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박람기

이것이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이다!

너의길을가라 2022. 1. 28. 15:22

일리야 레핀,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885년, 1995 x 254cm, 캔버스에 유채,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미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좀 낯설죠. 주류 미술사를 따라가기도 급급한 마당에 '변방'이었던 러시아까지 섭렵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바실리 칸딘스키, 현대 순수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그 이름을 떠올린다면 선방한 셈입니다.

위의 그림은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입니다. 아들을 지팡이로 내려쳐 죽인 폭군 이반 뇌제의 광기 어린 얼굴이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죠. 섬뜩하지 않나요? 저의 경우 '러시아 미술'하면 떠오르는 작품과 느낌은 딱 이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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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전>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재빨리 예매해 두었습니다. ('얼리버드'로 50% 할인된 가격에 표를 구했죠. 지금은 20% 할인 중입니다.) 러시아 미술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프세볼로트 울리아토프, '붉은 말들', 1917년

상징주의 작품들은 소재 속에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붉은 말들은 영웅과 천사를 실어나르는 존재로 '대변혁'을 의미합니다. 아방가르드 미술이 등장하기 직전, 혁명의 시대의 문을 여는 첫 작품으로 안성맞춤이죠?

바실리 올레이닉, '양치는 여인들', 1917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티 등 1912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선언문 중-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그 명칭부터 낯설게 다가오는데요.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에서 일어났던 전위적 예술 운동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전>에서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 49인의 작품 75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혁명,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러시아 예술가들은 유럽으로부터 상징주의, 후기인상주의, 표현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고유의 시선을 접목시켰죠. 1910년 콘찰롭스키 등 젊은 화가들이 '다이아몬드 잭'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며 기성 미술계에 도전했죠.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본격적 시작이었습니다.

미하일 라리오노프, '밤', 1907-1908
마하일 라리오노프, '시골 거리', 1910
미하일 라리오노프, '유대인 비너스', 1912

마치 에드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죠? 미하일 라리오노프의 비너스는 마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도발적이고 파격적입니다. 풍만하고 투박하게 그려진 비너스의 모습에서 미의식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과감함이 엿보입니다.

표트르 콘찰롭스키, '화가 바실리 로즈데스트벤스키의 초상', 1912

전성기를 맞이한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었거든요. '일반 상대성 이론' 등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부상했죠.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입체미래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나데즈다 우달초바, '부엌', 1915
아리스타르흐 렌툴로프, '우유 파는 여인', 1918

 

블라디미르 베흐테예프, '투우', 1919

미래주의는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난 기계적 물질 문명에 감명을 받고, 그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도시의 약동감과 속도감을 통해 미래의 미(美)를 표현하고자 했던 미술 사조입니다.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주의는 대상을 분절하고 재배열하면서 서구미술의 전면적 혁신을 가져온 미술 운동을 뜻하죠.

말레비치를 중심으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두 가지 사조를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의 작품에서 입체주의의 분석적 형태에 더해 미래주의의 역동성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또, 강렬한 색의 대비를 통해 생동감까지 더했죠.

바실리 칸딘스키, '즉흥 No.4', 1919
바실리 칸딘스키, '즉흥', 1913
바실리 칸딘스키, '즉흥 No.217 회색타원', 1917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1915

사물을 묘사하는 부담에서 예술가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섹션4'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의 추상 회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즉흥', '인상', 구성' 세 단계를 거치는데, 기본적으로 감성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표현주의적 추상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선언(1915년)하면서 기하학적 요소를 사용해 순수 추상에 몰두했습니다. 현실 세계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였죠. 그는 인간의 정신적 힘이 자연의 창조력과 동등한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만이었을까요? 어쨌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술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알렉산드르 드레빈, '추소바야의 계곡' 1928

레닌이 집권했던 192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당국의 지지를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죠, 하지만 스탈린이 집권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젠 '퇴폐 미술'로 낙인찍히게 된 거죠.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1930년대 종식을 구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냉전에 이해 세워진 철의 장막 속에 60년 이상 외면받았죠.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돼 현재는 20세기 현대미술과 건축, 디자인 분야 등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술 경향으로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러시아 미술을 접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전>은 그만큼 반갑고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리라고 주창할 만큼 도전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만족스러웠고요. 무엇보다 강렬한 원색의 대비에 시선이 압도됐습니다.

전시가 4월 17일 진행된다고 하니 러시아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방문하시길 추천합니다. 참고로 오디오 가이드는 배우 이재훈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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