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톺아보기

열불 터지게 만드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고마운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8. 12. 2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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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목요일 저녁을 기점으로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듯하다. 그리고 알싸한 여운이 금요일 오후 늦게까지 지속돼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범인은 다름 아니라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이다. 방송을 보고 한 차례 열받고, 방송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기사를 보면서 중탕을 하게 된다. 다음 날이 되면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 정제된 기사들을 읽으며 잊혔던 화딱지가 다시 돋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임신한 며느리 이현승의 몸보신을 위해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공수해 와 손수 추어탕을 끓여주는 시아버지, 며느리 시즈카의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갈비와 송편 등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시어머니. 며느리를 향한 애정이 크고 깊다. 정말이지 살갑고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시즈카의 시누이(고유경)처럼 "복 받았네, 복 받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수두룩할 것이다. 당연히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현승의 시아버지나 시즈카의 시어머니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내 며느리의 생각'이다. 당장 내 며느리가 추어탕을 좋아하는지부터 따져봤어야 했다. 정말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면,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해야 하지 않았을까? 또, 시즈카의 시어머니 역시 내 며느리가 생일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어할지부터 고민해 봤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고 애정을 쏟는다고 저리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며느리는 그 상황이 불편하기만 하다. 이현승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비상 출근을 하고,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까지 다녀오느라 몸이 녹초가 됐다. 그럼에도 시부모의 일방적인 방문에 애써 웃음을 지어야 했다. 며느리를 위해 음식까지 해서 주겠다고 하는데, 며느리 입장에서 어찌 불편한 기색을 할 수 있겠는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시즈카는 "생일이니까 밖에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거 같아서."라며 남편 고창환에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저녁에 네 식구만 외식을 하자는 남편의 말에 그제서야 시즈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러나 일찍 돌아갈 생각이 없이 눌러앉은 눈치 없는 시댁 식구들 탓에 끝내 외식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한다고 했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역시 답은 정해져 있다.


이현승이 원했던 건 추어탕이 아니었다. 편안한 휴식이었다. 시부모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배려는 역시 며느리가 마음껏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아니었을까? 시즈카는 남편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원했다. 매해마다 남편이  외국에 난타 공연을 나갔던 터라 7년 만에 함께 생일을 보내게 됐으니 그런 마음이 더욱 간절했으리라. 그런 시즈카에게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은 아이들을 봐주는 것 아니었을까? 



"무조건 좋은 마음, 좋은 의도라고 해서 그게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니거든요."


그것이 어떤 사이든 간에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유독 며느리에게만 그런 기본이 허락되지 않는 듯 보인다. 가족의 문화(가풍)라는 당위로 압박하고, 어른들의 애정이라는 이유로 강요하고 주입한다. 며느리 입장에서 그걸 거절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정태는 "저희 부모님도 많은 음식을 권했는데, 이상하게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권해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며느리 분들이 알려 주실래요?"라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이현승은 "저는 남편이 확실하게 말해주면 좋겠어요. '이런 건 현승이가 싫어해. 해오지 마' 하고."라고 대답한다. 시즈카의 대답도 비슷하다. "제가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남편이 먼저 단호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결국 남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오정태가 '당사자'들에게 '대저방법'을 물어본 위의 질의응답은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남편들은 그동안 몰랐다.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 관계가 얼마나 비대칭적이었는지, 또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자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르면 물어야 하고, (뒤늦게나마) 알았으면 그대로 하면 된다. 



실제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으나 그건 누명에 가깝다. 결혼을 필수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이 삶의 중요한 과정(혹은 종착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부부가 좀더 현명하게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프로그램이라 해야 마땅하다. (물론 도저히 답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분노'는 필요하다. 오히려 분노해야 한다고 여기는 쪽이다. 화를 내지 않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불편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내 공유함으로써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와 제작진이 많은 욕을 먹고 있지만, 이 시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당장 '남편들'이 바뀌고 있지 않은가.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이 '분노'가 오히려 반가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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