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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 조절 성공한 '안녕하세요', 이국주와 하상욱의 진심이 빛났다

너의길을가라 2019. 6. 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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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는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2010년 11월에 시작한 이래 별다른 부침 없이 꾸준히 시청자들을 만나 왔다. 최근 들어 시청률은 5% 안팎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화제성만큼은 여전히 뜨거운 편이다. 사연의 주인공들이 꺼내 놓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공감이란 게 대부분 '분노'에 국한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고민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안녕하세요>가 지향하는 소통의 효용은 아직까지 유효해 보인다.


그러나 무려 10년이나 방송이 지속되면서 사연의 반복은 불가피했고, 사연의 임계치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그러다보니 <안녕하세요>는 점차 예능의 범주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가령, 명백히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에 해당하는 범죄적 행위들이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다뤄지는 일이 빈번해졌다. 전문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예능인만으로 구성된 MC와 패널들은 쉽사리 조언을 건네며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가렸다. 


가장 큰 문제는 '중립적인 태도'와 '애매모호한 조언'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밀히 구분되는 사연에도 MC들은 기계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대입했다. 양측에 문제가 다 있으므로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행복하게 지내라는 식이었다. 방송, 그것도 예능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그 기괴한 공평함이 상당히 불편했다. MC들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뉘앙스의 조언들도 공감보다는 의아함을 불러일으켰다. 소통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불통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향해 꾸준히 제기됐던 비판들에 귀를 기울인 걸까. 지난 24일 방송된 <안녕하세요>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연들로 꾸려졌다. 그 결과, 경험이 풍부한 MC들(신동엽, 이영자, 김태균)의 중재가 적절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패널들(이국주, 하상욱)의 진심어린 조언들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다. 사연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는 그대로였지만, 그 꼬인 실타래가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첫 번째 사연은 통금시간(12시)에 조금만 늦어도 닦달하는 엄마 때문에 자유가 없어 답답하다는 20대 딸의 고민이었다. 오후 9시에 퇴근하는 고민 주인공은 동료들과 함께 술 한잔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만, 엄마의 과도한 간섭에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조금만 늦거나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딸이 못 미더운 게 아니라 세상이 못 미덥다는 엄마의 항변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좀 과하다는 인상이었다. 


한마디로 과잉 보호였다. 물론 딸에 대한 걱정도 포함돼 있겠으나, 결국 지나친 간섭에서 비롯된 대립이었다. 딸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품안의 자식으로 여기는 태도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갈등이 반복되자 그 결과는 대화의 단절이었다. 무조건 안 된다고 못박는 엄마에게 딸은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게 됐다. 딸은 점차 엄마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때 이국주는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저도 다른 집 딸들처럼 엄마랑 남자 얘기도 하고 싶고, 남자친구랑 어디도 가봤는데.. 이런 얘기 너무 하고 싶은데. 엄마는 얘기를 그냥 차단해 버리는 거예요. 무슨 남자, 일이나 열심히 해. 이렇게 얘기를 끊어버리면 이 친구처럼 얘기를 못 하는 거예요. 쌓였던 게 터지면서 엄마한테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소리질렀던 게 뭐냐면.. 엄마, 부모라고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라고 다 틀린 것도 아니야. 나 이 바닥 와서 열심히 살면서 별의별 일 다 있었는데, 죽고 싶었던 적도 있고 그만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는데, 엄마한테 얘기를 못해. 왜? 엄마가 안 들어 줄 거 같으니까. 얘기를 해도 안 들어주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이 친구는 어디 가서 스트레스를 풀 거에요. 그러니까 다 할 수 있게 다 들어주고, 그러다 보면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국주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는 같은 입장에 서 있는 딸의 마음을 위로했다. 또,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데 일조했다. 단숨에 딸을 성인으로 대하며 그의 삶을 존중하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했을 지라도 딸의 입장과 생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는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국주는 패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한 셈이다. <안녕하세요>의 지향점인 소통과 공감에 더할나위 없이 일치하는 장면이었다. 



이어서 손자 육아에 집안 생계까지 책임지느라 쉬지도 못하는 엄마의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이혼을 하고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아들은 엄마에게 육아를 떠맡기고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카페 운영부터 트럼펫 연주, 방과후 교사, SNS를 통한 시인 활동, 문인협회 일까지 자신만의 꿈을 좇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정작 그는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이 없었다. 월 수입은 100만 원 가량이었는데, 그마저도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엄마는 아들의 뒤치다꺼리에 손자까지 돌보느라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아들은 생활비도 한푼 보태지 않았다. 육아에 드는 비용(70~150만 원)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보다 못한 신동엽은 "좀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어머님 잘못이에요."라며 아들에 단호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했고, "자식한테 온갖 사랑을 베풀기만 했는데, 어머님이 잘못한 거라는 말을 듣게 한 아들은 천하의 불효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꾸짖었다. 그리고 하상욱이 입을 열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말씀드릴게요. 저희 엄마도 맨날 불 앞에서 일을 하셨어요. 30년 넘게 새벽에 나가셔서. 밤 11시나 돼서야 들어오셨어요. 글 쓰는 일 시작할 때 회사를 그만두고 해야 되는데, 6~7개월을 결정을 못 하겠는 거예요. 월급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이 일을 안 하면 엄마가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난 이 일을 하고 싶긴 한데.. 6~7개월이 되니까 돈이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일을 해도 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결정할 수 있었거든요. 저도 그때 33세였어요. 아이까지 있으시잖아요. 나만 생각하고 살면 안 되잖아요. 내가 아무리 하고 싶거나 내 꿈이라도 내 주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지 않는 선에서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나를 포기하는 거 아니에요. 굉장히 나를 위한 일이고,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일이고, 내가 되게 행복해 지는 일이거든요."


하상욱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았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할 무렵에 겪었던 어려움과 당시의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울음을 머금은 그의 목소리에는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었다.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 왔던 아들(이자 아버지)은 고개를 더욱 숙였다. 무언가 깨달은 게 있었으리라. 현장에 있던 방청객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아마 TV를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하상욱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했을 것이다.  


이렇듯 이국주와 하상욱의 경험에서 비롯한 진실한 조언은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매우 적절한 도움이 됐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4일 방송은 수위 조절에 애를 먹었던 <안녕하세요> 제작진에게 매우 중요한 기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분노지수는 좀 낮을지라도, 그래서 화제성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훨씬 높았던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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