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손연재에게 보내는 뒤늦은 응원의 글, "그동안 고생했고, 고마웠어요"

너의길을가라 2016. 8. 25. 17:43
반응형


"이게 다 죄인데, 그지?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모른다는 거야. 무지한 거지. 모르고 지은 죄는 셀 수가 없잖니?"


tvN <디어 마이 프렌즈> 12회에서 회한(悔恨)에 잠긴 석균 아저씨(신구)는 박완(고현정)을 불러놓고 과거의 자신을 반추(反芻)하며 허심탄회한 고백을 건넨다. 먹먹했던 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석균 아저씨처럼 되지 말아야지, 훗날 쓸쓸히 '모르고 지은 죄'를 되새기며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저 반성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알고자 노력해서 모르고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 그 허점을 줄여가는 것 정도일 뿐이다. 



인터넷 기사에 어김없이 달려있는 소위 '악성 댓글'을 보면 문득 석균 아저씨가 떠오른다. 물론 사람들은 누군가의 험담을 하면서 살아간다. 욕도 한다. 더 심한 말들도 한다. '사람'의 일인데, '현실'과 '인터넷'의 경계가 어디 있겠는가. 실체적 대상을 알고 있더라도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 오해를 바탕으로 온갖 나쁜 말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실체적 대상이 아닌 이미지, 언론이 전하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면, 그건 그 '존재'가 아니라 그 존재의 '언행'이 아닐까?


리듬체조선수 '손연재'와 관련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 아래 어떤 댓글들이 달릴지 충분히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확인을 위해 댓글창을 훑어보면, 어떻게 저런 댓글이 저리 많은 추천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끔찍한 언어들이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나열돼 있었다. 자신이 마치 손연재의 최측근인양, 그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훤히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댓글들은 수많은 추천들과 함께 '진실'처럼 둔갑해갔다. 온갖 비난과 욕설, 비아냥, 조롱.. 10대 소녀였던 손연재가 견디기엔 참으로 끔찍하고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연죄가 조공 선물한 심판 덕인 것 알면서 왜 그러느냐" 

"아시아 최강으로 살 찌는 거 봐라" 

"꼭 자신 없는 것들이 자국에서 심판을 매수해서 메달을 사더라"


- 지난 2015년 7월 손연재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A씨가 단 댓글 -


지난 2014년 11월 3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던 손연재는 안티와 관련된 질문에 "중학교 때는 응원 글이 많았는데, 시니어가 되자마자 안티가 많아졌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도 하는데, 예전에는 많이 울었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나는 태극기를 달고, 우리나라와 내 이름을 드높이려 노력하는데, 왜 사람들은 나를 응원 해주지 않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관심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사랑해주실 것"이라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010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손연재는 초창기만 해도 기복이 심한 선수였다. 하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결선 5위) 이후 급성장했다. 엘레나 리표르도바 전담코치(러시아)를 만나고, 러시아 노보고르스트 센터에서 최고 레벨 선수들과 함께 똑같은 훈련을 소화한 덕분이었다. 손연재의 장점인 표현력을 더욱 살리는 한편, 기술을 보완해나갔다. 그 성과는 곧바로 뒤따라왔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제천아시아선수권 대회,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개인종합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리스본 월드컵 게임종합 우승도 기록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는 2회 연속 올림픽 개인종합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아시아인으로서 최초의 업적이었다. 손연재는 결선 무대에서 후프 18.216점, 볼 18.266점, 곤봉 18.300점, 리본 1 8.116점으로 최종 합계 72.898점을 기록했는데, 세계랭킹 공동 1위인 마르가리타 마문과 쿠드랍체바(러시아), 그리고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인)에 이어 대회 4위에 올랐다. 메달을 획득하진 못했지만, 손연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펼쳤다. 게다가 4년 전 자신을 뛰어넘는 위대함까지 보여줬다. 


모든 연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손연재가 흘리는 눈물 앞에 그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손연재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비난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한 그녀의 연기를 지켜봤고, 두손 모아 응원했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올림픽은 저에게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4년 전 런던 때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다.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후회 없는 연기를 했다"는 그의 인터뷰에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쉼 없이 달려온 손연재는 이제 은퇴의 기로에 서있다. 앞으로의 진로를 묻는 질문에 대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에서 운동을 하면서 세계 최고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봐왔기 때문에 한국 리듬체조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리듬체조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쏟아붓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으로 그가 대한민국 리듬체조의 커다란 버팀목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손연재가 있기 전 대한민국 리듬체조는 불모지(不毛地)와 다름 없었다. 다시 손연재가 없는 대한민국 리듬체조는 불모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그는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해왔던 것이다. 십대의 어린 나이에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 혹독한 훈련과 치열한 경쟁을 견디며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 왔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조각난 정보 몇 덩이와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만으로 '손연재'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건 얼마나 섣부른 일인가. 


굳이 손연재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누구가에 대한 댓글을 달기 전에, 부디 한번 더 생각을 해보자. 나중에 석균 아저씨처럼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상처는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도 기억하자. 미움은 어느새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던가.


반응형