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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이 형의 승부수, '뿅뿅 지구오락실' 빵빵 터졌다

너의길을가라 2022. 7. 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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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요즘 애들이 TV 예능을 보지 않는 이유'라는 짤을 봤다. 사진에는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머리 위에 그들의 나이가 새겨져 있었다. 그 중에는 30대 후반도 끼어 있었지만, 주로 4, 50대가 주를 이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예능 프로그램의 구성원들을 떠올려보라. 우리네 정치판보다야 훨씬 낫지만, '세대 차이'가 확연히 느껴질 것이다.

예능의 경우 출연자들의 폭이 굉장히 좁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신인 발굴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왕년에 잘 나갔던 예능인들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겹치기 출연도 많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예능판의 보수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시간은 흘렀고, 그들은 나이를 먹어 갔다. 예능도 덩달아 함께 늙어갔다.

이때 제작진의 역할이 중요하면서도 간단하다. 오히려 그들의 '올드함'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세대 차이', '레트로', '아날로그' 등 여러가지 테마로 포장하며 재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때 '놀림'은 필수이다. 나이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나이를 희석시키는 영리한 방법이다. 혹은 기존의 출연진에 '영(Young)한' 뉴 페이스를 한 두명씩 추가해 평균을 낮추는 '톤 다운'을 시도한다.

이런 방법들은 MBC <놀면 뭐하니?>, SBS <런닝맨>, JTBC <아는 형님> 등 대부분의 예능이 취했던 방편이면서 나영석 PD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tvN <신서유기>가 대표적이다. 송민호, 피오가 새로운 시청층 유입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노쇠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매너리즘도 뒤따랐다. 예측 가능한 예능은 시청자를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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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작업하다 보니 매너리즘까진 아니지만 오래 작업했던 편한 분들하고 하는 저를 발견한 거다. 서진이형, 호동이형 편하고 친하고 호흡도 잘 맞지만, 어느 순간 제가 새로운 출연자와 일한 지 꽤 오래 됐구나 싶었다. 새로운 작업을, 그동안 하던 작업과 먼 결의 작업을 하봐야겠다 생각했다." (나영석)



tvN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의 등장은 매우 흥미롭다. 기존 예능 문법을 뒤집는 나영석의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 도전의 이름은 '세대 차이 극복'쯤 될까. 나영석은 방송 인지도라는 캐스팅 틀에서 벗어나 소위 MZ세대에게 소구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깃으로 삼았다. 코미디언 이은지, 오마이걸 미미, 래퍼 이영지, 아이브 유진. 이 선택은 모험적이면서 절묘하고 신박하다.

유튜브 등에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이은지는 정작 예능 무대에서는 리액션에 치중하느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지락실>에서는 거침없는 에너지를 뽐내고 있다. 언제나 막내였던 그가 큰언니라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오마이걸 미미는 '레트로 음악 퀴즈'를 통해 웃음을 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금껏 없던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이다.  


입담이 좋고 예능 센스도 뛰어난 영지는 TV 예능이 받아내지 못하는 통제불가능한 에너지 레벨과 괄괄함 때문에 그 진면목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판이 깔리자 제대로 폭발한 케이스이다. 아이브 유진은 <지락실>이 발견한 가장 의외의 인물이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했지만, 적응을 끝낸 그는 평소 보여주지 못했던 매력을 어필하며 대형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을 확보했다.

<지락실>이 돋보이는 건 기존의 예능 문법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점이다. 물론 <지락실>이 <신서유기>의 기본틀을 그대로 가져온 건 사실이다. 여행을 가서 음식을 놓고 게임을 한다는 기본 설정은 <신서유기>와 판박이다. 기상 미션도 공개될 예정이다. '여섯 요괴의 용볼 쟁탈전'이라는 세계관이 '달나라 토끼를 잡기 위해 뭉친 4명의 용사들'로 바뀌었지만, 어차피 그런 건 부차적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지락실>이 완전히 새로운 예능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문법 파괴'이다. 기존 예능 스타일이라는 게 뻔하다. 프로그램의 틀을 잡아 나가는 메인 MC가 있고, 그를 보조하는 입담꾼들이 좌우로 포진한다. 여기에 샌드백, 리액션 담당이 따라붙는다. 약간의 변주가 이뤄지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관계망에서 대부분의 웃음이 만들어진다.


반면, <지락실>의 멤버 네 명은 이른바 '예능 선수'도 아니고 사적으로 아무런 접점이 없다. 그야말로 '능력치'를 토대로 뽑은 실력파라고 할까. 게다가 주어진 롤이 없다. 완전한 '프리롤' 속에서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게임과 미션을 수행하면서 캐릭터를 잡아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친밀감을 형성해 더욱 다채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 과정에 매우 신선하게 그려진다.

멤버들을 캐스팅한 나영석조차 그들의 '진화'를 가늠하지 못한다. 제작진은 멤버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기습적으로 '낙오 미션'을 제시했다. 1시간 내로 태국어로 적힌 식당을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멤버들이 당황할 거라 예상했지만, 안유진은 스마트폰 사용 능력을 뽐내며 최단 경로를 찾아내 제작진을 멘붕에 빠뜨렸다. 제작진도 '진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을까.


Z세대 예능 신예, <지락실>의 멤버들은 이처럼 '새로운 태도'로 나영석을 압박한다. 이동 시간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게임이 부족하다며 제작진을 다그치고 압박한다. '레트로 음악 퀴즈'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춤을 추고, '엔딩 요정'을 자처하며 촬영 현장을 만끽한다. 나영석을 향해 몇 년 차냐고 묻고, '영석이형'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런 새로운 관계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뛰는 놈'이었던 제작진은 새로운 시대의 '나는 놈'들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이 역전 관계는 '세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당연하고, 오히려 더 장려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나영석으로서는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얻은 셈이다. <지락실>은 나영석 예능 역사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나영석 PD, 아니 '영석이 형'이 제대로 한방 얻어맞았다. 아니, 제대로 한방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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