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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 판타지와 나쁜 남자 재생산,<나의 아저씨>가 거북했던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8. 3. 2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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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잡무를 하고, 퇴근 후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남은 음식은 비닐봉투에 싸서 집으로 가져 왔다. 회사에서 몰래 슬쩍한 믹스 커피를 타서 뒤늦은 저녁을 먹었다.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사채까지 빌려썼다.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병원비를 내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병원의 감시가 소홀한 틈에 할머니를 침대째 옮겨 왔다. 버거운 삶은 그를 고립시켰고, 그래서 지안(아이유/이지은)에게선 한기(寒氣)가 가득하다. 처절한 삶이다. 


큰형 상훈(박호산)은 오래 몸 담았던 회사에서 잘렸다. 장사를 시작했지만, 여러 번 말아 먹었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동생 기훈(송새벽)은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데뷔는커녕 별볼일 없는 처지다. 불쌍한 삼형제의 둘째인 동훈(이선균)은 번듯한 회사의 부장자리까지 올라가 가족의 자랑이 됐다. 그래서 형제들의 뒤치다꺼리는 그의 몫이다. 늘 욕망보다 양심을 선택했던 그였지만, 뇌물의 유혹 앞에 무너져 내렸다. 씁쓸한 삶이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지안과 동훈은 악연으로 엮였다. 배달사고로 동훈에게 뇌물이 잘못 전달됐고, 동훈이 챙겨둔 상품권을 지안이 훔쳐간 것이다. 결국 상훈은 감사에 걸려 끌려가게 되고, 지안은 그런 상훈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과연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처절한 삶을 견뎌가는 지안과 씁쓸한 삶을 버텨가는 상훈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그것은 치유일까. 



tvN <나의 아저씨>는 방영하기 전부터 뜨거웠던 드라마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의 이름값도 그 온도를 끌어올렸지만, 역시 두 배우의 '나이 차이'가 8할 이상의 몫을 했다. 무려 18살 차이였다. 드라마 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로맨스라니!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아무리 봐도 좀 과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나이 차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 : 나이에 비해 젊게 살고 싶어 하는 40대를 뜻하는 신조어)가 '아재', '개저씨'라는 놀림 가득한 별명을 몰아내고 40대 남성들을 구원했다. 경제력을 갖추고, 안정적인 삶을 구축한 40대 남성들에게 '영포티'라는 산뜻한 이름은 자신감을 부여했다. 젊게 사는 그들은 어린 여성과의 로맨스를 꿈꿨고, 자신들의 욕망과 판타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의 아저씨>는 그러한 끈적한 기반 위에서 출발한 드라마였다.


그런가 하면 오달수 후폭풍도 있었다. 오달수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후 성폭력 사실을 부인하며 버티다가 뒤늦게 사실을 인정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오달수가 맡았던 상훈 역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박호산이 투입되면서 한숨을 돌렸다. 이처럼 <나의 아저씨>는 출발 전부터 상당히 시끄러웠다. 


지난 22일 방송된 1회(시청률 3.923%, 닐슨코리아 기준)에선 전반적으로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됐는데, 캐릭터들이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드라마가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간간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삼 형제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지안이 선글라스를 쓰고 출근하는 장면 등)이 섞여 있었지만, 우울하고 다크한 공기에 질식감이 들었다. 다만, <미생>,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답게 연출만큼은 합격점을 줄 만 했다.



"40대를 넘어선 남자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마치 한물간 사람, 트렌드에 뒤처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분위기가 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아저씨>의 박호식 CP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를 위한 드라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드라마 소개는 또 어떠한가.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고 한다. 좋다. 40대 남성의 기살리기도 좋고, 그들을 치유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왜 그걸 '20대 여성'에게서 얻어야 하는 걸까. 


드라마 소개에서는 (비겁하게) '여성'이라 얼버무리고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 '여성'은 40대도 아니고, 30대도 아니고, 20대이다. 게다가 지안 역을 맡은 아이유/이지은은 왜 그리도 작디작은 것일까. 왜 아저씨들의 삶을 치유하는 존재가 20대 여성이어야 하는 걸까. 어째서 아저씨들은 20대 여성을 통해 자신의 삶을 치유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아저씨>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자.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은 채무 관계에 있는 지안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의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고, 그가 없는 집안에 침입하기도 한다. 광일이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끔찍하게도 지안을 괴롭히는 것이다. 급기야 지안을 향해 주먹질을 가하기도 한다. 복부, 얼굴 가리지 않고 때린다. <나의 아저씨>는 이 장면을 불필요하게 자세히 묘사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이라니,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좋아하니까 때릴 수 있다', '좋아하면 때려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들을 은연중에 주입시킬 위험이 있다. 이미 tvN <또 오해영>에서 '데이트 폭력'에 해당하는 상황을 애정신으로 그려내 비판을 받았던 박해영 작가는 이번에도 논란의 캐릭터와 장면들을 드라마에 집어 넣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이해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렇듯 <나의 아저씨>는 '영포티'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나쁜 남자' 캐릭터를 재생산하는 데에도 일조할 듯 보인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쁜 남자는 그냥 나쁜 남자일 뿐이다. 거기에서 예술을 찾고, 인간을 탐구한다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만약 <나의 아저씨>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졌다면, 그건 당신이 이미 예술을 알고, 인간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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