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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허재와 진지한 안정환, '뭉쳐야 찬다'의 도전을 응원한다

너의길을가라 2019. 8. 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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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왕년에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던 스포츠 전설들과 조기축구팀을 결성하다니 그 발상 자체가 놀랍다. 그야말로 기획의 승리라 할 만하다. 먹방, 여행, (연예인의) 가족 등 뻔한 소재들이 판치고 있는 예능판에서 '스포츠(축구)'라고 하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왔다는 것부터 칭찬해 마땅하다. 그런데 웬걸? 재미있기까지 하다.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산다>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기획의 승리를 뒷받침한 건 캐스팅이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핵심은 섭외였다. 온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누가 봐도 (과거의) 레전드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예외적으로 진종오와 김동현은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리고 축구 실력이 준수하면 곤란했다. 성장 스토리를 그려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섭외야말로 제작진 입장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었을 것이다. 



"기획은 사실 영화 <어벤저스>에서 시작했어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레전드를 모았을 때 어떻게 될지 궁금했거든요. (...) 어느덧 중년이 된 영웅들의 재도전, 그걸 그려보고 싶었어요." (성치경 CP) 포포투, ② 뭉쳐야 찬다: 연예인을 '절대' 섭외 안 하는 이유


그 결과로 '천하장사' 이만기, '농구 대통령' 허재, '양신' 양준혁,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도마의 신' 여홍철, '작은 거인' 심권호', '사격 황제' 진종오,' 'UFC 파이터' 김동현까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스포츠계의 전설들이 모였다. 누구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선수 구성이 이뤄졌다. 여기에 '테니스 영웅' 이형택이 뒤늦게 합류했고, '배구계의 강동원' 김요한이 가세하면서 '어쩌다FC'의 선수진이 두터워졌다.


사실 첫 회때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전설들인 만큼 축구도 웬만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다른 종목이라고 해도 운동에 대한 감각적인 부분은 일맥상통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이름만 들어도 든든했던 전설들의 축구 실력은 정말이지 형편 없었다. 발에 공을 제대로 맞히지도 못했고, 체력은 바닥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배 나온 중년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지점이 재미있었다. 제작진의 노림수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 셈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까지 올라갔던 이들이, 당장 자신의 영역으로 옮겨가면 누구보다 전문가다운 면모를 발휘할 이들이 축구공 하나를 어쩌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예상밖의 허술함에 인간미가 느껴졌다고 할까? 그렇다고 우스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응원하고 싶어졌다. 성장 스토리가 쓰일 여백이 반가웠다. 


- 첫회 시청률 2.703%(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뭉쳐야 찬다>는 어느새 4% 고지(8회, 4.139%)를 넘어섰다. -


"그거슨 아니지."


특히 '농구 대통령' 허재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물론 그 활약이 축구가 아니라 예능에 국한돼 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뭉쳐야 찬다>의 초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축구의 룰과 상식이 전무한 허재의 허당기 가득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축구의 포메이션을 농구와 혼동해 대답하는가 하면, 골키퍼로 출전한 경기에서 같은 편 선수의 백패스를 손으로 덥석 잡아 폭소를 자아냈다. 


거침없는 언행과 예상치를 뛰어넘는 애드리브는 날것 그대로였다. '예능 늦둥이' 허재의 활약은 새로운 캐릭터에 목말라 있던 예능게에 단비와도 같았다. 선수 및 감독 시절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기억하고 있던 대중들도 예능에서 허재가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 이를테면 엉뚱함, 앙탈, 위트, 소심한 호통 등에 매료됐다. <뭉쳐야 찬다>가 지금의 화제성을 누리게 된 첫 단추는 허재가 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5년 걸쳐서 (지도자) 자격증 땄는데 이거 하려고 땄나?"


마지막으로 <뭉쳐야 찬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성립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전제조건은 역시 안정환의 존재였다. <뭉쳐야 뜬다>의 기존 MC였던 안정환을 활용하기 가장 좋은 아이템은 아무래도 축구가 아니겠는가. 제작진은 안정환에게 감독의 역할을 맡겼다. 원래 축구선수였던 그가 다시 축구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었을 테지만(그랬다면 안정환이 수락했을 것 같지도 않다), 감독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리되면 안정환의 입장에서도 '도전'이 됐다.


비록 연전 연패를 거듭하고 있지만, 기상청FC과의 경기(1:8)에서 선전한 '어쩌다FC'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획득했다. 날이 거듭될수록 실력이 확실히 향상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은퇴를 하면서 승부욕을 내려놓은 전설들이지만, 막상 경기에 돌입하면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안정환 감독의 눈빛도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이러니 어찌 <뭉쳐야 찬다>와 '어쩌다FC'를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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