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톺아보기

시월드 없어지자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너의길을가라 2019. 1. 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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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보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왜 그럴까? 원래대로라면 시작과 동시에 화딱지가 나야 정상이었다. 이 땅의 수많은 며느리들이 처한 상황이 갑갑하고, 안쓰럽고, 쓰라려야 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놀랍게도, 심지어 편안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답이 떠올랐다. '시월드'가 없었다. 우선, 윤현상-이현승 부부의 경우에는 시부모를 비롯해 시댁 식구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며느리를 위한답시고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와선, 굳이 며느리가 좋아하지도 않는 추어탕을 끓여 먹이던 시부모, 말끝마다 자연분만과 독박육아를 강조하던 시부모가 없으니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이번 회에선 현승의 직장 친구들이 찾아와 결혼과 출산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또, 각자 자신이 겪고 있는 시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 현승은 "보면서 깜짝 놀랐"다면서 "저렇게 웃는 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부모 앞이라 억지로 지어야 했던 '미스코리아 미소'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우러 나온 웃음을 보는 건 처음이지 싶었다.



고창환-시즈카 부부도 시부모와 만나지 않았다. 문제의 시누이가 또 다시 등장하긴 했지만,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않았다. 여전히 월권에 가까운 행동들을 저지르곤 하지만, 초반에 보여줬던 충격적인 모습들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지도, 소리를 질러대지도 않았다. 그 변화의 중심에 달라진 남편 고창환이 있었다. 고창환이 아내의 입장을 배려하기 시작하자 시누이도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조건은 시부모의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시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시누이는 달라져 있었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시즈카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한다. 물론 시즈카의 입장에서 그 상황이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지만, 시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시누이가 굳이 '시누이 노릇'을 하지 않으려는 건 분명해 보인다. 




3주 간의 불가피한 합가 중인 오정태-백아영 부부의 경우는 어땠을까. 처음엔 첨예한 갈등이 벌어질 거라 봤지만, 예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내를 '손님'으로 대해달라고 선언했던 오정태의 역할이 컸다. 마음 속으로 합가를 소망했던 시어머니는 같이 살아보니 오정태가 (자신을) 시집살이 시킨다며 같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거기에 뜻밖의 동지 '시매부'가 등장하며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부엌이 익숙한 시매부는 오정태에게 "넌 왜 와서 가만히 서 있냐, 안 도와주고?"라며 속시원한 사이다를 날려줬고, 백아영에게는 "넒으면 피할 데라도 있지 피할 데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라며 며느리의 고충에 공감해줬다. 든든한 동지가 생기자 백아영도 자신의 고민을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한 뭉치가 사라지는 듯했다. 


정리하자면, 시월드가 없는 며느리의 일상은 한결 편안했다는 것이다. '시월드가 없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시부모가 등장하지 않거나, 시부모가 함께 있더라도 남편이 중심축을 잡아나가는 경우다. 여기에서 말하는 '등장하지 않거나'는 '부재(不在)'를 뜻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시부모와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 필요도 없다. 



'딸 같은 며느리'라는 모순적인 관계를 요구하면서 굳이 며느리에게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있을까? 그 스트레스가 결국 가정의 불화로 연결된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인가. 또, 언제까지 품 안의 자식이길 바라며,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할 것인가. 결혼을 한 자녀가 부부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어른다움이 요구된다. 


"남편이랑 잘 지내고 화목하게 살면, 그게 난 결혼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해."


현승의 집에 놀러 온 임현주 아나운서의 말에서 해답을 찾는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다. 그러나 왜 매번 현실은 달라야 하는 걸까. 결국 '(시)부모'가 결단해야 한다. 결혼을 한 자녀가 정말 행복하길 원한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봐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들 스스로 가정을 꾸리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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