한 경우는 없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그런데 더 놀라야 할 대목은 이러한 '제한'들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공개한 기자 간담회 전문을 살펴봐도, 기자들의 질문에 진실을 끄집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 엄청나게 '길게' 이어지는 박 대통령의 답변을, 저 비문(非文)과 저 엉터리 답변을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용당한'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자리에 이상호 기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주진우 기자였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의 논조와 행동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진실'을 추구하는 그들의 '용기'와 '집념'을 존중하기에 드는 생각이다.



"사전에 15분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 사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간담회가 있으면, 그게 불과 15분 전에 통보가 되면, 여러가지로 바쁜 상황이 되고, 여러가지 질문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겠죠. 곧바로 급작스럽게 게다가 기록을 위한 어떠한 장치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기자들로서는 상당히 불리했던 것은 이해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마지막에 주어진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기 때문에(다시 말해서 박 대통령의 전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한계'가 있었다는 '쉴드'를 치면서도 젊은 기자에게 하나의 '힌트'를 더 건넨다. "또 간담회를 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간담회가 이뤄진다면 기자들로서는 참석하기 좀 어려운 게 아닌가 합니다." 저런 막무가내식 기자 간담회는 '거부'할 수 있는 깡다구가 필요하고, 만약 참석하기로 했다면 기자로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 '진실'에 근접하고자 했어야만 했다. 


지상파 언론들의 '몰락'의 빈틈을 비집고, JTBC가 괄목할 만한 성장과 활약을 보여주곤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JTBC는 '손석희'라는 '한 사람'이 끌고 나가고 있다. 만약 그가 사라지면 JTBC는 '진보 마케팅'을 끝내고 본색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물론 장사가 잘 된다면 지금의 상품을 계속 팔겠지만, 역시 '손석희'라는 선장을 잃었을 때 JTBC가 지금의 주목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루빨리 좋은 언론인들을 키워내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 


손석희가 언제까지 '필드'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믿기지 않겠지만, 그의 나이가 벌써 62세(56년생)다. '원로'의 이름으로 불려도 무방할 나이가 아닌가. 김사부의 일갈과 손석희 앵커의 존재로부터 '카타르시스'와 '희망'을 발견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생각이 마음 속에 먹구름처럼 껴있다. "진실을 알면 그걸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고?", "그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는 없었습니까?" 두 가지 질문이 오버랩되며 번민을 깊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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