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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분노, <알쓸신잡>의 새로운 포인트가 되다

너의길을가라 2017. 7. 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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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시즌2에 대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1회 5.395%로 시작한 시청률은 매회마다 꾸준히 올라 어느덧 6.704%까지 올라섰다. tvN <알쓸신잡> 이야기다.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이 4명의 잡학박사가 꺼내 놓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식들은 이상하게 귀에 쏙쏙 꽂히고, 그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수다는 매순간 유익하다. 나영석 PD는 '신묘한 힘'을 tvN <신서유기>에 가져다 썼지만, 듣도 보도 못했던 컨셉의 <알쓸신잡>이야말로 신묘한 프로그램이 아니던가. 



여행과 음식, 거기에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수다가 어우려지는 <알쓸신잡>은 나영석 표 예능의 정석을 드러내는 동시에 확장성을 보여준다. 그만큼 다양한 '즐길거리'가 담겨 있는 셈이다. "문학 작품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김영하의 말처럼,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관점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문학을 대하는 만큼의 다양성은 없다 할지라도 <알쓸신잡>을 시청하는 '포인트'도 시청자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지의 정보를 캐치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여행지의 특색 있는 음식에 주목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수다 그 자체에 몰입할 것이다. 좀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드라마 속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는 것처럼) <알쓸신잡> 멤버들의 캐릭터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가령, 황교익의 음식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에 감탄한다든지, 김영하의 문학과 작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에 빠져든다든지,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들을 소개하며 불쑥(?) 등장하는 정재승을 기다린다든지..



한편, <알쓸신잡>을 시청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생겼다. 바로 '유시민의 분노'다. 지난 3회를 떠올려보자. 그는 강릉의 오죽헌을 방문했을 때 노여움을 표출했다. 신사임당이 아닌 율곡 이이로만 채워진, 왜곡된 공간의 풍경이 주는 씁쓸함이 불쾌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신사임당을 한 명의 인간으로 조명하지 못하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기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흔히 '시대가 바꼈다'고 말하지면, 무의식 속에 내재돼 있는 뿌리깊은 가부장제의 잔재들은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난 6회 방송에서 유시민은 또 한번 분노했다. 그 이유는 충청남도 공주의 낙화암(落花巖) 때문이었다. 물론 백마강변에 위치한 그 바위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 잘못은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로부터 '정절'을 끄집어 내는 가부장제의 비릿하고 음흉함에 있고, 이를 바로잡을 의지조차 없는 현대의 우리에게 있었다. 유람선에 올라탄 유시민은 낙화암을 소개하는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내 '아휴'라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었던 것일까? 



"지금 여러분이 이용하고 있는 이 강은 백마강으로 낙화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당나라로 하여금 멸망할 때 적군의 노리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여 이렇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민족사의 여인들은 백의민족이며, 정절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여인들로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공식적인 안내 방송으로 썼던 것일까. 우선적으로 짚어볼 것은 낙화암에 얽힌 전설로 소개되고 있는 '의자왕과 삼천 궁녀' 이야기는 애초에 사실 관계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유시민이 설명했던 것처럼, 정사(正史)로 분류되는 『삼국사기』에는 애초에 그와 관련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고, 야사(野史)인 『삼국유사』에는 '부여 북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궁인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정도로만 기록돼 있다. 


'삼천궁녀' 이야기와 관련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 초의 시집 『속동문선』 제5권인데, 거기에 '삼천궁녀 모래에 몸을 맡겨'라는 대목이 있다. 결국 '삼천 궁녀'와 관련된 내용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와 그 계통을 이어받은 지배 계급)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이었던 백제와 그 마지막 왕인 의자왕을 부정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작업의 일환이라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다만, 15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만을 진리라 여기는 협소한 역사관이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가짜 뉴스'도 문제였지만, '해석'은 더욱 가관이었다. '삼천궁녀'를 설명하면서 철 지난 '백의민족'을 언급하고, '정절'이라는 전근대적 여성관을 강조하며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이라 자랑스럽게 말하는 대목은 입을 쩍 벌리고 기함을 토하게 만들었다. 백번 양보해서 이것이 가부장적 사고가 만연했던 과거에 만들어져 유통된 것이라 하더라도 2017년에도 버젓이 안내 방송으로 쓰이고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죽헌의 신사임당과 낙화암의 안내 방송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낡은 여성관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아직 그 정도밖에 나아가지 못한 우리 사회의 허름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양성 평등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관념 속으로 들어온 지 꽤나 많은 세월이 지났고, 가부장제의 폐해와 폐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전근대시대가 물려준 유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 않은가. 


이쯤되면 정말 세상이 바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알쓸신잡> 속 유시민의 분노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청자들이 '잘못된 것'에 대해 인지하고, 고민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보다 훌륭한 교과서가 어디 있겠는가.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오죽헌 입구의 안내판의 내용은 수정됐을까. 낙화암으로 향하는 유람선의 안내 방송은 시대착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유시민의 분노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어 현실 속의 문제들을 바꿔나가는 계기이자 동력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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