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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대중, 그리고 김구라 (사건의 발단부터 지금까지)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2. 4. 19. 20:45

 

'김구라 사건'이 불거지게 된 발단은 김구라의 김용민 지지 동영상이었다. 이 영상을 통해 사람들은 김용민과 김구라의 관계에 주목했고, 김용민이 과거 2004년 12월 인터넷방송 라디오21 <김구라 · 한이의 플러스>의 코너에 출연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김용민의 발언 내용은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4.11 총선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김구라의 과거 발언까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SNS는 들끓었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문제는 언론의 기사가 정제되지 않고, 매우 자극적으로 편집되어 대중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김구라 퇴출 위기, 위안부여성=창녀(?) 과거 막말 네티즌 분노 (http://bit.ly/I8nTNa)

'막말 논란' 김구라, 위안부를 창녀에 빗대? '네티즌 분노' (http://bit.ly/HVknGU)

"정신대 창녀들" 김구라의 또 다른 과거에 네티즌 분노 (http://bit.ly/IQuhVE)

김구라의 '종군위안부=창녀' 발언, 온라인서 논란 (http://bit.ly/J75UHH)


각종 언론은 김구라를 철저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언론에 의해 선동되기 시작한 대중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만 현혹되어 더욱 심하게 김구라를 밀어붙였다. 여담이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속에 자신들의 속셈을  은근히 내비쳤는데 그 부분을 인용해보자. 


'나는 꼼수다'(나꼼수) 기획자 김어준이 과거 운영한 인터넷 방송에서 진행자 김구라(개그맨)가 종군 위안부를 '창녀'라고 지칭했던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진정한) 타깃이 어느 쪽이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된다.


대중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정확한 팩트를 찾아 원인과 결과를 짜맞춰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생산하는 파편적인 정보에 의존한다. 이번에도 대중은 김구라의 정확한 워딩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언론이 흘리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내용에 이끌렸다. 김구라의 발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이라면 언론의 행태가 지나친 것이라고 판단했겠지만 대중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동안 김구라에 대해 품고 있던 악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욕구불만으로 똘똘 뭉친 네티즌도 합세했다. 그들에겐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욕설을 배설한 기회만 필요할 뿐. '딴따라'를 우습게 하는 대한민국 사회는 그들의 잘못에 더욱 냉혹한 편이다. 물론 김구라의 발언이 경솔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언론이 써내려간 것처럼 창녀를 위안부와 동일시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김구라 퇴출 여론은 급속히 확산됐고, 결국 김구라는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하고,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일방적으로 기울었던 여론은 몇 가지 일들로 인해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첫 번째는 '김구라와 구로다의 설전'이다. XTM의 <도와주십show>라는 프로그램에서 광복적 특집으로 김구라와 구로다의 위안부와 독도 관련 맞대결 영상을 방송했는데, 여기서의 김구라의 발언이 화제가 된 것이다. (http://bit.ly/HUTPYf) 대중은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분명 김구라는 종군위안부를 창녀라고 말한 나쁜놈이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의 발언을 한 영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대체 김구라의 정체는 뭐지? 대중들이 빠진 혼란의 덫은 여전히 깊었다. 





두 번째는 김구라가 지난 2002년 주한미국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이와 미순이를 추모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사진이다.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여론은 완전히 급반전했다. 사진 속의 김구라는 평화운동가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 등 7명과 함께 추모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함께 했다. 김구라를 철저히 매장시켰던 언론은 이제서야 <'알고보면 개념 연예인' … '막말 논란' 김구라, 동정론 확산(http://bit.ly/HVmWc0)>과 같은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자들 본인의 죄책감의 표현인가? 아니면 먹쩍음의 표현인가?





또, 최근에는 '버스무릎녀'가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세련되게 차려 입은 여성 앞에 추레한 잠바를 입은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었다. 처음에 알려진 내용은 한 싸가지 없는 여자가 버스 기사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버스 기사는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었다. SNS와 언론은 이 여자에 대해 엄청난 양의 비난을 쏟아 부었다.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그토록 많은 비난과 욕설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과 몇 시간 전, '버스무릎녀'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이 올라 왔다고 한다. 무릎을 꿇은 남자는 버스 기사도 아니었고, 사건의 내용은 처음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용을 확인한 대중들은 또 다시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사진 한 장은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본래 '순간'의 미학이므로, '맥락' 자체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버스무릎녀' 사건은 '김구라 사건'가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한 문장, 단지 한 장의 사진이 SNS와 언론을 타고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고,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도 쉽게 확신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매국노가 되어 버렸고, 한 사람은 인간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사건은 진상들이 파헤쳐지면서 여론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던 저울추는 조금씩 중심을 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폭력'을 당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언론이 균형과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대중들이라도 무게를 잡아야 한다. 애석하게도 언론은 논란을 부추기고, 대중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속출하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언론과 대중은 피해자를 잊지만, 피해자는 영원히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김구라는 마음이 늘 불편했다고 한다. 연말에 상을 줄 때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말을 쉽게 내뱉게 되고, 흥분한 상태에서 경솔한 발언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가 과거의 자신 때문에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안고 살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일을 통해 그가 무거운 짐을 좀 덜어내길 바란다. 


김구라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언론과 대중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학살을 위한 대상을 찾아 나선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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